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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 「햄릿」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궁성(宮城)을 지키는 병사들이 유령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유령’은 이 세상 밖에 있는 존재이다. 살아있는 사람과 유령은 결코 같은 공간에서 살 수 없다.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왜 유령이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일까? 게다가 병사들이 본 유령은 승하한 선왕(先王)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갑옷을 입고 유령으로 나타난 선왕은 무언의 메시지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보낸다. 물론 선왕의 메시지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선왕의 아들인 햄릿 왕자에 한정되어 있다. 죽어서도 이승을 떠도는 유령은 가슴에 맺힌 한(恨)을 풀지 못한 존재이다. 선왕은 어떤 한이 맺혔기에 한밤에 궁성을 떠도는 것일까? 선왕인 햄릿 왕을 이어 선왕의 동생인 클로디어스가 덴마크 왕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왕의 아내인 거트루드가 클로디어스와 결혼을 했다. 선왕이 죽자마자 클로디어스는 한 나라와 사랑하는 여자를 동시에 얻은 것이다.
햄릿은 숙부인 클로디어스에게 도통 마음을 줄 수 없다. “핏줄은 통해도 마음은 통하지 않아.”(21쪽)라는 진술에 숙부를 향한 햄릿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햄릿은 선왕을 태양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그에 비한다면 숙부는 암흑에 불과하다. 태양처럼 빛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채 두 달도 안 되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잊고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인가!”(24쪽)라는 말에 드러나는 대로, 햄릿은 아버지를 배신(?)한 어머니를 뭇 여자들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는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에게 사랑을 갈구했다.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가 죽은 지 한 달도 못 되어 숙부의 아내가 되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맹세한 사랑은 그럼 무엇이 되는 것인가?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을 마음속으로 갈무리하지 못한 햄릿에게 병사(호레이쇼, 마셀러스)들이 유령으로 나타난 선왕의 소식을 전한다. 죽은 아버지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헤매고 있다니! 햄릿은 궁성에서 무언가 흉측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직감한다.
유령이 알고 있는 진실을 햄릿은 모른다. 진실을 알려면 햄릿은 유령과 만나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유령은 산 자들과 더불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사이에는 엄연한 경계가 있다. 선왕의 유령은 지금 그런 경계를 뛰어넘어 아들인 햄릿에게 진실을 말하려고 한다. 유령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은 햄릿의 삶을 뒤흔들 만큼 치명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실을 굳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유령의 입으로 밝힐 까닭이 없다. 선왕의 유령과 만난 햄릿은 “운명이 나를 부르고 있어.”(35쪽)라고 이야기한다. 유령의 입에서 진실이 터져 나오는 순간 햄릿은 자기 삶에 드리워진 운명의 그늘과 맞서야 한다. 오로지 햄릿만이 자기 운명과 맨얼굴로 대면할 수 있다. 자기 운명과 기꺼이 마주하려는 햄릿에게 선왕의 유령은 “네 아비를 죽인 독사는 지금 머리 위에 왕관을 쓴 자”(38쪽)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숙부가 아버지를 죽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숙부와 어머니가 결혼을 했다.
이렇게 해서 난 목숨뿐만 아니라 왕관, 왕비마저도 한꺼번에 빼앗기고 말았다. 게다가 죄업이 한창일 때 죽는 바람에 성찬식도 못하고 최후의 참회 기도도 없이 하나님 앞에 끌려나가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오, 정말로 끔찍한 일이다! 정말로 무서운 일이다. 만일 너에게 조금이라도 효심이 남아 있다면, 덴마크 왕실의 거룩한 침상을 패륜과 정욕 속에 그대로 버려 두지 말거라. 그러나 이 일에 대한 복수를 하되 네 마음을 더럽히지는 말아라. 그리고 아무리 분노가 솟구치더라도 어머니를 해치지 말고 하늘의 심판에 맡겨 둬라. 그녀의 마음속에 가책이 일어나 고통을 받도록 내버려두거나. 자, 이제 이별의 시간이다. 반딧불이 희미해지는 것을 보니 새벽인가 보구나. 잘 있거라. 잘 있거라, 내 아들. 나를 잊지 말거라. (퇴장)
진실을 알기 전 햄릿은 선왕의 유령 앞에서 복수를 맹세했다. 참혹한 진실을 들은 그는 이제 숙부와 어머니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선왕의 유령은 햄릿에게 덴마크 왕실의 거룩한 침상을 패륜과 정욕 속에 파묻은 숙부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효심’이란 말을 내건 아버지의 명령이다.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면 효자가 되고, 따르지 않으면 불효자가 된다. 죽은 아버지가 살아있는 햄릿의 행동을 규제하는 원리가 되었다고나 할까. 선왕의 유령은 어머니는 해치지 말고 하늘의 심판에 맡겨두라고 이야기한다. 남은 생을 끔찍한 마음의 고통을 받으며 살게 만들라는 얘기겠다. 마음의 태양으로 삼은 선왕의 명령을 햄릿이 어떻게 어길 수 있을까. 아버지는 “나를 잊지 말거라.”라는 말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사라졌다. 아버지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를 햄릿은 숙부 살해와 어머니를 향한 증오로 내보여야 한다. 복수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햄릿은 ‘패륜’을 저지르는 상황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셈이다.
어머니를 향한 햄릿의 증오는 곧바로 모든 여자들을 향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오필리아와 만난 자리에서 햄릿은 “아름다움이 정숙한 여인을 타락시키는 것은 정숙함의 능력으로 아름다움을 숭고하게 이끄는 것보다 쉬운 법이오.”(72쪽)라고 말한다. ‘타락’과 ‘숭고’라는 관념으로 햄릿은 여성을 바라본다. 어머니는 타락의 산증인이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어머니는 정숙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정숙함을 포기하고 다른 남자를 향한 저열한 욕망을 선택했다. 숙부의 아내가 된 순간 어머니는 정숙함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을 햄릿은 여자들의 본성이라고 섣불리 판단한다.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수녀원에 가라고 충고한다. 굳이 결혼을 한다면 바보와 하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다. 똑똑한 녀석들은 결혼하고 나면 괴물로 변한다는 게 그 이유다. 수녀원에 가면 오필리아는 정숙함을 지킬 수 있지만, 결혼을 하면 오필리아는 곧바로 욕망에 구렁텅이에 빠져들 거라는 햄릿의 이 생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아버지의 복수에 눈이 먼 햄릿은 궁성에 들어온 배우들을 이용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숙부에게 넌지시 알린다. 왕과 왕비가 보는 자리에서 배우들은 한 남자가 왕을 독살하고 왕비와 사랑에 빠지는 무언극을 공연한다. 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숙부 입장에서는 섬뜩한 얘기다. 무언극은 지금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들이 어떻게 진실을 알았단 말인가? 숙부는 햄릿이 진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햄릿이 벌이는 기행을 이상하게 여기던 차다. 자신의 목을 서서히 옥죄는 손을 느끼며 숙부는 진실을 알아버린 햄릿을 제거해야겠다는 마음을 품는다.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친형인 선왕을 독살하고 왕위에 오른 사람을 누가 참된 왕으로 인정하겠는가. 진실을 숨기려면 진실을 아는 햄릿은 죽어야 한다. 이제 햄릿과 숙부는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 막혀버렸다. 햄릿이 살면 숙부가 죽어야 하고, 숙부가 살면 햄릿이 죽어야 한다.
햄릿은 배우들이 벌인 무언극을 통해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했음을 확실히 알게 된다. 숙부를 죽여야 하는 이유는 이제 분명해졌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아들이 죽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어머니이다. 햄릿은 “천륜은 어겨선 안 된다.”(89쪽)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말로 어머니를 매질할지언정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게 햄릿이 내린 결론이다. 어머니를 해치지 말고 양심에 불을 지르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햄릿은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모르는 어머니는 어떻게든 숙부와 햄릿을 화해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을 들을 햄릿이 아니다. 그는 어머니가 있는 내실로 가는 도중 무방비 상태로 기도를 하는 숙부를 목격한다. 숙부를 죽이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였는데, 그는 곧바로 칼을 거둔다. “저 자가 기도하며 영혼을 깨끗이 씻고 승천할 차비 중에 죽여 버리는 일이 복수란 말인가?”(92쪽)에 그 까닭이 나와 있다. 햄릿은 숙부가 구제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죽이려고 한다. 그래야 죽어서도 지옥의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
내실에서 어머니와 다투는 와중에 햄릿은 커튼 뒤에 숨어 두 사람의 얘기를 엿듣던 폴로니어스를 죽이게 된다. 폴로니어스는 레이날도와 오필리아의 아버지로 숙부의 충복이다. 폴로니어스를 죽임으로써 햄릿은 숙부뿐만 아니라 레이날도와 오피리아마저 적으로 두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햄릿은 어머니에게 진실을 폭로한다. “더럽고 역겨운 땀내가 뒤범벅이 된 이불 속에 들어가 썩은 것이 들끓는 속에 더러운 돼지 같은 놈과 히히덕거리며 몸을 섞다니…….”(97쪽) 더러운 돼지 같은 놈은 “살인자, 악당. 선왕의 발가락 때만도 못한 놈. 왕위와 왕국을 가로채어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는 날도둑놈…….”(97쪽)으로 표현된다. 어머니는 그러니까 왕국을 가로챈 살인자와 몸을 섞은 속되고도 속된 여자가 되는 것이다. 이때 선왕의 유령이 잠옷 차림으로 등장한다. 왕비 눈에는 유령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햄릿만이 볼 수 있다.
유령은 우물쭈물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햄릿을 나무란다. 복수를 부추기기 위해 유령은 다시 햄릿 앞에 나타난 것이다. 선왕의 유령은 알고 있을까? 복수를 강요하면 할수록 햄릿은 더욱 더 극단적인 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선왕의 유령이 들려준 진실을 알고부터 햄릿은 서서히 자신을 잃어간다. 햄릿이 벌이는 행동은 오로지 아버지의 복수라는 지상명령에 종속되어 있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71쪽)라는 말은 이리 보면 허언이 아니다. 아버지의 명령은 햄릿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내몬다. 햄릿에게는 복수만이 진실을 내보이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려면 숙부를 죽여야 하고, 어머니를 끝없는 고통 속에 빠뜨려야 한다. 숙부를 죽이고 햄릿이 과연 살 수 있을까? 어머니를 고통에 빠뜨리고 햄릿이 과연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그런데 도대체 내 꼴은 뭔가? 아버님은 살해당하고, 어머님은 더럽혀지고, 복수를 위해 이성도 정열도 폭발해야 할 지경인데, 사생결단을 못 내고 죽치고만 있다니. 보라, 지금도 저 2천 명의 군사들이 죽음의 길을 가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보고도 부끄럽지 않은가. 변덕스럽고 쓸모도 없는 명예에 이끌려 잠자리로 가듯 무덤을 찾아가고 있다. 대군의 자웅을 겨루기에도 전사들을 묻을 묘지로도 모자랄 비좁은 땅을 위해서 싸우러 가지 않는가? 아, 이제부터는 내 마음아, 잔인해져야 한다. 복수심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111쪽)
영국으로 가라는 숙부의 명령을 받고 햄릿은 궁성을 나서 길을 떠난다. 항구로 향하는 길에서 햄릿은 폴란드를 공격하기 위해 나선 노르웨이 군을 만난다. 가냘파 보이는 젊은 귀공자가 군대를 이끌고 있다. 햄릿은 원대한 야망에 부푼 영웅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무런 이익이 없는 싸움에도 사람들은 저토록 큰 열정을 내보이는데, 아버지의 복수라는 뚜렷한 목적을 지닌 자신은 왜 이리도 사생결단을 내지 못하는가? 햄릿은 마음속을 흐르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잔인해져야 한다.”라고 다시금 마음을 다진다. 복수를 완수하려면 복수심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면 안 된다. 햄릿이 복수심을 되새기며 영국으로 떠날 즈음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아는 정신이 나간 채 궁 안을 떠돌며 노래를 부른다. 임을 잃은 노래다. 아버지는 죽었고, 햄릿은 떠났다. 졸지에 아버지와 연인을 함께 잃은 오필리아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것인가
여자들은 진실을 모른다. 진실을 모르는데도 그녀들은 엄청난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햄릿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숙부의 미묘한 관계 속에 끼어 있고, 오필리아는 사랑과 복수 사이를 오가는 햄릿의 미묘한 마음에 깃들어 있다. 여자들은 스스로 행동하지 못한다. 햄릿에게 진실을 들은 어머니는 여전히 숙부 곁에 있고, 아버지와 연인을 잃은 오필리아는 실성한 채 궁성을 떠돌고 있다. 오필리아의 아버지, 그러니까 폴로니어스의 복수는 아들인 레어티스를 통해 실행된다. 레어티스는 무장을 하고 왕궁을 침범한다. 숙부는 폴로니어스를 죽인 사람은 햄릿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한 두 남자, 레어티스와 햄릿은 이렇게 운명처럼 만난다. 두 남자가 만나려면 영국으로 떠난 햄릿이 다시 궁으로 돌아와야 한다. 영국으로 떠나는 배에서 햄릿은 숙부가 영국 왕에게 보낸 비밀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에는 햄릿을 죽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친서를 위조해 사신들에게 들려 보내고, 햄릿은 해적을 핑계 삼아 궁으로 돌아온다.
세 사람이 드디어 궁에서 만난다. 햄릿은 아버지의 원수인 숙부 클로디어스를 죽여야 하고, 레어티스 또한 아버지의 원수인 햄릿을 죽여야 한다.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의 장례식이 있는 날, 햄릿은 궁으로 들어가 레어티스와 마주친다. 레어티스는 숙부와 한통속이 되어 햄릿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검술 시합을 벌여, 독이 묻은 칼로 햄릿을 해치려는 계획이다. 숙부는 한 술 더 떠 포도주로 햄릿을 독살할 계획까지 세운다. 햄릿과 숙부와 레어티스는 목숨을 걸었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끔찍한 게임이 벌어진다. 검술 실력은 햄릿이 레어티스보다 좋은 모양이다. 1회전과 2회전을 햄릿이 이긴다. 3회전은 무승부. 승부가 끝나고 햄릿이 옆을 보는 틈을 노려 레어티스가 갑자기 칼로 햄릿을 찌른다. 햄릿이 격분하여 레어티스에게 덤벼들고 그 와중에 서로의 검이 바뀐다. 이제는 햄릿이 독이 묻은 칼로 레어티스를 공격하게 된 것이다.
검술 시합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된다. 1회전이 끝나고 햄릿의 술잔으로 포도주를 마셨던 어머니가 독에 중독되어 죽는다. 죽기 직전 어머니는 햄릿에게 술에 독이 들어 있다고 외친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햄릿이 반역이라고 소리치며 궁성 문을 걸어 잠근다. 레어티스가 칼에도 독이 칠해져 있다고 고백하며 왕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햄릿에게는 숙부에게 복수를 할 절호의 순간이 왔다. 이 기회를 놓치면 끝이다. 햄릿은 숙부에게 독배를 들이댄다. 독배를 마신 왕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햄릿의 복수는 이제 끝났다. 그리고 무엇이 남는 것일까? 레어티스가 죽음을 앞두고 햄릿에게 서로를 용서하자고 말한다. 독에 중독되어 얼굴이 창백해진 햄릿 또한 주저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햄릿은 부하 병사인 호레이쇼에게 반드시 살아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전하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폴란드를 정복한 포틴브라스 2세를 덴마크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는 이내 숨을 거둔다.
권력은 무상하다는 말로 햄릿 에 그려진 상황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햄릿은 포틴브라스 2세처럼 원대한 희망을 품은 왕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이 햄릿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햄릿의 운명은 아버지의 운명과 이어져 있다. 억울하게 살해당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복수를 명령했다. 아버지의 명령(도덕)을 따르려면 햄릿은 숙부를 죽여야 하고, 어머니를 깊은 고통 속에 빠뜨려야 한다. 아버지의 명령은 절대명령이다. 어길 수 없는 명령이라는 얘기다. 햄릿처럼 생각이 많은 인물이 쉽게 이룰 수 있는 명령이 아니다. 이 작품의 비극성은 무엇보다 햄릿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죽하면 선왕의 유령이 다시 나타나 복수를 독려할까. 셰익스피어는 내면 갈등에 시달리는 햄릿을 통해 절대명령을 받은 자가 감당해야 할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햄릿이 추대한 포틴브라스 2세가 행운의 왕관을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이 작품은 끝난다. 포틴브라스 2세의 아버지인 포틴브라스 1세는 햄릿의 아버지와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해 노르웨이 왕위에서 내쫓겼다. 포틴브라스 2세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몰래 군사를 모으기도 한 야심만만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일이 모든 아들들에게 부여된 절대명령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그는 절대명령을 성실히 수행하기에 가장 알맞은 왕인지도 모른다. 포틴브라스 2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수행한다. 햄릿처럼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에 혼란을 불어넣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당대의 권력자들에게 바로 이 점을 얘기하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감당하려면 냉혹한 권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로 보면 햄릿은 권력자로는 한참이나 수준 미달이다. 돌려 말하면 햄릿이나 오필리아처럼 순수한 인물들은 절대명령이 도덕으로 개진되는 사회에서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선왕의 유령이 이 세상에 퍼뜨린 진실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햄릿이나 숙부처럼 진실을 알고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머니나 오필리아처럼 진실은 전혀 모른 채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도 있다. 저승에 간 햄릿이 선왕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아버지의 복수를 수행한 대가로 햄릿은 모든 것을 잃었다. 어머니는 독약을 마시고 죽었고, 연인인 오필리아는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실성을 해 종국에는 물에 빠져 죽었다. 복수는 언제나 복수를 부르는 법이다. 복수가 끝나려면 그와 연관된 모든 사람이 죽어야 한다. 선왕의 유령에게 진실을 듣는 순간 햄릿은 죽음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다. 햄릿은 직관적으로 이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는 끊임없이 복수를 미루었는지도 모른다. 햄릿이 가장 인간다운 고민을 한, 그래서 가장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을 한 인물이라는 것은 여기서 분명해진다고 하겠다.
먼저 셰익스피어 5대희극을 읽은 아이가 이 책도 읽고 싶어해서 주문해 주었어요.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최대한 가까운것처럼 느껴집니다. 희곡집처럼 되어있어서 아이가 시나리오처럼 읽고 재미있어하더라구요. 셰익스피어가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는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것 같아요. 햄릿,오셀로,맥베스,리어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아이가 어려운책에 도전하는게 이쁘네요.
세계의 다양한 고전 문학 가운데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인종과 언어를 초월하여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고유한 삶의 철학과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불멸의 감동이 흐르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정수를 모은 것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담고
있다.
복수를 앞두고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 심리를 세련된 필치로 그린 『햄릿』,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새삼 돌아보게 하면서 선과
악의 실체를 그대로 드러낸 『리어왕』, 사랑과 질투,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섬뜩한 악마성을 묘사한 『오셀로』,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불러일으킨 고통과 비극을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게 파헤친 『맥베스』를 수록하였다.
세계문학의 젖줄인 셰익스피어는 누구나 한 번은
건너야 할 강이지만, 어렵고 난해한 문투로 인해 읽기 쉽지 않았다. 이 책은 초보 독자라도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딱딱한 문어체 문장을 입에
익은 말투로 쉽게 풀어내었다. 그러나 원본의 재미는 최대한 살려 셰익스피어와의 진정한 정신적 교류를 나눌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