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의 산문집이다. 미니멀 라이프 예찬을 담고 있다. 현대는 대중소비사회이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경제를 성장시키는 미덕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현대인의 '저녁이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 바쁘긴 한데 실속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그럼 "왜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물질에 몸과 마음이 매이지 않아야만, 인생과 그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쪽)"
저자는 '작은 것이 크다'는 생각의 바탕하에서 단순함에 대한 예찬론을 이어간다. 여기서 단순함이란 불필요한 것들을 깎고 덜어내 본질에 더 가까워지고자 함이다. '오캄의 면도날(Occam's razor)' 이론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낼 때 본질적 부문이 남는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삶에서 내핍과 절제를 우선해 적게 갖고, 적게 먹고, 작은 욕망으로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장석주의 ‘단순함 예찬’은 낭비 없는 삶을 추구하고, 참된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살자는 것이라고 하겠다.
저자의 속삭임은 코로나19사태로 지친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이젠 심플해지고 작아지려는 흐름이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살고 단순함 속에서 행복을 추구해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새, 아이들, 미소, 침묵, 고요, 시집, 여름아침, 겨울나무, 금식, 연못, 좌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구절에서 저자가 시인임을 느끼게 한다. 단순함은 아름답고 행복을 가져온다고 이야기한다.
단순하게 살려면 모든 것을 작게, 더 작게 하라.
그릇이 작아야만 음식도 더 작게 담을 수 있다.
음식이든 인생이든 마찬가지다.
최소 규모의 삶에 최대의 행복이 깃든다. (52쪽)
단순한 삶에 더 깊은 행복과 충만이 따른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행복을 위해서 절약을 통한 검소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절약은 탐욕에 바탕을 둔 인색함과는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안의 욕망을 비우고 생활방식을 단순화하는 것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행복을 찾자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책에 소개된 한 줄 한 줄의 이야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다음 구절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 가야 할지를 되세겨 본다.
먹고 사는 것과 상관없더라도 가끔은 들길을 걷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
한밤중 곁에서 걷는 친구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밤하늘에 가득 뜬 별들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시집도 읽고,
음악회도 가고, 연극도 보며 살자(201쪽)
욕심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가의 물건도 없고 넓은 집에 살지 않고 좋은 차를 타지 않지 않는다. 현재 특별하게 갖고 싶은 물건도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집안을 둘러보면 빈 공간이 없다. 적지 않게 쌓여 있는 책들, 베란다를 가득 채운 살림살이, 주방에 그릇이 가득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서랍장에 넣어두는 옷도 많다. 왜 버리지 못하는가? 반대로 왜 버리고 비워야 하는가?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건뿐이 아니다,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다.
‘왜 단순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물질에 몸과 마음이 매이지 않아야만, 비로소 인생과 그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쪽)
장석주는 단호하게 말한다. 단순한 삶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채우지 않고 비워둔 공간에서 생기를 찾고 빛나는 삶이다.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삶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말이다. 알려진 대로 그는 시골에 산다. 산책을 즐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산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그의 글에는 안온한 삶이 있다. 그의 삶이 정답은 아니지만 단순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정갈하게 정돈된 삶이 주는 평화를 보여준다. 내 주변을 둘러본다. 내게 속한 것들, 그것이 진정 삶의 본질을 위한 것들인가.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한다. 그 속도에 맞춰 살아야 할 의무가 없는데도 몸부림을 치며 쫓는다. 소읍에 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도시를 갈망한다. 그곳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씩 이곳과 다른 곳을 꿈꾸었다. 부질없는 욕망을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장석주의 글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눈과 귀로 느끼는 일상의 기쁨을 다시 찾는다. 무엇을 소유하고 무엇이 되려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과 마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한가롭게 걸어본 적이 있는가. 가만히 나무와 꽃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헤아릴 여유가 있었던가. 시골에 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런 삶과 가깝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욕심으로 마음을 채운 삶에는 여유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어쩌면 장석주가 예찬하는 걷기는 여유가 들어갈 틈을 만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걷기는 하늘과 태양과 바람을 가슴으로 품는 일이고, 빛으로 가득 찬 누리 속에서 자유와 고요함 속에서 몸을 끌고 나아가는 활동이다. 전진의 리듬에 존재를 내맡기는 이 무보상적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은 전적으로 무해한 기쁨이다. 날마다 하루의 일부를 쪼개 걷기에 나서는 것은 그것이 내면의 기쁨으로 채우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174쪽)
이 산문집에는 단순한 삶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꽃들이 피고 지는 것들 보고 집으로 날아드는 수많은 새들과 인사를 나누며 단출한 밥상의 맛을 아는 시골살이와 함께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 자연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사유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정갈한 문장으로 쓰인 시인의 소박한 삶에는 충만이 넘친다. 작지만 작지 않은 삶,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을 소망한다. 최소한의 것들로 살 수는 없지만 최대한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평온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먹고 사는 것과 상관없더라도 가끔은 들길을 걷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 한밤중 곁에서 걷는 친구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밤하늘에 가득 뜬 별들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시집도 읽고, 음악회도 가고, 연극도 보며 살자.’ (204쪽)
물질에 매몰되는 하루에서 벗어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보고 높아지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삶은 결코 어렵지 않다. 타인의 삶과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고 상념으로 채워진 마음을 조금만 비워도 충분히 단순해질 것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고, 중요한 건 복잡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단순함으로 시작하는 경쾌하고 가벼운 삶이 가까이 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거꾸로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어짜피 많이 가질 수 없으니 방향을 선회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많이 가질 수 없을뿐더러, 많이 가져도 관리할 수가 없다.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핑핑 돌아가는데 큰 집, 많은 물건을 언제 다 챙긴단말인가.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시골로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된 장석주 작가. 그의 시골 라이프는 평온하고 단조로왔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제 아예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책을 써 냈다. 그의 새 책은 단순함에 대한 예찬.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것이다.
미니멀라이프는 본질에 더 가까운 삶이다. 성공과 소유의 신화를 따르는 게 아니라 가치와 충만함을 추구한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은 제 안의 욕망을 비우고, 비우고, 비운다. 기필코 제 생활을 최소주의로 제한하고 생활 방식을 단순화하는데, 나는 이런 단순한 삶에 더 깊은 행복과 충만함이 깃든다는 사실을 배우고 깨달았다.
누군가 ‘이러한 삶이 너무 좋다'라고 백날 말해도, 그 사람이 행복해보이지 않으면 의미가 바랜다. 장석주 작가에게 미니멀라이프는 꽤 어울려보인다. 소박한 식사, 소박한 살림. 그런데, 그는 책을 많이 쓰고 많이 보는 사람 아닌가? 책과 미니멀라이프를 함께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의 서재가 어떤 모습인지 굉장히 궁금해졌다. 책을 제외한 삶이 미니멀라이프라면 조금 실망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책도 미니멀라이프 속에 들어와있다면 그 역시 매우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나갔다던 에피소드 안에 내가 익히 들어왔지만 전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시 한 편을 소개받게 되었다. 너무 멋진 말이라 옮겨 보고 싶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 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단순한 삶을 사는 데 ‘저녁이 있는 삶’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저녁을 침범받는 삶을 엄청 싫어한다. 야근, 업무시간 외에 진행되는 회의, 회식... 이런 것들이 나의 생활리듬을 모조리 깨 놓는다. 즐겁지 않은 자리, 스트레스를 받는 자리다보니 집에 와 잠드는 시간이 늦어진다는 단순한 시간적 문제가 아닌 내 생활 패턴을 벗어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평정심을 잃거나 앓게 된다. 저녁에 사람도 안 만나고 집에 처박혀(?) 책이나 보는 폐쇄형 인간이라고 손가락질해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냥 내 시간을 갖고 싶다. 아이들과 교류하고, 학원 다녀오는 아이를 마중 나갔다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오고, 느긋하게 텔레비전도 한 프로그램 보고, 보고 싶은 책을 읽거나 가까운 카페로 마실을 가는 나의 저녁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는 ‘저녁이 있는 삶은 내 안의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삶이다. 우리 안의 본성이 갈망하는 바로 그것을 따라가라!’고 얘기해준다.
그는 행복과 단순함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중요한 의무는 단 하나뿐이다.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것,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움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 그게 인생 최고의 소명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리스어 헤도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그리스어 ‘헤도네hedone'는 즐거움이라는 뜻인데, 그 문자적 의미는 달콤함이다. ’헤도네‘는 욕구나 소망이 충족되었을 때의 기쁨이나 원한 물건을 쥐었을 때의 만족감이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식도락이나 향락을 찾고 누리는 쾌락주의를 이상으로 추구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그가 용납한 것은 배고픔이나 목마름 따위의 자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욕구의 충족이고, 이것의 충족 없이 행복은 없다고 믿었을 뿐이다. 사람은 기본적인 요구의 결핍 상태를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이 고통에서 벗어날 때 행복해진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의 조건으로 물질적인 욕구를 긍정했지 과잉 소비를 조장한 게 아니다. 그의 철학은 금욕적인 데가 있다. 그가 권하는 것은 자연적이면서 소박한 욕구의 충족이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헤도네‘였을 뿐이니까.
다독가인 장석주 작가. 책이야기가 빠지면 섭하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장석주 작가와 만난다면, 무슨 책을 읽으면 좋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어쩐지 시집이라는 답이 나올 것만 같았는데, 진짜 시집을 추천해준다. 역시 그는 시인이기 때문에? 이유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무슨 책을 읽으면 좋아요, 라고 물을 때 나는 나이가 들수록 좋은 시집과 철학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특히 시집을 읽는 것은 마음을 거울인 듯 닦는 일이고, 언어를 가다듬으면서 풍요롭게 일구는 일에 부지런한 이들과 대화를 나는 일이다. 독성 언어, 병든 언어, 찌든 언어, 천박한 언어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시인의 언어는 깊은 산골짝에 숨은 옹달샘처럼 청량하다. 천박하고 비속한 말은 제 품격의 천박함과 비속함을 세상에 선전하는 일이다. 바른 말, 간명하고 깊은 뜻이 분명한 말, 생각의 올바름을 드러내는 말을 쓰는 사람은 깊이 사귀지 않아도 마음이 어여쁜 사람인 걸 알 수 있다. 말과 언어는 그것을 쓰는 자의 인격과 성정을 비추는 거울인 까닭이다.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이야기, 백석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안도현 작가도 그렇고 백석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읽다 그만둔 백석 평전이 자꾸 아른거린다. 다시 읽어볼까 계속 망설이다, 헌책방에서 <그리스인 조르바> 페이퍼백을 구매했다. 제대로 잘 만들어진 장정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사면 어쩐지 잘 안 읽힐 것 같아서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라는 쿨한 기분으로 책을 사 두었다. 내가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함은 지혜의 응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평온하고 자족적인 삶의 방식이다”
단순한 삶을 살라고 힘주어 얘기하는 장석주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이다.
좋은 체질을 물려 받았다, 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그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항상 몸의 어느 구석엔가 술기운이 남아 있는 채로 살았다. 한 삼 일 금주를 하고 빈속에 소주를 마셨더니 액체가 지나가는 몸속의 자리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래도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는 일 없었으니, 사십대 중반까지는 거의 매일 마실 수 있었으니 좋은 체질을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사는 것, 그게 내 방식의 삶이다. 하루의 보람은 사과 한 알 먹는 거, 세 시간 이상 햇볕을 쬐며 걷는 거, 8시간 정도 읽고 쓰는 거, 심심함 속에 머무는 거 따위다. 그리고 이타적 생각을 하며 살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 되기를 실천해야 삶이 온전해진다...” (p.33)
서른 중반 이후 꾸준히 수영을 하고 나서는 좀처럼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특히 코감기에 약하여 환절기마다 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감기에 걸린다고 해도 스쳐 지나는 정도이다. 비강 세척이라고 하여 콧속의 빈 공간을 세척하는 것으로 코 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는데, 수영의 호흡법이 바로 이 비강 세척과 닮았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 배후에는 물려받은 좋은 체질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먹고 마시며 일하고 잠자는데, 이것은 몸을 쓰며 사는 사람의 일이며 생명의 본분이다. 몸 쓰는 일을 중단하면 사람은 죽는다. 먹기, 잠, 일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세 요소다. 이것들을 기쁨으로 누리며 충만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p.92)
그래도 완벽하게 감기를 막지는 못한다. 일 년에 두어 차례 들어오는 듯하다가 빠져나가는 감기가 있고, 또 두어 차례는 실제로 감기에 걸린다. 이번 주말 감기에 걸린 몸을 추스르느라 이틀 동안 집에서 잠자코 있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걸쳐 편도선이 부었고 토요일 오전에는 코를 풀어내야 했다. 약국에서 두 종류의 약을 받았고, 두 알씩 네 알을 하루 세 차례 먹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삶의 안쪽에는 다양한 무늬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이 만든 무늬다. 나는 매화, 모란, 작약을 좋아한다. 나는 가을의 달, 바다, 대숲, 사막, 황무지를 사랑하고, 학교, 병원, 감옥, 군대 막사, 공장 들을 싫어한다. 나는 바닷가, 서리 내린 들판,고대 유적지, 절들, 섬, 항구,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를 좋아한다. 햇빛, 의자, 대나무, 정원, 숲길, 제주도, 거문고 소리, 가을 풀벌레 울음소리를 좋아한다.” (p.167)
밥을 먹고 약을 먹은 다음에는 몸을 휘감는 약기운을 느끼며 잠시 시들었다. 자고 일어나 다시 밥을 먹기 전의 시간 동안에 책을 읽었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제목처럼 책에는 단순한 삶이라는 지향점을 향하고 있는 작가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가득하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안성의 한 호숫가에 거처를 정하여 생활하던 시기에 썼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글들이 다수 실려 있다.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것은 새벽에 깨어나 마당을 쓰는 늙은 어머니들이다. 반면에 밀실에서 군인들을 증강시키고 군수물자와 무기들을 늘려 비축하는 회의를 하고 결정을 내리는 자들은 그 구실로 평화를 내세우지만, 그 증강의 본질은 더도 덜도 아닌 ‘전쟁’이다. 세상은 ‘적란운과 별똥별과 오솔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단것과 뇌물과 회의’에 빠진 사람들로 나눌 수가 있다. 앞서의 사람들이 지구 자원을 사랑하는 착한 생태주의자들이라면, 뒤의 사람들은 지구 자원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려는 사람들이다. 뒤의 사람들 때문에 지구는 유례없는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문제는 뒤의 사람들이 자꾸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더 많은 자연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지구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지구는 큰일났다!“...』 (p.217)
단순한 삶을 말하기는 쉽지만 단순한 삶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트랜드는 감기처럼 반짝 유행하였다가 다시 잠복기에 접어들기를 반복한다. 내가 온전히 내 뜻대로 내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인지 가늠해 볼 때마다 석연치 않다. 탐미주의자는 아닐지언정 아름다움의 실현이나 실현된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다. 해가 바뀌면 원하지 않아도 새로운 한 해를 이렇게 저렇게 희망하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아름답고 싶다, 단순하여서...
장석주 /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 문학세계사 / 221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