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조예은 저
작년 여름 도서관에서 진행한 저자의 강의를 들었다. 사실 나는 디자인에 별 다른 관심이 없다. 예술 쪽에 재능 있는 딸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부모로서 교양 수준의 선택이었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좋은 타협점이 됐다.
뜻밖에도 첫 강의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내 고정관념을 깨는 저자의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평범한 생수병 하나를 들고 저자는 이 디자인은 생산자 관점에서 만들어졌지 소비자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가? 아, 그렇구나!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그동안 당연하게 보아왔던 수많은 제품의 디자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에 의하면 몇 년 전부터 디자인에 불기 시작한 인문학 바람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고 한다. 디자인은 원래부터 순수미술의 변화와 거의 대부분 발을 맞추어 왔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2차 세계대전 후 디자인이 순수 미술에서 갈라져 나와 예술이 아닌 경제분야에 서식해야 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한다. 한국전쟁 후 산업사회로 빠르게 성장하기 위한 한국이 들여온 디자인이 바로 이러한 기능주의적 디자인이었다.
"시작부터 한국의 디자인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는 거리를 두고 생산의 차원으로만 한정된 것이다. 그리고 품질을 향상하기보다 낮은 가격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했던 개발도상국적 체제는 디자인이 가치보다는 기능을, 생활보다는 기업을 향하게 만들었다."
결국 인문학에서 격리된 채 생산활동에 국한된 디자인이 21세기에 들어와 넘쳐나는 물질 속에서 안목이 높아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디자이너와 기업이 인문학으로 회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디자인은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예술의 효용성을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무엇보다도 예술을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그 가치가 실현된다고 한다.
"예술의 가장 큰 의의는 그것을 매개로 하여 사회가 소통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감동을 낳고 문화를 낳으면서 사회적으로 큰 공헌을 한다. 이것은 디자인이 기업 또는 생산 활동을 통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은 이제 낡고 좁은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보편적인 장에서 진정한 예술이 될 필요가 있다." (206쪽)
저자에 의하면 최근 디자인에서 인문학이 강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세상에 대한 우주관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론적 우주관이 지배했던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는 생물학적 우주관을 바탕으로 급선회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나온 디자인이 유기적인 형상이나 불규칙적인 구조다. 디자인이 비로소 기능주의에서 벗어나 인문학의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과 통찰을 쌓아갈 때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디자인 내부의 기술적, 물질적 과제들을 풀어가리라 저자는 전망하고 있다.
책 속으로:
예술과 구분하기 어려운 디자인들 (왼쪽 페이지 죄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마티아스 벵슨의 그로스 체어, 우메다 마사노리의 로즈 체어, 론 아라드의 빅 이지 체어,
자하 하디드의 세락 벤치.
오른쪽 페이지 위는 잉고 마우러가 디자인한 조명인 포르카 미제리아,
아래는 알레산드르 멘디니의 칸딘스키 의자.
자하 하디드의 파격적인 건축인 카이로 엑스포 시티 Cairo Expo City
파비오 노벰브레가 디자인한 의자인 졸리 로저
기술적인 문제에 주로 치중한 기능주의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산업 디자인도 이제는 더 이상 기술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 본질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해져서 인문학을 찾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과학을 빙자한 형식적인 디자인 개발 방식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외국 사례를 보면 역량 있는 디자이너나 기업일수록 이제는 기계적 방법론이나 객관적 데이터가 아니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한다고 언급한다. 소비자는 충족시키면 되지만 인간은 그보다 더 나아가 감동까지 전달해주어야 하며 그래서 인문학을 뒤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의미 있는 메시지를 만들려면 디자이너에게는 마케팅이나 기호학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디자인계에 부는 이러한 바람은 이미 순수예술분야에서는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19세기 중엽 유럽의 정치적 혁명으로 왕족 및 귀족 세력이 무너지자 당시 미술가들은 후원자들을 잃게 되어 삶이 불안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인상파 화가들을 비롯해 일련의 미술가들은 특정 계급이 아닌 보편적인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새로운 회화의 전망을 내놓고 이렇게 대중과 직접 만나면서 후원자 대신에 미술 시장을 얻었다는 것이다.
디자인도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을 매료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보편성에 기대면서 사회적 의미를 함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동안 디자인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주요한 방법은 아름다운 형상을 창조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형상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인문학적인 행위라 언급한다. 물질적 형상들이 일정한 정신적 경향에 의해 정리된 데에서 미적인 쾌적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색과 형태 및 그것들의 질서로써 표현하는 것 이외에도 디자인 속에서 발견되는 아이디어가 바로 디자인의 외형 못지 않게 디자이너의 개성과 생각이 발휘되는 중요한 창구라고도 언급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형태의 디자인도 단박에 매력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디자인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은 바로 정신적 감동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감동은 디자인의 내적 완성도나 그에 내포된 깊은 인문학적 소양에 의해 촉발된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이 책에서는 디자인의 역사나 지식들에 대해 많은 설명들이 들어있다.
20세기 기능주의 디자인의 산실이었던 바우하우스부터 시작해서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언급, 그리고 철가방이나 에펠탑의 사례를 통해서 본 디자인 이야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또한 코코 샤넬은 모든 옷들을 허리를 중심으로 하여 상의와 하의로 나누어서 입고 벗기가 아주 간단하고 활동하기도 혁명적으로 편리해진 옷을 디자인하여 현대적인 복식을 최초로 디자인 한 인물로 각인되어야 하며, 프랑스의 의상 디자인은 인체 또는 인체 모형에 직접 천을 대고 마름질 하는 입체 재단 방식을 통해 옷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근본으로 하는데 반해 이탈리아의 의상 디자인은 입체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이 흐느적거리게 하는 구조라면서 이러한 차이는 모두 문화적 전통에서 오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의상의 색상 역시 여러 원색이 서로 강하게 부딪히면서도 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귀족 문화의 패션 경향을 그대로 따온 프랑스가 서로 다르다고 한다. 거기에다 스페인의 가우디가 만든 성가족 성당은 이슬람과 가톨릭의 두 이질적인 문명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낸 걸작이라면서 문화적인 배경이 중요함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줄곧 이 책에서 강조되는 것은 기술의 존재감이란 결국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곧 사라지며 디자인은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들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정보를 통해 습득할 수 있지만 가치에 관한 부분은 통찰과 이해가 있어야 하고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또한 물건을 구입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상품이 아니라 구매자의 삶을 조직화하는 문화인류학적 대상으로 바뀐다면서 사실상 디자인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고 말한다. 결국 물건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단순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제품을 디자인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경쟁자들과는 다른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이러한 인문학을 예술 관점에서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다. 특히 인문학에서 가장 큰 바탕은 철학이며 그 뿌리는 우주관이라면서 그 기원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순수미술과의 영향관계도 소개하면서 예술의 가장 큰 의의를 그것을 매개로 하여 사회가 소통한다는데 두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디자인 분야가 기능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