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아 형성의 원천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예수님에게서 절정에 이르는 긴 구원의 역사 서두에 자리 잡은 이 이야기는 하나님은 누구이시고 인간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두 존재가 신실한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초대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관계가 확립되었다. 또한 이 땅의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폭넓은 자비와 보편적 의도를 보여 준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인간의 무분별한 시도를 회복으로, 심지어 축복의 기회로 바꾸시는 모습 또한 보여 준다. 자기 백성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하시고, 그들과 즐거운 관계를 맺고 싶은 열망이 너무도 커서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시려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 부름이 있고, 언약을 맺고, 잘못을 교정하고, 절정에 이르기까지 이 이야기는 놀라울 따름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의미의 핵심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 하나님의 친구, 믿는 자들의 아버지」중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 유스티누스는, 사람은 단지 그가 고백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진정한 행위나 행동에 의해 판단받아야 한다고 했다(1 Apol. 4.6; 16.8-14).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유스티누스는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로마 당국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따라서 그는 이 글의 수신자들에게 그들의 고백뿐 아니라 그들의 삶도 보고 판단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그만큼 그는 진정한 기독교 신자의 행위가 그들이 결백함을 보여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분이 가르치신 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십시오. 그들이 입술로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고백할지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고백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 Apol. 16.8). 그러나 유스티누스가 보기에, 결국 기독교 정체성의 궁극적 표지는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을 위해 죽으려 하는 것이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2세기의 기독교 정체성 형성」중에서
그레고리오가 몇 가지 공적인 역할들을 수행하면서 그러한 활동들이 가져오는 우여곡절 가운데 씨름했던 기본적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두고 거기에서 양분을 받으면서 은혜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관상을 통해 일관된 정체성 혹은 영혼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비록 그레고리오가 종종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노선에서 벗어나 16세기의 개혁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마르틴 루터가 나중에 규명하게 될 신인 협동설로 빠지기는 해도, 그가 자기 삶에 통합된 정체성을 이해한 방식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습관과 입장에서 비롯된다. 습관에 빠지는 것에 맞서 이웃을 더 신실하게 섬기기 위해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과 더불어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레고리오 자신이 실천했고 자기 청중에게 촉구했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이다.
---「그레고리오 1세: 회심의 은혜?이뎀이 되어 가는 입세」중에서
아퀴나스는 신학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삶, 특히 그의 기독교 정체성은 대개 간과되었다. 하지만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르고자 했던 그의 깊은 인식과 별개로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삶과 업적은 그가 가졌던 기독교 신념의 결과일 뿐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 등 그보다 앞선 그리스도인 신학자들처럼 토마스도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수도원에서 수사로 살았던 안셀무스와 달리 아퀴나스는 순회하는 수사였고 대학에서 학문을 하는 신학자였다. 이 차이점은 아퀴나스가 살던 세상과 안셀무스가 살던 세상의 차이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 아퀴나스는 그의 선임자들과 동일한 기독교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즉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 부응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했다. (…) 아퀴나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난과 사명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했고, 도미니쿠스회의 수사로서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로 세상에 전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아퀴나스: 그리스도의 가난, 사명, 삶에 동참하는 것」중에서
은자로서 그리고 종교 사회에서 지위를 가진 여성으로서 줄리언은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의 언어와 용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등하며 모든 “동료 그리스도인”을 포함한다. 위-디오니시우스로부터 비롯되는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에서 그리스도인의 여정은 회심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점진적인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마지막 목표는 사랑의 관상 가운데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었다. 첫 두 단계의 정화와 조명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도달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연합이라는 세 번째 단계는 종교 엘리트들을 위한 것이었다. 베르나르와 안셀무스 모두 그리스도의 상흔에 대한 신비적 관상의 더 높은 단계는 수사와 안수받은 성직자만 도달할 수 있는 자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14세기 중반 무렵이 되자 그러한 위계 구조는 무너졌고, 특히 교육받은 평신도와 여성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렇게 되었다. (…) 줄리언은 활동의 삶이든, 관상의 삶이든, 둘 다이든, 다양한 삶의 양태들 사이에 구별을 짓지 않는다. 줄리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신실하게 살고 있는 모든 “동료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책을 썼다. 실제로 줄리언은 “구원받을” 모두가 사랑의 결속으로 하나님께 결합되는 과정에 서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노리치의 줄리언: 포괄적 그리스도인」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단테가 자신의 동시대인들을 천국 혹은 지옥으로 신속하게 보내 버리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지만, 이것은 그 장르를 오해한 것이다. 이 책은 픽션인데, 그 효과를 위해 성경적?신화적?허구적 장소와 사람뿐 아니라 실제 장소와 사람들에게도 기대고 있다. 어쨌거나 단테는 자신의 적(실제로 그에게는 적이 있었다)을 지옥만이 아니라 천국과 연옥에도 집어넣는다. 특정한 사람, 시간, 장소를 포함한 특수한 것들에 대한 그러한 주목으로 인해 『신곡』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그토록 좋은 연구가 되는 것이다.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했듯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테: 순례자의 길」중에서
“어색하고 수줍어하는” 자라고 실토했던 이 사람의 말에 왜 유럽 전역의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을까? 본인도 난민이었던 칼뱅은 위기 한복판에서 난민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 세상을 상속할 자임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추방당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그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경험을 통해 이 땅에서 이방인으로 머물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칼뱅은 아브라함이 받은 문자적 부르심인 “네 고향을 떠나라”에 주목했고, 압제에서 “내 백성을 이끌고 나오라”는 모세가 받은 부르심에 주목했다. 결국 그는 남은 평생 동안 성경의 또 다른 유명한 난민인 다윗을 따라 자기 내면의 그늘진 땅을 통과했다.
---「장 칼뱅: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아는 것」중에서
우리는 테레사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께 온전히 바친 놀라운 여성을 만난다. 그는 “그리스도께 완전히 사로잡혀” 그분과의 지속적 만남에서 나오는 “전혀 새로운 정체성”, 온전함, 연합을 보여 주었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콘베르소라는 배경에 대한 우려로부터 해방되었다. 20년간 대체로 가식적인 수녀로 산 끝에, 그는 신비적 은총을 경험하고, 신비신학 저작들을 쓰고, 영적 지도를 제공하고, 카르멜 수도회를 개혁하고, 스페인 전역에 수도원을 설립하는 비범한 생을 살았다. 그가 1622년에 시성되고 1970년에 여성 최초로 교회 박사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테레사의 겸손한 내면의 삶이 바깥으로 작용하여 그는 공적·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은 그에게 명예욕에서 겸손으로, 자기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자기 보호에서 고난 수용으로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당대의 가짜 신비가들과 달리 테레사는 진정한 그리스도 중심의 신비가였다.
---「아빌라의 테레사: 기독교 신비가」중에서
판 스휘르만과 귀용의 목표는 최고선 안에서 깊은 수준의 기쁨을 얻는 것이다.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는 이 기쁨은 모든 의미의 “희생”을 뛰어넘는 하나님에 대한 친밀한 지식으로 개인을 이끌어 준다. 그들은 자기희생의 길, 곧 자기를 맡기는 길이 최고선을 가장 깊게 누리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자존감이든 자기방어적 태도든, 자아에 몰두하는 모습이 사라져야 숨뭄 보눔이 채우고 만족시킬 공간이 만들어진다. 타인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제자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라는 요청은, 개인주의와 편리함에 특별한 찬사를 보내는 오늘날에도 기독교 신학과 실천의 재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다.
---「안나 마리아 판 스휘르만과 잔느 귀용 부인: 자기 봉헌」중에서
인간 정체성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적 접근법에 나타난 인간의 현실성을 놓고 여러 오해가 생기는 것은 그의 접근법이 자기 집착에 빠진 근대 문화와 상반되고, 심리적 구원에 집착하는 우리 시대 기독교 신학의 문화와도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런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보다 바르트 인간 이해의 출처가 살아 계신 말씀과 기록된 성경 안에 나타나는 으뜸 되는 하나님의 계시와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공의회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런 출처에 의거하여 바르트는 인간성이 파생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파생성을 인정하고 나면, 이렇듯 인간에게 적절하게 만들어진 인간성은 가장 풍요롭고 존엄하고 진정한 현실성을 실제로 갖게 된다. 사실, 인간이 내면에서 나오는 자유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유에서 나오는 자유를 일단 받아들이면, 즉 그리스도의 유비가 되면, 인간은 더없이 참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
---「카를 바르트: 인간 정체성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유」중에서
본회퍼는 깊은 성찰로 다져진 신학적 지성으로 형성되고 비범한 삶의 경험이라는 도가니에서 단련된 기독교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의 통찰은 개인적 상황을 훌쩍 뛰어넘어 지속적 적합성을 갖춘 신학적 통찰로 이어진다. 이 적합성은 본회퍼의 자기 해석학이 리쾨르의 날카롭고 정교한 자기성 분석과 일치하는 데서 특히 잘 증명된다. 본회퍼는 우리가 한계 상황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하려 하든지 삶의 여러 복잡성 안에서 그렇게 하려 하든지, 자신을(이로써 자기를) 하나님께 내어 드림으로써만 진정한 자기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여야 할 심오한 진리다. 하지만 자기 양도(self-surrender)는 자신을 기꺼이 복종의 상태에 놓는 것이다. 본회퍼의 사고방식 전체의 방향을 볼 때 그런 결론은 불가하다. 오히려 그는 자신 바깥에 있는 실제 인격적 실재에 자신을 양도한다. 본회퍼는 이미 초기의 신학 저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인식[erkennen] 안에서 하나님을 안다. 하지만 하나님께 알려지는 것[erkannt sein]은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을 뜻한다.” 본회퍼는 감방에서 자신의 젊은 날 신학이 실존적으로 옳음을 배웠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자신의 가장 깊은 정체성조차 의심스러워졌을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사실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기독교 정체성의 문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