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점점 더 ‘다음’이 없어질 것 같다. 그래도 ‘다음에 또 열심히 하면 되지’라고 말해줄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게 나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90)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람이기를 포기할 각오가 되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300)
범죄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친구를 때리거나 돈을 훔쳐도 자신은 처벌받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들. 촉법소년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더 악랄해지고 지독해지는 범죄.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엔 처벌 수위를 높이고 처벌 연령을 더 낮춰야 하는 것 인지. 만약 내 아이가 그들의 피해자가 된다면, 그들이 갱생하는데 더 의미를 둬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도키타가 사는 동네에는 11월 6일의 저주가 있다. 3년 연속 11월 6일에 자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 도키타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이 전설을 이용해 가해자 류지를 죽이려고 한다. 류지를 죽이고 자신 또한 자살을 결심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어느 날 류지의 괴롭힘에서 도망치던 도키타 앞에 피에로가 나타난다. 그 피에로는 도키타 대신 자신이 류지를 죽여주겠다는 제안을 하는데...
사회면을 장식하는 무서운 범죄들. 요즈음 가장 큰 이슈는 신당동 사건이 아닐까 싶다.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구속되지 않고 우리 곁에 스치고 지나갔을 사람. 그가 지독히 가난하거나 못 배운 사람도 아니면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무섭고, 내 주변을 다시 관찰하게 된다.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 사람 같아서 더 소름 끼치는.
나에게도 지독한 사춘기를 겪은 아이가 있다. 지금은 그 아이가 점점 사람(?)이 되어 감에 감사하다. 가끔 지나가는 말로 그때, 사춘기를 겪던 그때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곁에 있어 줘서, 꼭 잡아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작은 아이를 보면 내가 오히려 아이에게 감사하다. 그때는 왜 그렇게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고 난리를 피웠는지,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하기에는 좀 요란했으니까.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니 웃으면서 하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아이들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왕따를 시키는 이유는, 때론 우리가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있다. 그냥 ‘심심해서 혹은 장난으로’. 장난 혹은 심심해서라는 말만큼 잔인한 게 또 있을까? 차라리 명확한 이유라도 있다면 고칠 수나 있지.
이래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제일 힘든 모양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떤 마음의 그릇을 만들고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 아무도 모르니까.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 안에 좋은 그릇을 만들 수 있게 곁에 있어 줘야 하지만, 쉽지 않다. 부모는 부모대로 바쁘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심판할 자격이 있을까? 가해자가 제대로 반성한다면 피해자의 가족이 덜 상처받게 될까? 쉽지 않은 주제이고 언제 어디서든 또 발생할 학교 폭력.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행복할 때는 몰랐는데 최근에는 쓸쓸해 보이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온다, 나보다 저 사람이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한편으로는 다른 이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안도하는 자신의 비겁한 근성이 싫었다.-120
학교폭력으로 괴로워하는 소년 도키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온통 잿빛이였을텐데요. 그 날도 역시 괴롭힘을 당하다 우연히 페니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됩니다. 페니는 어릿광대의 옷을 입고 약간은 섬뜩한 모습으로 그를 도와주는데요. 심지어 그의 복수를 도와주기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우연히 만나 믿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요. 세상 아래 아무도 믿을 이가 없다고 생각했던 도키타였기 때문이겠죠. 처음 본 페니를 믿고 복수의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사건이 먼저 발생하게 됩니다.
요즘 뉴스에서는 학교 폭력이 아이들 싸움 정도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겠죠. 도키타말고도 류지 일당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이 말하는 폭력의 증언들이 책에서만 만나는 끔찍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들의 행태가 더 오싹하기만 합니다. 도키타를 보면서는 당하는 아이들의 싸우고 싶지만 혼자라 주저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가족들이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게 하는 교묘한 협박에 누가 그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되구요.
그래서 이유도 모르면서 자신에게 다가 온 페니에게 의존하는 아이가 안쓰럽다 싶기도 하고, 도키타가 의심스럽다 생각하자 괴로움에 자백을 미리 해버린 친구 하루이치도, 원망스럽던 하루아치의 마음을 이해하겠다는 도키타도 토닥여주고만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자신에게 다가온 한줄기 빛이라도 외면할 수 없으니 말이죠. 사실 알고보면 폭력을 행하는 아이들에게도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라는 것도 알게되지만 그들 역시 알면서 저지른 죄이기에 용서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가자미의 말대로 피해자들의 가족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싶은데요.
생각할 수 없을만큼의 10대가 보이는 잔혹함의 이야기는 증오와 복수말고도 이런 폭력의 끝은 화살이 결국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주는데요. 폭력을 저지른 자는 결국은 언제,어떻게든 더 큰 폭력을 만나게 된다는 걸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싶고 얼마전 보았던 가정내 폭력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게 이웃의 지속적인 걱정어린 시선이였다는 게 떠오르게도 됩니다.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부모님,선생님,경찰,이웃 어른들의 올바른 시선이 합쳐지면 그래도 막을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제일 무겁게 다가오는 건 가해자를 처벌하면 고통은 모두 사라지는가란 질문에 그 누구도 답을 못한다는 건데요. 어떤 이유로든 타인에게 고통을 줄 권리는 없다는 걸 누구나 알았으면 싶어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