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겠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심장이 뛰었다. 소년은 이 결심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것임을 알았다. 첫발은 내디뎠다. 이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년은 초록 모자를 흔들어, 신학교 앞 우물가에 모여 있는 급우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들 중 누구도 소년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 신학교의 규율을 어기고 수도원 밖으로 나갈 만큼 용감한 학생은 없었다. 그러나 소년 헤르만 헤세는 달랐다. 실러의 책과 프랑스어 교재, 그리고 빵 한 조각만 지니고 그는 숲과 거리를 걸었다. 1891년 6월, 독일 뷔르템베르크 칼브에서 태어난 열세 살 헤르만 헤세는 슈투트가르트의 지방 시험에 합격했다. 79명 중 2등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아 개신교 신학교 마울브론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소년 헤세는 수도원 신학교를 마치고 튀빙겐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소년 헤세에겐 다른 꿈이 있었다. 그는 목사가 아닌, “작가가 되겠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부모의 생각은 달랐다. 작가가 되겠다는 소년 헤세의 꿈은 한낱 사춘기의 철없는 몽상에 지나지 않았다. 어른들은 늘 그런 식이니까.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 소년 헤세는 친구들을 만나 비밀 독서 클럽을 만들었다. 헤세는 친구들과 클롭슈톡, 횔덜린, 쉴러, 셰익스피어, 괴테를 읽었다. 그리고 시를 썼다. 그래서일까. 신학교 생활은 지루하기만 했다. 문학을 사랑하지만 정작 아들만큼은 목사, 사업가,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부모의 기대는 점점 헤세의 목을 조여 왔다. 그럴수록 헤세는 자유를 향한 갈망에 사로잡혔다. 자유, 그것은 소년 헤세를 관통한 원초적인 본성이었다. 1892년 3월 어느 날, 헤세는 수업 교재를 든 채로 외투도 입지 않고, 돈도 없이, 무작정 수도원을 나왔다. 그리고 걸었다. 중간 중간 시를 썼다. 시와 자유를 마음껏 호흡했다. 당연히 마울브론은 난리가 났다. 교장은 헤세의 아버지에게 전보를 보내 실종 소식을 알렸고,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이 호수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다음날, 두 번째 전보가 수도원으로부터 도착했다. 헤르만이 “안전하게 돌아왔다”는 소식이었다. 소년 헤세는 탈주에 대한 벌로 여덟 시간 동안의 학생감옥 감금형을 받았다. 아무렴 어떤가, 소년 헤세는 동요하지 않았다. 23시간의 탈주, 스스로 치른 성인식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성적을 놓고 경쟁하는 동급생들과 신학교의 가르침과는 도저히 동행할 수 없었다. 결국 헤세는 부모의 지인 목사가 운영하는 개인요양원으로 보내졌다. 자신보다 스무 살 연상이었던 으제니를 사랑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그렇게 그는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진단명은 멜랑콜리(우울)이었다. 헤세의 유일한 기쁨은 오직 시(詩) 뿐이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스스로의 의지를 시험하고 처절한 고독의 바닥까지 내려갔던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작품이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와 헤르만 헤세의 이력은 겹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이 소설에서 헤세의 분신은 한스의 급우 ‘헤르만 하일너’에게 가 있다. 시인을 꿈꾸는 몽상가 하일너의 정신세계에서 우리는 마울브론 시절 헤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알다시피 헤세 소설의 핵심은 분리된 두 자아를 각각의 인물에게 투영시켜 전개하는 데 있다. 독실한 경건파 선교사 부모에게서 태어나 경건하고 엄숙한 인간으로 자라기를 강요당한 소년 헤세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자기 자신으로 살겠다는 갈망으로 내면이 불처럼 끓어오르는 야생의 늑대와 같은 청춘의 헤세. 홀로 다니고, 자연 속에서 시를 쓰고, 기존의 질서에 갇히지 않고,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비판하고, 집단에 소외당하면서도 개인성을 잃지 않고, 급기야 금기를 깨고 수도원을 탈출하는 헤세의 실제 모습이 하일너에게서 고스란히 발견된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한스는 자연과 낚시를 사랑하며 어린 시절의 상실을 소리 없이 앓는다. 아버지와 고향 사람들을 실망시키며 수도원을 떠난 소년은 실제 헤세처럼 견습 기계공으로 일하고 첫사랑에 실패한다. 그리고 의문의 사고로 죽은 후에야 아버지와 고향 사람들이 고집하는 공간을 떠날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은 학교 교육에 희생당한 조숙한 천재의 비극이자 자연과 몽상을 즐기는 자유로운 인간이 권위와 세속적 이익에 치중하는 속물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결말이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정신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역사는 그 체제에 반항하는 자들이 이끌어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