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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고, 친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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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현대문학 핀 시리즈-소설선 1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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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30g | 104*182*20mm
ISBN13 9788972759706
ISBN10 8972759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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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이 되었던 그해 봄, 내가 엄마의 전화를 받은 것은 미뤄두었던 설거지를 막 마치고 창밖을 잠시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창밖 커다란 나무의 우듬지 위에 앉아 있던 작은 새들이 일제히 꽃송이처럼 떨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요약하자면, 모처럼 시간이 난 김에 할머니네 집에 가서 혼자 지내는 할머니를 몇 달간 ‘돌봐드리라’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넌 할 일도 없잖아.” --- p.10

할머니가 그렇게 갑자기 생각나는 밤이면 나는 이제, 내가 그러했듯이 할머니 역시 할머니의 한계 안에서 나를 사랑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러니 내가 그때 할머니의 상태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어쩌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뒤통수를 보거나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내 쪽을 향해 걸어오는 인파를 보다가 가끔씩, 나는 지구상의 이토록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 p.25~26

“엄마를 실망시킬 때마다 엄마가 ‘너는 아빠를 닮아서 그 모양이냐?’라고 말을 하거든.” 언젠가 나는 홍대 인근 모텔의 침대 위에 누워 엑스 자 모양으로 생긴 형광등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나보다는 아빠를, 그러니까 엄마보다 무능한 연구자일 뿐 아니라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젊은 행정직원과 바람을 피운 아빠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는 한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내게 상처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 결국 그 침대 위에서 “나는 이렇게 엄마를 실망시키는 사람으로 남을 거야”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 p.47~48

사랑했던 여교사 대신 지적인 대화를 조금도 주고받을 수 없는 여자와 하는 수 없이 평생을 살게 된 할아버지에게 엄마는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 엄마의 엄마는 그러는 대신 혼자 술을 마시며 작부처럼 노래를 불렀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화가 난 할아버지가 술상을 엎고, 할머니를 때릴 때, 엄마가 미웠던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였는데, 그 사실을 생각하면 사춘기 때의 엄마는 화가 났고, 커서는 슬펐다. --- p.71~73

할머니가 부두를 찾는 것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화가 날 때라는 사실을 내가 알아챈 것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할머니는 부두에 도착하면 주변의 상점에 들어가거나 좌판의 주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법 없이 그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 있기만 했다. 마치 뛰어들려는 사람처럼. 그러다가 지루해진 내가 보채기라도 하면 할머니는 덩치가 이미 커져버린 나를 업고 부두를 위에서 아래로 걸었다. 앙상하게 마른 사람이 어찌나 엄청난 기세로 걷는지 거친 호흡이 업힌 내 볼 위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니까 그건 울음을 참는 사람의 등이었어.” --- p.82

나는 아랫배를 노크하는 것 같은 규칙적인 태동을 느끼며 할머니가 기억하는 (……) 여름을 상상했다. 그런 완벽한 여름의 어떤 날, 연노란색 태양이 아직 머리 꼭대기에 있었을 때, 달궈진 모래를 맨발로 밟고 걷다가 무언가에 이끌린 듯 옷을 벗고 바닷물로 뛰어드는 알몸의 여자와 그 옆에 서 있던, 세월이 좀 더 흐르고 나면 그런 엄마가 부끄러워지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 여자아이를.
--- p.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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