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을 깨뜨리고, 의지와 실행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낙관주의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고 싶다. 또한 바람직한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은 실리콘 밸리에 있는 많은 긱스geeks의 생각과 달리 구원은 결코 기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다루고, 그 가능성을 이용하고, 그 위험을 제때 통제하는 방식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줄 것이다. 한마디로 기술은 우리의 삶을 결정하지 못한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스마트폰이나 인공 지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중요한 것은 문화이다. 우리는 우선 인간에 대한 개념부터 이해하고 나서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사용할지 자문해야 한다.
--- p.12~13
수많은 자기만의 세상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중적 모순 때문이다. 이 세계는 아주 광범하게 사회의 위계질서를 철폐하지만, 그와 동시에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 세계는 거울 앞의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약속할수록 등 뒤에서는 우리의 것을 점점 더 많이 빼앗아 간다. 타격을 입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민주주의와 사회 질서의 토대를 이루는 계몽적 가치들이다.
--- p.42
정치인들은 직무상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그들의 일이 아니라서 그렇게 보는 게 아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독일 정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커다란 변화를 회피하는 데만 주력해 왔다. 무언가를 바꾸려는 사람은 목표를 찾고, 무언가를 저지하려는 사람은 이유를 찾는다. 적어도 20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독일인들은 이유가 목표를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전략적 사고는 없어진 지 오래다. 전략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미래에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독일을 지배하는 것은 전술뿐이다. 상황에 따라 유권자들에게 이익을 약속하는 단기적인 숙고만 존재하는 것이다. 전략에 대한 전술의 승리가 우리 나라를 마비시켰다.
--- p.52~53
물론 투덜대거나 불평하는 사람은 여기저기에 있었다. 하지만 특정 사업 방침이나 감시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즉시 심사가 꼬이거나 괜한 공포를 조장하는 사람으로 몰렸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는 기술과 진보의 적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그들은 기술과 진보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특정한 기술이 투입되지 않기를 바랐고, 지금과는 다른 진보를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진보는 대안 없음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길 좋아한다. 우리가 결코 다르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각인된 진보의 모습은 기업의 로비스트들이 우리에게 심어 준 것이다.
--- p.75
〈인간적인〉 가치들이 살아남고, 인간종 역시 멸종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한 가지 중요한 영역이 언급된 바 있다. 무수한 활동과 생업 노동 사이의 경계는 더 이상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 경계가 고정된다면 두 가지 계급 사회가 도래할 위험이 있다. 즉 한쪽에는 기본 소득과 소비, 오락으로 살아가면서 데이터 소유자로서만 약간의 가치가 있는 〈쓸모없는 인간들〉, 다른 쪽에는 돈을 점점 더 많이 벌고, 자신의 직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며, 자신들만의 〈엘리시움〉에서 사는 소수의 부류로 이루어진 사회 말이다. 이런 위험을 없애려면, 원칙적으로 모든 기본 소득 수급자에게 시간제 근무든 전일제 근무든 창업이든 다시 일을 하게 하고, 자기 삶의 건설자로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모델이 필요하다. 변화된 노동 시장의 조건하에서는 생업 노동 없이 2년을 사는 것도 더 이상 사회적 오점이 되지 않아야 한다. 물론 미래에도 잘 교육받은 전문가는 분명히 필요하다. 오후에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사냥하거나 양을 치지 않는 그런 전문가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냥꾼과 목동, 비평가들이 한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기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모두 치워 주어야 한다.
--- p.184~185
유토피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2010년대를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국가, 판결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시대로, 혁신과 효율성을 우상으로 떠받들던 시대로, 훗날 간신히 법적으로 금지시킨 사업 모델들을 합법화한 시대로 기억할 것이다. 또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실제로 자신의 개인적 인간상에 모순되는 발전에 불을 지핀 시대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고객을 자신의 정보에 대한 권리가 없는 조급하고 게으른 사용자로 간주했다. 반면에 자신의 아이들은 게으르고 조급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최고의 학교에 보냈고, 자기만의 사적 영역을 가진 인간으로 존중했다.
얼마나 자가당착적인 시대인가!
--- p.263
디지털 경제가 점점 더 높은 수준으로 기술화될수록 상품 가격은 점점 저렴해져서 결국에는 더 이상 어떤 수익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디지털 경제의 거대 독점 기업들은 자신들의 사업 모델 주변에 설치한 보호 울타리가 허물어지면 오늘 당장이라도 몰락할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 검색기, 음성 인식 서비스, 사물 인터넷이 왜 공공재가 되어서는 안 된단 말인가? 모든 지식이 민주화될수록 그런 지식을 토대로 수익 지향성 사업을 운영하는 자본가들은 점점 필요 없어질 것이다. 마르크스가 1858년에 이미 요구한 것처럼 지식과 소통은 자본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소유여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지식과 소통은 자본주의를 〈공중 분해시켜〉 버릴 것이다.
(……)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자본주의가 붕괴할 경우 그 사업모델들을 공동선 경제로 탈바꿈시키려면 누가 주도권을 잡아야 할까? 분명 〈프롤레타리아트〉는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나 유럽 연합이 잡아야 할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높지도 않다. 그렇다면 시민, 특히 교육받은 중산층이? 그렇다.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그들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을 건설하는 것이 최선일까? 사회주의? 이것은 분명 아니다.
(……)
제4차 산업 혁명을 맞아 우리는 또다시 변화된 경제 조건하에서 새로운 질서와 균형을 만들어 낼, 그러니까 새로운 사회 계약을 체결해야 할 과제 앞에 서 있다.
--- p.299~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