우리는 늦은 시간 침대에 들었습니다. 여행을 하느라 피곤했거든요. 그래도 25일에는 7시에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제 머리카락이 아주 엉망이었기 때문에 10시 반에는 제아우 백작 댁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백작은 벌써 사냥을 나갔다는군요. 참자, 참자!
오늘 셴보른 백작과 대주교의 자매가 되는 부인네들이 도착하셨습니다. 저는 마침 극장에 가 있었습니다. 알베르트 씨가 말씀하시는 중에 제가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제가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백작님에게 말씀드려주셨습니다. 두 분은 의아하게 생각하시며, 제가 그리운 추억의 액수인 12플로린 30크로이처라는 급료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그만 마차를 갈아타셨지요. 저와 말씀을 나누시기를 원하신 것 같았는데…… 그 뒤로는 두 분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잘레른 백작 댁에서 사흘 동안 여러 음악을 악보 없이 암보로 연주하고, 다음에는 백작 부인을 위해 2개의 카사치오네하고 마지막으로 론도가 있는 종곡(終曲)을 암보로 연주했습니다. 잘레른 백작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빠는 상상할 수 없으실 겁니다. 어찌 됐든, 그분은 음악을 알고 계십니다. 다른 귀족들은 코담배를 만지작거리거나, 코를 푼다거나, 기침하기도 하고, 아니면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지만, 백작은 언제나 “브라보”라고 하셨거든요.
약속 시간에 갔더니, 마치 학생처럼 보이는 처남 두 사람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누구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건만, 랑겐만텔 씨는 깜박하고 슈타인 씨에게 “이제 피아노의 명수를 소개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러면서 싱긋했습니다. 나는 즉시 이에 항의를 하고 “뮌헨의 지겔 씨의 불초 제자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지겔 씨로부터 천 번의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슈타인 씨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고 있었는데, 마침내 “혹시 모차르트 씨 아니십니까” 하는 거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트르차모라고 합니다. 이것이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럼 먼저 슈타인의 피아노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슈타인 씨의 작품을 보기 전까지, 저는 슈페트의 피아노가 가장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슈타인 쪽이 훨씬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쪽이 레겐스부르크의 제품보다도 공명 억제를 한층 잘하기 때문입니다. 강하게 치면, 손가락을 놓고 있건 떼고 있건 울리는 순간 그 소리가 사라지고 맙니다. 마음대로 건반을 쳐도 소리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까딱까딱 소리가 난다거나, 강해진다거나 약해지지도 않고, 물론 소리가 나지 않은 적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모두가 일정합니다.
저는 시처럼 쓰지는 못합니다. 시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글귀들을 멋지게 배치해서, 그늘과 빛이 피어나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화가가 아니니까요. 손짓과 몸짓으로 기분과 생각을 나타낼 수조차 없습니다. 무용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소리를 가지고서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음악가입니다.
고귀한 사람들은 결코 애정이나 취미가 아니라, 이해와 기타 갖가지 부수적인 의도로 결혼합니다. 아내가 빚을 갚아주고, 촌스러운 상속인을 낳아준 다음까지도 그 아내를 사랑하는 따위의 일은, 신분이 높은 그런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들 하찮고 가난한 인간은, 서로가 사랑하는 여자와 맺어져야 할 뿐 아니라 그런 아내를 취하는 게 허용되고,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요. 우리는 고귀하지도 않고 명문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며 또 부자도 아니면서, 신분이 낮고 단순한데다 가난하므로, 우리의 부는 우리가 죽으면 동시에 없어질 터이니, 부자 아내는 필요하지 않은 거지요. 우리들의 부는 머릿속에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부는 우리 머리를 잘라내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잘라내진다면, 그때는 아무것도 필요없게 되지요……
그럼 그 딸은 어떨까요. 화가가 악마를 진짜배기처럼 그리려 한다면, 이 딸의 얼굴에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꼭 농부의 딸처럼 뚱뚱하고, 보기만 해도 침을 뱉고 싶을 정도로 땀을 흘립니다. 그리고 살갗을 드러내놓고 걸어 다니는 모습이, ‘여기 좀 봐줘요’라고 분명 얼굴에 써놓은 형국입니다. 정말이지 보기만 해도 정떨어집니다. 장님이 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재수 없게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간, 그날 하루는 벌을 받는 꼴입니다. 그럴 때면 주석(酒石)[토사제]이 필요합니다! 그처럼 메스껍고, 더럽고, 게다가 몸서리 쳐집니다! 쳇, 망할 놈의 것!
제가(아시는 바와 같이)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사랑하는 조국 독일이 저를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면(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프랑스나 영국에, 재능 있는 독일인 하나가 또 추가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독일 국민의 불명예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걸출한 사람이라면 으레 독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서 행복을, 어디에서 명성을 발견했을까요? 그곳이 독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지금 5시 반입니다만, 조촐한 음악회를 하기 위해 6시에 사람들이 오게 되어 있어서, 매우 서둘러서 써야 합니다. 대체로 매우 바쁘기 때문에, 때로는 야단법석을 떨어야 합니다. 아침부터 2시까지는 계속해서 레슨을 위해 뛰어다닙니다. 그리고 식사입니다. 식후에는 무슨 일이 있건, 저의 불쌍한 위장에게 소화 시간을 주기 위한 1시간을 배려해주어야 합니다. 그 뒤부터가, 약간의 작곡이 가능한 유일한 저녁 시간입니다. 그것조차도 대체로 발표회에 불려가기 때문에 확고한 것은 아닙니다.
일찍 시내로 돌아갈 결심이 좀처럼 우러나지 않습니다.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요. 오늘 프라터[빈의 자연 공원]에 가 있었는데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는 밖에서 식사를 하고, 이처럼 밤 8시나 9시까지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일행이란, 즉 임신한 저의 아내와 그 아내의, 임신은 하지 않았지만 뚱뚱하고 건강한 남편입니다.
있잖아, 여보! 당신하고 아주 솔직한 기분이 되어 이야기를 하지. 당신에게는 쓸쓸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며, 가능한 일은 무엇이든지 해 줄 남편을 가지고 있어. 다리 문제는 참고 있노라면 반드시 나을 거야. 당신의 기분이 밝을 때면 나는 기뻐. 정말로 그래. 다만 때때로 너무 상스러운 언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