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링은 1775년 뷔르템베르크(Wuttemberg) 지방 레온베르크(Leonberg)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 위해 셸링은 그보다 5년 일찍 태어난 헤겔·횔덜린과 더불어 튀빙겐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그의 나이 20세에 『철학의 원리로서 자아』를 출판하여 독일 지성계의 주목을 받았다. 피히테 자아철학에 대한 철학적 비판 후 자연철학에 몰두하였으며, 자연철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당대 독일의 지성인 괴테의 눈길을 끌어 피히테 후임으로 예나대학에 입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낭만주의자들과의 교제와 이들과의 논쟁을 통해 자연, 예술, 철학에 대한...
셸링은 1775년 뷔르템베르크(Wuttemberg) 지방 레온베르크(Leonberg)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 위해 셸링은 그보다 5년 일찍 태어난 헤겔·횔덜린과 더불어 튀빙겐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그의 나이 20세에 『철학의 원리로서 자아』를 출판하여 독일 지성계의 주목을 받았다. 피히테 자아철학에 대한 철학적 비판 후 자연철학에 몰두하였으며, 자연철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당대 독일의 지성인 괴테의 눈길을 끌어 피히테 후임으로 예나대학에 입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낭만주의자들과의 교제와 이들과의 논쟁을 통해 자연, 예술, 철학에 대한 자신만의 체계를 구축하려 시도하였으며, 헤겔 사후 헤겔의 도시 베를린에서 헤겔철학 전반에 대한 비판을 토대로 그의 후기 체계로서 신화철학과 계시철학을 강의하였다. 그리고 셸링은 1854년 스위스 바드 라가츠(Bad Ragaz)에서 영면에 들었다.
전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독일 카셀대학교 철학박사. 전남대학교 철학과 강사. 현재 전주대학교 HK 연구교수 .
독일 카셀대학 철학과에서 플릭킹어(H. G. Flickinger) 교수와 코바르지크(W. Schmied-Kowarzik) 교수의 지도를 받아 「대화를 통한 인정행위. 가다머 해석학에서 이해의 윤리적 토대에 관하여(Anerknnung durch Dialog. Zur ethischen Grundlage des Verstehens in Gadamers Hermeneutik)」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 후 전남대학교와 순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
전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독일 카셀대학교 철학박사. 전남대학교 철학과 강사. 현재 전주대학교 HK 연구교수 .
독일 카셀대학 철학과에서 플릭킹어(H. G. Flickinger) 교수와 코바르지크(W. Schmied-Kowarzik) 교수의 지도를 받아 「대화를 통한 인정행위. 가다머 해석학에서 이해의 윤리적 토대에 관하여(Anerknnung durch Dialog. Zur ethischen Grundlage des Verstehens in Gadamers Hermeneutik)」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 후 전남대학교와 순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전주대학교 HK연구교수로 있다. 핵심 연구 방향은 하이데거와 가다머의 해석학과 횔덜린 낭만주의이며, 이와 더불어 해석학적 방법론을 토대로 바라본 한국 근대와 유교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