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의 외척 대윤과 명종의 외척 소윤의 권력투쟁
사림파의 정치적 기반 축소와 붕당朋黨의 형성
사욕을 채우는 장으로 전락한 조선 정계
조선 중기, 왕비의 외척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들은 조정을 비롯한 사회 전반적으로 절대적인 위세를 누렸다. 정치政治와 상관없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며 대립하던 두 정치 세력의 대표는 모두 외척 출신이었으며, 인종의 외삼촌 윤임이 속한 대윤과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이 속한 소윤이 두 축이었다.
중종 사후 인종이 즉위하면서 대윤이 정권의 핵심으로 부상하였고, 사림파를 지지하던 인종으로 인해 기묘사화 후 몰락했던 사림들도 정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정 왕후와 남매인 윤원형, 윤원로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암투를 벌인다. 그 와중에 즉위 채 1년도 되지 않아 인종이 세상을 떠나고 문정 왕후의 아들 명종이 왕위에 오른다.
소윤의 핵심 윤원형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모사를 꾸미고 1545년 대윤 일파 거의 모두를 제거해 버리는 을사사화를 일으킨다. 한편 윤임에 의해 정권에 참여하지 못한 일부 사림들은 윤원형 일파에 가담함으로써 사림들도 대윤과 소윤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윤원형은 이후로도 자신에게 조금의 위협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자는 모조리 없애 버렸으며, 자신의 친형 윤원로를 제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정 왕후는 명종의 어린 나이를 이유로 수렴청정을 하기 시작해 왕이 친정을 시작한 이후에도 뒤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그 곁에서 윤원형은 20여 년의 세월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바쳤다. 조선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져 왕과 조정이 아니라 의적 행세를 하는 임꺽정을 지지하고 의지할 정도였다. 문정 왕후의 죽음과 함께 윤원형도 몰락하고 재야의 사림들이 다시 등용되었으나 사림 중심의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유교 정치는 권력 지향적인 붕당의 싹이 되었고, 왜구의 침략도 빈번해져 백성들이 겪는 고단한 삶은 더욱 심해졌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로 이어지는 조선 4대 사화를 보면 조선의 현실 정치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알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백성들의 생활상이 아프게 전해진다. 조선의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체계를 공고히 유지하고자 하던 조정 대신들은 보수성을 띨 수밖에 없었고, 체제를 위해 그들이 내린 선택은 인간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관료 자신들의 기반이 걸린 일이 되면서 점차 공의公義를 위한 정치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인격이 결여된 연산군이 왕으로 오르면서 그런 왕을 이용해 자신들의 안락을 추구하려는 간신들로 인해 무오사화,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법이 무의미해져가는 세상을 바로 세우고자 중종반정이 일어났으나 공신들은 왕의 권력을 넘어서는 지위를 갖고 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신들이 죽고, 공정하고 풍족한 세상을 만들어 보려던 중종의 꿈은 조광조와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듯 싶었으나 그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기묘사화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을사사화는 연산군 대의 사화와 마찬가지로 포장된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너무도 보잘 것 없을 정도였다. 반복되는 사화는 죄 없는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생명을 잃는 것은 물론, 연좌제로 인해 일족까지 몰락해야 했다.
사욕을 추구하던 권력자들로 인해 발생한 조선의 4대 사화는 각자의 권력을 확장하고 분명히 하기 위한 싸움의 결과라 보여진다. 그렇지만 또한 권력 싸움에만 그쳤던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변동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정치 현상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