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아버지는 식구들을 데리고 산으로 계곡으로 향하셨다. 캠핑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던 그때가 요즘 들어 자주 떠오른다. 캠핑의 참맛을 몸으로 실감한 그 소년은 이제 아버지가 되었다. 본능적으로 자기 아이에게 그때의 행복감을 전해주고 싶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캠핑은 언제까지나 없어지지 않을 멋진 교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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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캠핑을 가면, 아버지는 그 시절 소위 ‘먹어주는’ 캠핑 장비인 로열버너에 가장 많은 정성을 쏟으셨다. 지금의 버너들과 달리 그 당시 버너는 예열 과정이 필요해서, 손이 많이 가는 장비였다. 잘 닦아놓지 않으면 청색 녹이 오르는 터라 아버지는 캠핑을 가기 전이나 다녀와서 항상 버너를 곁에 두고 만지셨다. 버너 자체에 애착이 큰 것도 많은 시간을 들여 관리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코펠에 밥 지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신기하게 지켜보는 우리 형제들 앞에서 아버지 역할을 담대히 해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도구라는 생각에 그렇게 공을 들이셨을 것이다.
(중략)텐트를 뚝딱뚝딱 멋지게 치셨던 아버지, 우리와 물장난하셨던 아버지, 게다가 환하게 웃어주셨던 아버지, 물에 빠진 사람까지 구할 정도로 수영을 잘하셨던 아버지, 그 일을 일기에 써가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던 우리 형제. 가족의 캠핑이 시작되고 나서야 새로이 ‘발견’할 수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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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편하게, 멋스럽게 캠핑을 즐기려면 어떤 장비를 사고 모을지는 내 아이가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캠핑을 하면서 무엇을 배우고 익힐 것인가는 부모인 나의 몫으로 남았다. 멋진 텐트를 얼마나 요령 있게 빨리 치느냐보다, 태양의 움직임을 보고, 나침반을 이용해 동과 서를 확인해 가장 좋은 위치를 고른 다음, 주변 지형 지물을 활용해 텐트 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배수로는 깊게 파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가르쳐야겠다. 마른 솔잎, 낙엽이나 잔가지, 솔방울 순으로 모닥불 땔감을 올려야 불이 잘 붙는다는 것도 가르쳐야겠다. 두꺼운 장작만 쌓아놓고는 망연자실 다른 텐트를 돌아다니며 깜빡 놓고 온 토치를 빌리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높게 오른 모닥불의 세기를 조절할 때에는 상추 몇 장이면 된다는 것은 단 한 번의 시범으로 충분할 것이다. 야밤에 지나는 이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팩은 머리끝까지 박아 넣어야 하며, 스트링에 은박지나 휴지를 감아놓는 것은 기본이라고 알려줘야겠다. 습한 날씨에는 비싼 거위털 침낭보다 저렴한 솜 침낭이 훨씬 좋다는 것도 말해주어야겠다. 해변이나 모래밭에 팩을 박을 때면, 주변 가게에서 비닐봉지 몇 장 얻는 것으로 준비는 끝이라는 것도 가르쳐주어야겠다.
문밖을 나서면서 대문 안에서와 똑같이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려고 장비에 몰두하는 캠퍼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보호하고 담백한 캠핑을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도록, 내 아이들은 캠핑에 필요한 지혜를 충분히 갖추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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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중함?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집 두 아이에게 아빠란 ‘필요할 때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억나나요? 작은딸이 콘서트 보러 가야 한다며 돈달라고 며칠 전부터 졸라댔었죠? 결국은 그 돈 내가 주고 말았는데, 작은딸이 당신 잘 때 베개 옆에 써놓은 쪽지 못 보셨을 거예요
‘아빠~! 새벽에 출근하시느라 저 못 보고 그냥 나가실 테니, 이 쪽지 위에 티켓 살 돈 놓고 가세요~.^^ 사랑해요, 아빠!’
친근하고 살가운 태도는 티켓 값을 얻어내기 위한 단발성 애교였지요. 하지만 지금 애들에게 아빠는 뚝딱뚝딱 뭐든 만들어내는 알라딘 램프의 우람한 요정과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죠. 주중에는 일에 지쳐 하숙집 드나들듯 집에 오면 잠만 자더니, 주말에는 거실 소파에 온종일 붙어 있던 모습만 기억납니다. 그런데 캠핑을 하는 당신은 그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과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모습, 밖에 나오면 원래 남자가 다 하는 거라며 고무장갑을 끼고 수돗가로 향하는 모습. 당신이 고집해서 시작한 취미였지만 가족 모두 즐거워하고, 나름대로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는 당신의 노력이 눈에 보입니다. 캠핑장에서 밤을 보낼 때마다 술을 마시는 통에 항상 걱정스러웠는데, 언젠가부터 와인 잔을 정성스레 싸 들고 다니는 당신이 멋있어 보입니다. 요리책을 보고 공부했다며 지지고 볶아대는 당신의 거친 요리는 비록 괴상한 모양이지만 대견해 보입니다. 요리하면서 흥얼대는 당신을 보면 나도 흥겨워요. 당신의 요리가 항상 맛있는 건 아니지만 식사 시간은 언제나 즐겁기만 합니다. 간혹 실수는 있지만 대수롭지 않습니다. 투박한 상차림도 괜찮습니다. 나와 두 아이는 당신이 열과 성을 듬뿍 담아 만든 음식들을 맛있게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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