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떠올랐다. 무척이나 어린 연령대에서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어른이 되기도 전부터 지치고, 때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며 사는 삶이란 얼마나 불행하고도 불안한지. 안타깝지만 오늘날 많은 아이들의 삶에 필요한 건 쉼표다.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사치인데, 하물며 휴식을 취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책을 읽는 게 또 다른 번잡함으로 해석될지도 모르나, 일단은 읽는다.
‘흔들리는 10대, 철학에서 인생 멘토를 찾다’라는 문장이 페이지에 적혀 있다. 어떤 류의 책일지 대략의 짐작이 가능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아니 흔들리기 마련이다. 충분히 뿌리 내리기도 전부터 흔들어 대는 이 세상, <이런 철학은 처음이야>는 아이들에게 단단함을 선사할 책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많은 고민들이 알고 보면 오로지 나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발견한다. 위로를 선사하기 위해 쓰인 책은 아닐 텐데도 괜찮다는 생각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책의 초미에 등장했다. 턱을 괴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각상에게서 느껴지는 생동감이 강렬한 나머지 그가 이 순간 무슨 고뇌에 빠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질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의문사항 중 가장 끈질기게 고민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이 요원한 것이 바로 ‘자아’에 관한 부분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로댕의 손길이 빚어낸 조각상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닮은꼴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나로부터 시작한 의문은 조금씩 몸집을 키워 조금은 다른 차원의 질문을 낳기도 했다. 인간이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우월한지,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데, 육식을 행하는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늘 배반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꼬리를 물고 질문은 이어졌으며, 끈질긴 답변으로 저자는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나날이 가중되는 불안의 원인이 현재 아닌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이 축복/저주인지를 놓고 고민하게 됐으며, 주어진 자유가 불행 아니 행복으로 나아가는 일에 사용될 수 있었으면 마음에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기도 했다. 최근 들어 부각된 인공지능에 대한 부분은 특별히 흥미로웠다. 과거 같았으면 정교하긴 해도 적용 분야에 한계가 명확해 로봇 등이 인간 세계를 지배할 거라는 식의 사고는 일종의 괴담으로만 존재했다.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져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많은 영역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더는 필요 없는 시대, 더 나아가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게 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까닭이 과연 무얼지, 철학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분야이지만 오로지 과거에만 속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나를 감싸고 있는 환경을 이해하고, 한정적인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 세대에 대해서도 고려할 수 있게 만드는 학문이 철학이었다. 줄기차게 들어온 인문학의 위기. 돈벌이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이 분야를 외면하고 있는데, 여전히 이러한 경향은 유효하다. 강인해 보이는 겉과 달리 속은 텅 빈 상태의 삶이 현대인의 트레이드 마크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들 만큼은 조금이나마 다른 형태의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싶다. 책안에서 오간 많은 이야기들이 철학, 아니, 주어진 삶을 낯설고 버거운 무언가로 더는 여기지 않을 수 있게끔 갑옷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자녀들에게 삶에 관한 철학서를 읽히기 위해 먼저 읽어본 것이다. 자녀들이 삶을 살아갈 때 단순히 공부벌레나 취업벌레처럼 자라지 않길 바란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그들이 세상을 읽는 견문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는 모든 부모의 바램(바람이 표준어이지만 왠지 바램으로 쓰고 싶다. 바람과의 혼동을 피하려는 마음일까??)일 것이다.
그래서 읽어보니 이 책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 입문서임을 알게 되었고, 충분히 자녀들에게 주어도 될 철학서임을 알게 되었다. 박찬국 교수는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를 통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의 글을 읽는 기회가 있어 읽어보며 철학을 독자들에게 쉽게 알려주는 필력가임을 알았다.
주제별로 구성된 각 강의는 청소년이라면 한 번쯤 짚고 넘어가면 좋을 부분을 언급해 주고 있어 철학을 어려워하는 청소년에 대한 안배가 보인다. 무엇보다 주제 앞부분에는 철학이 단순히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삶과 일상에 밀접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도록 청소년이 주인공인 공감툰으로 서두를 열어가는 면이 좋다.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질문을 던져주며 청소년의 눈높이 언어로 철학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철학이 무엇인지 이해한 청소년들은 본문 끝에 ‘함께 생각하기’ 코너를 통해 지금껏 배웠던 철학 문제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기회도 제공받게 된다.
십대란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시기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로서 현재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항도 하며,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갈지를 고민하며, 어떤 문제 앞에 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친구들과는 또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참된 우정은 무엇이며, 종교는 정말 믿어야할 대상인지도 고민하는 시기이다. 이런 고민들은 시시하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그래서 삶에 대한 바른 통찰이 필요하다. 바른 길잡이가 필요하다. 그런면에서 박찬국 교수가 써내려간 청소년을 위한 철학서는 가장 친절하고 다정하게 (청소년)독자들의 정신세계를 가볍게 터치해 준다. 칸트가 말했듯 철학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삶의 문제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하면 사실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어렵거나 현학적인 수사 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건네며 칸트, 니체, 하이데거, 데카르트 등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유를 넘나들면서 십대가 겪는 또는 겪어나가야 하는 문제를 다루어 주고 있다.
책은 명언과 같은 부분도 많다. 그래서 독자 또한 줄을 치며 중요한 부분을 체크해 둔다. 이 책은 청소년만 아니라 철학이라면 골치 아프다고 하는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철약교양서이다. 한 번 스윽 읽다보면 어른들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특히 2강과 7강이 재미있었다. 2강은 "내가 개나 고양이보다 우월한 존재일까?", 7강은 "바람직한 종교와 그렇지 않은 종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록이다. 당연히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인간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인간중심주의적' 철학적 견해이다. 특히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보다 개가 더 도덕적이지 않나?'라는 쳅터에서 보면 인간은 동물만 아니라 같은 종인 인간도 학살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기독교인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고귀한 영혼이 없는 자들로 여겼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 수많은 이들을 죽게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소나 돼지는 자신의 배만 채우면 서로를 죽이는 일이 없다.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자진해서 거지가 된 자'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여기서 한 부자 청년은 탐욕에 젖은 부자들에게 환멸을 느껴 재산을 다 버리고 거지가 되어 가나한 사람들에게 나아갔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탐욕에서 벗어난 순수한 영혼일줄 알았는데 부자들못지 않은 탐욕과 원한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이에 실망한 청년이 소들을 찾아가는데 청년은 여기서 "자기 배를 채울 정도의 풀만 뜯어 먹으면 만족하는 소에게서 자신이 찾던 맑은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청년은 소들과 함께 살면서 평화로운 삶을 즐겼다" 한다. 재미난 글이며, 무언가를 깊게 생각해 주는 글이다. 그래서일까?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개가 인간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보았다.
7강에선 바람직한 종교와 그렇지 않은 종교를 이렇게 구분해 준다. 요즘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로 인해 사회가 들썩인다. 이때 바른 종교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참된 종교의 기준은 "그 종교를 믿음으로써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는가"를 본다. 니체 또한 "그 종교가 인간을 정신적으로 병들고 허약한 인간으로 만드는가 아니면 강건한 인간으로 만드는가"를 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종교 자체보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그 종교에서 어떤 영향을 받아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변화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랑의 능력을 불러일으키는 인본주의적 종교가 바른 종교임을 말해준다.
이와 같이 현실에서 풀어야 될 문제를 직면하게 하면서 청소년의 시야를 넓고 깊게 확장해 주는 사고력 튼튼, 논리력 튼튼을 주는 철학서이다.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게 도와주는 이 책은 이렇게 지적인 측면은 물론, 새로운 시각과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더 쉽게, 더 새롭게, 더 유익하게 십대와 더불어 성인들을 행복하게 해줄 철학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한 문장
- 양심은 자신뿐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고귀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p50
- 동물은 본능에 따라서 사는 반면, 인간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삶을 꾸려가야 한다. p60
- 시궁창에서 사는 지렁이가 살아가는 방식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방식은 고정되어 있지 않지요. 인간이 사는 방식은 시대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p61
- 이 글은 컬쳐불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