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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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은 우리가 그 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작중 배경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알지 못하고, 작가가 왜 이런 글을 썼으며 왜 이렇게 구성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라는 글이 반가웠다. 책을 읽으며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작가 이전의 하나의 삶을 사는 인간으로서의 도스토옙스키를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지금까지도 계속 꾸준히 읽히고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를 알아갈 수 있었다. 고전문학이라는 것은 분명 그 시절에 나왔던 많은 문학 중에 살아남은 글인데, 가끔 우리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글의 가치를 알아야 글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왜 읽어야하고, 왜 이렇게 쓰였는지 알려주는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라는 책은 분명히 제목 값을 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
석영중 | 열린책들
러시아 문학 / p.400
아침에 일찍 일어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살을 빼겠다고 결심하지만 그것 역시 나의 결정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책을 읽어야 함에도 신랑이 보는 '지금 우리 학교는'을 나도 모르게 홀려 정주행한다. 시작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냥 미친 듯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마치 그리로 가도록 <결정되어> 있기라도 하듯이. p.37
정말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걸까? 자신에게 자유 의지가 있음을 증명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입증한 채 수기를 마친 지하 생활자의 이야기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보다 보면 자유 의지론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뇌에서 미리 결정된다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입증된 <리벳 실험>이 인간의 자유 의지는 허상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결국은 뇌의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도덕적인 책임의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일어난 행동이므로 그에 따른 책임은 질 필요가 없다는 말??
이처럼 도스토옙스키의 자유 의지 관념과 신경 과학적 사실로서의 자유 의지를 비교 고찰하고 이것을 토대로 하여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조명한 석영중 교수의 논문은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올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는 석영중 교수가 2004년부터 학회지에 발표했던 연구 논문 중 열한 편을 엄선하여 편집한 결과물이다. 특히 <종교>와 <과학>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작품들을 파고든다.
도스토옙스키는 독실한 정교 그리스도교 신앙인이었고 그의 소설에는 예외 없이 신과 인간의 문제가 깊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는 생물학, 기하학, 물리학을 비롯한 자연 과학과 의학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고, 생애 후반까지도 늘 러시아와 유럽에서 발간되는 최신 자연 과학 서적을 탐독했던 만큼 그의 소설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다. 그만큼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핵심이 되는 테마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논문집인 만큼 저자는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원하는 테마나 작품 위주로 선택해서 읽으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백치」를 가장 먼저 읽었고, 그다음으로 「죄와 벌」, 「악령」, 「지하로부터의 수기」, 「죽음의 집의 기록」,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순으로 읽었다.
글로 쓰인 이콘이라 할 수 있는 「백치」, 요한의 복음서가 토대가 된 그가 삶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육화되지는 못했지만 유일하게 이미지에 내재하는 본질을 볼 수 있었음을, 그가 쓴 서체에서조차 공작만이 서체 속에서 흘러나오는 영혼을 읽어냈음을 다시 한번 집고 넘어간다. 그리고 나스타시야의 어원부터 그녀의 사진이 뜻했던 의미까지!
책을 읽고 석영중 교수의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를 통해 제대로 복습, 이해하고 넘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백치」의 신경 미학 편은 어렵게 다가와 이해하기보다는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며 넘어갔다. ㅋㅋㅋ
「백치」 다음으로 읽으려고 준비 중인 「죄와 벌」은 성서와 신문을 주요 기저 텍스트로 삼고 있다는 사실부터 혹하게 하더니 그의 범죄의 이론, 배경, 범행자 재판에서 판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점에서 당대 저널리즘을 모방했다는 점에서 빨리 소설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저자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왜 재미있어 보이냐 말이다.
두 가지의 결함이 발견된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는 그것이 저자의 실수가 아니라 의도라는 전제하에 그 의미를 추정해 나가는데, 원형 운동과 선형 운동의 풀이 과정이 특히 흥미로웠다. 읽다 보면 맞아, 맞아 그렇지.라며 인덱스가 계속 붙는다. ㅋㅋㅋ
주요 에피소드들을 분석하여 케노시스와 신화의 논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설의 의미구조에 적용했는지 살펴본 「악령」, 르낭의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도스토옙스키의 그리스도교와 충돌하고 대화하고 논쟁하는지를 인물과 모티프를 중심으로 살펴 본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까지!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분명 책을 읽고 보면 더 깊게 이해가 가능하리라! 자, 이제 워밍업은 여기까지! 이제 본격적으로 도스토옙스키의 걸작들을 만나러 가보자.^^
ps. 과학의 관점에서 쓰인 글은 이해가 잘 되는데 이상하고 종교의 관점에서 쓰인 글은 어렵게 다가온다. 내가 무교라서?!ㅋㅋ 언젠가 계속 읽다 보면 이해가 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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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
석영중 ㅣ 열린책들
지금은 종영되었지만 tvN 프로그램 중 [문제적 남자]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계에서 머리 좀 쓴다는 다양한 패널들이 출연해 여러 분야의 창의적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이 한 가지 시선이 아닌 다양한 시선으로 여러 분야의 지식을 접목하여 제시된 문제들를 척척 풀어내는 과정을 보며 신기하고 재미있다 느꼈다. 그런 느낌을 이 책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 에서 다시 느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책의 저자인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석영중 교수의 광범위한 지식과 융합적 사고를 이 책을 통해 느끼며 교수님이말로 진정한 뇌색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이버 열린연단에서 석영중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러시아 문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알고 있다.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 는 석영중 교수가 연구한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논문을 다시 정리하여 펼쳐낸 책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바라본 것들을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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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중 교수는 [지하로 부터의 수기] 를 '리벳 자유의지 실험' 과 연결하여 해석하며,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를 시대를 앞선 예언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과학적 사실로만 인간이 행하는 일들을 바라보기에는 인간은 너무 복잡하고, 우리는 혼자 저 깊은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과학주의를 반대한다(p.45)는 도스토옙스키의 생각에 동의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불온문서를 운반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고 , 극적으로 사형이 취소되며 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바탕으로 [죽음의 집의 기록] 을 쓴다. 벌을 받기 위해 보내지는 장소에서 누군가에게는 허비되는 시간을 사색하며 보낸 그는 자신의 사색을 출소 후 글로 엮어낸다. 감옥 안에서 죄수들이 행하는 도박, 술, 돈을 취하는 행동은 제한된 공간에서 어떻게든 자유로 나아가기 위한 인간의 발버둥을 표현한 것이라고 석영중 교수는 해석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연극을 통한 창작 활동이 가장 자유를 느낄 수 있는 행위임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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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이외에도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저술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강생에 대한 관심과 믿음을 보였음을 찾아볼 수 있다. 석영중 교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 문장들을 제시 (p.115)하며 이를 설명한다. '강생'은 나에겐 생소한 단어이다. 사전적 뜻으로 강생은 신이 인간으로 태어남을 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작품들을 통해 예수가 인간이냐 신이냐는 논쟁에 대한 그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이콘'은 종교·신화 등의 관념체계를 바탕으로 특정한 의의를 지니고 제작된 미술양식 혹은 작품을 말한다. [백치]에는 이콘을 두고 인물들의 대화가 오간다. 특히나 홀바인의 [무덤 속의 그리스도]에 대한 인물들의 견해는 인물들이 서로 다른 예수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검색해서 본 홀바인의 그림 속 그리스도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백치]에서 표현된 도스토옙스키의 생각을 해석한 석영중 교수의 글을 통해 그림 너머의 것을 볼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신을 형상화하는데 집중했으며 인간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백치]에서는 미시킨이 인간의 모습을 한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다.(p.163) 작품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홀바인이 그린 그리스도가 고통을 느끼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도 신이 인간적인 고통을 경험한 것을 표현한 것이며 시각적인 모습 너머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라보기를 정보 처리와 감각의 상호 관계로 보는데 특정 대상을 보기만 하는 하향식이 아닌 지식을 향해 통찰하는 상향식 바라보기가 필요함을(p.172) 도스토옙스키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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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중 교수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을 역사와 종교,예술, 물리학, 신경 신학과 융합하여 대문호의 작품을 '깊이 있게' 해석한다.
프랑스의 역사가 르낭이 1863년에 발표한 [예수의 생애]에서 르낭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을 후대인이 지어낸 전설로 치부하고, 도스토옙스키는 르낭의 이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르낭은 나약한 인간이 기적을 만들어 그것에 의지하며 힘을 얻음으로, 그것에 매료된다 믿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우리는 믿을 수 있으므로,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믿음과 불신이 사실과 환상를 구별하는 척도가 된다고(p.285) 말한 대문호의 깊은 사유를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내 방식으로의 해석은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사실이니 눈 앞의 현상만을 믿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싶다.
20세기 인류 역사의 향방을 결정지은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대문호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에 완전히 매료된 것을 (p.290) 석영중 교수는 두 천재가 문학을 매개로 교류한 것으로 해석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들이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영향으로 발상이 시작된 것이 아니더라도 그런 가설을 가지고 두 천재의 시각과 지식을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21세기의 우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저자는 본다. 방대한 지식의 콜라보가 아름답다.
신학이란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신경 신학이란 신의 부재를 전제로 하는 학문이다. 저자는 신경 신학이란 학문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신경학적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모순이라 말한다. 과학이 발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과학적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문학과 종교가 이루어낸 도덕적 역사를 과학의 잣대로 깡그리 정의 내리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는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의 다양한 정서와 함의가 더 가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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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중 교수의 박식함과 , 융합적인 열린 사고에 감탄한다. 도스토옙스키을 이렇게 다양한 학문들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바라보았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또한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앞선 지식에도 감탄한다. 지금의 지식에 머문 것이 아닌 미래지향적 시선으로 앞으로의 지식과 학문까지도 통찰하는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을 저자의 해석에서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다소 높은 벽이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높인 석영중 교수의 문장들을 통해 나의 지식도 좀더 깊어지고 확대되었길 바란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러시아 문학가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많이 없기는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2명이 도스또예프스키나, 톨스토이라면 사실 문학자체를 떠올린다고 무방한 문제일 것이다.
특히나 두 거장은 그 작품의 깊이 만으로도 오랜세월 필독 명단에 올랐던 작가들 인데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인 색이 잘 녹아 있는 작품들은 신앙서적이라고 하기도 충분한 내용과 메세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다만 그런 배경이 익숙한 서방의 기독교의 문화라기 보다는 정교회라는 배경에서 녹아든 색깔이기에 그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상이 근간이 되는 정교회적 배경의 신학적 교리적 그리고 러시아라는 사회와 시대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문학을 이해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교리적 신학적 배경이 비슷한 종파를 근간으로 한다면 이 둘의 차이는 생활에서의 차이가 아닐까,
톨스토이는 먹고 살기 위한 글이라기 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글을 썻다면 도스또예프스키는 살아가기 위한 글을 썻기에, 생을향한 절박함도 글에 묻어난다. 그래서 도스토옢스키는 순전하고 순결한 길을 외치기 보다 처절하고 절박한 인간의 바닥을 통해서 그것을 극복하는 신이라는 라는 존재를 향한 갈망과 힘주심 같은 상황에서 인간 됨을 상실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진짜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남기는 그의 글과 그를 살펴보는 것을 통해서 인간의 생과 삶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