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 1809년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실종되고 어머니는 두 살 때 세상을 떠나자, 세 살 때 한 사업가 부부에게 입양되어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1826년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도박과 음주에 빠져 양부모로부터 최소한의 재정적 지원으로 잠시 수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했다. 그 후 1835년에는 잡지사 편집인으로 근무, 그 이듬해 5월 클렘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생활고와 결핵에 시달리다 결혼 생활 6년 만에 사망했다. 그러자 포는 방탕한 생활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아 2년 후인 1849년 10월, 볼티모어의 길거리에서 쓰...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비평가. 1809년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실종되고 어머니는 두 살 때 세상을 떠나자, 세 살 때 한 사업가 부부에게 입양되어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1826년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도박과 음주에 빠져 양부모로부터 최소한의 재정적 지원으로 잠시 수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했다. 그 후 1835년에는 잡지사 편집인으로 근무, 그 이듬해 5월 클렘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생활고와 결핵에 시달리다 결혼 생활 6년 만에 사망했다. 그러자 포는 방탕한 생활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아 2년 후인 1849년 10월, 볼티모어의 길거리에서 쓰러져 마흔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 『어셔 가의 몰락』, 『황금 풍뎅이』 등의 단편과 『애너빌 리』, 『갈가마귀』, 『엘도라도』 등의 시를 남겼다.
1933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40대 중반에 농사와 도예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직접적인 동기는 일사 김봉룡 선생의 고희 회고전을 관람하고 크게 자극을 받아 삶의 행로를 바꾸게 된 것이다. 1978년부터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농토와 작업장을 마련하고, 작업에 들어간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제4회 공간대상을 받게 되고 자연미 가득한 도자기를 빚고 있다. 40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일체의 현대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의 용가마에 우리 육송을 때서 굽고 있다. 가마 불 때는 날에는 직접 농사지은 재료를 가지고...
1933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40대 중반에 농사와 도예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직접적인 동기는 일사 김봉룡 선생의 고희 회고전을 관람하고 크게 자극을 받아 삶의 행로를 바꾸게 된 것이다. 1978년부터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농토와 작업장을 마련하고, 작업에 들어간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제4회 공간대상을 받게 되고 자연미 가득한 도자기를 빚고 있다. 40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일체의 현대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의 용가마에 우리 육송을 때서 굽고 있다. 가마 불 때는 날에는 직접 농사지은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준비해서 이웃과 인연 맺은 분들께 토속적인 우리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저서로 수필집 『꽃은 흙에서 핀다』, 『고향이 있는 풍경』, 『흙장난』, 『꽃피는 산골』과 역서 『엘리아 수필집』, 『포오 단편집』 등이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 청와대, 교황청, 버밍햄 박물관,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 시카고 미술관, 시애틀 박물관, 에벨링박물관(스웨덴), 스토너파크 박물관(영국)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