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의 베스트셀러 <통일천하>의 원작
<김팔봉 초한지> 36년 만의 재출간!
무조건 재미있다.
책 소개
팔봉 김기진 선생이 ‘통일천하(統一天下)’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초한지(楚漢誌)』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휴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54년 3월이다. 이 작품은 다음 해 10월까지 총 562회를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팔봉 선생은 ‘통일천하’ 연재가 성공리에 끝나자 곧바로 같은 제목의 단행본을 간행했다가 1984년에 어문각에서 이전의 ‘통일천하’를 다시 단행본으로 펴내며 제명을 『초한지』로 변경했다. 그러면서도 ‘통일천하’라는 옛 제목을 왼편에 그대로 살려둔 것은 아마도 옛 제목인 ‘통일천하’가 지닌 대중적 친숙함과 성공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초한지>라는 이름이 처음 알려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역사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초한지』, 그중에서도 거의 창작에 가까운 번역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우리나라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변형된, 어떤 번역보다도 역자의 노고가 깊게 서려 있는 팔봉 선생의 『초한지』가 36년 만에 참신한 모습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책 속으로
4권
“나는 너와 더불어 천하를 쟁탈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의 죄악이 관일(貫日)해서 신인공노(神人共怒)하는 터이므로 나는 천하제후들과 함께 무도한 것을 징벌해 백성들의 해물을 제거하고자 할 뿐이다. 지금 네 죄를 말할 것이니 들어보아라! 쌍방의 장병들도 들어보아라! 너는 회왕과의 약속을 배반하고 나를 한중 지방으로 좌천시켰으니 그 죄가 하나요, 그전에 거짓 회왕의 명령이라 하고 경자관군 송의를 죽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조나라를 구원하고 그 후에 돌보지 않고 마음대로 관중에 들어왔으니 그 죄가 셋이요, 진나라의 궁실을 소각하고 시황의 묘를 발굴하고 재물을 도둑질해냈으니 그 죄가 넷이요, 항복한 진 삼세 자영을 죽였으니 그 죄 다섯이요, 진나라의 자제 이십오만 명을 신안 땅에서 죽였으니 그 죄 여섯이요, 여러 장수들을 왕작에 봉하고 그 지방의 고주(故主)들을 축출해버렸으니 그 죄 일곱이요, 제 마음대로 의제를 내쫓고 팽성에 도읍하고 한·양(韓梁) 지방을 탈취하고 자립해 패왕이 되었으니 그 죄 여덟이요, 강중에 복병했다가 의제를 시(弑)했으니 그 죄 아홉이요, 정사를 공평히 하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신용을 지키지 않으며 잔인무도해서 천하를 해치니 그 죄가 열 가지에 달한다. 그런고로 내가 의병을 일으켜 제후들을 따라서 역적을 토벌할 따름이다. 내 어찌 너와 더불어 접전하기를 좋아하겠느냐!”
한왕이 조금도 서슴지 않고 열 가지 죄목을 열거하는 소리를 듣고 항우는 분함을 못 견디어 창을 쳐들고 쏜살같이 쳐들어갔다.
한왕은 그만 달아났다.
항우는 뒤를 쫓았다. 형세가 매우 위급하게 되었다.
한나라의 여러 대장들이 항우를 가로막고 접전을 시작했다.
그동안에 한왕은 후방의 진영을 향해 도망했다.
종리매는 미리부터 항우의 명령으로 한나라의 본진과 후진 사이에 한왕이 돌아갈 도로의 좌우에 있는 언덕과 수풀 속에 수백 명의 사수(射手)를 매복해두었다가 한왕이 지나가거든 일제히 화살을 쏘아서 한왕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줄을 모르고 한왕은 이 길로 달아났다.
한왕의 모습이 보이자 철포 한 방이 꽝 터지더니, 별안간 길 좌우에서 수천 개의 화살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혼비백산한 한왕은 채찍질을 하면서 달리다가 불행히 화살 한 개가 가슴 복판에 꽂혔다. 갑옷을 뚫고 화살촉은 피부에 박혔다. -위기 일발 중에서
이 있을 뿐, 큰 진영은 텅 비어 있음을 보고 그는 또 한 번 놀랐다.
“한왕이 그래, 벌써 초나라를 다 가져갔단 말이냐? 어찌해서 사면에서 초가가 들린단 말이냐?”
항우는 장막 밖에 칼을 짚고 서 있는 환초와 주란을 보고 물었다. 그의 얼굴은 기막힌 표정이었다. 주란과 환초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폐하! 한신이란 놈이 계책을 써서 산꼭대기에서 퉁소를 불더니 아군의 사졸들이 모두 다 비창한 생각이 나서 계포와 종리매를 위시해 팔천 명이 한꺼번에 도망쳐버렸사옵니다. 대장이라고 남은 자는 신 등 두 사람뿐이옵니다. 폐하! 한시각이라도 속히 이곳을 탈출하시옵소서. 사졸은 팔백, 대장은 두 사람,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한나라 군사를 대적하시겠나이까! 폐하!”
두 사람은 목 메인 울음소리로 낱낱이 아뢰었다.
항우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샘솟듯이 흘렀다. 그는 입을 꽉 다물고 어깨를 흔들면서 잠시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다가 침소 곁에 있는 큰 장막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주란과 환초도 따라들어갔다.
항우는 안상에 주저앉아서 천장을 우러러보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아하! 하늘이 나를 망치시나이까! 아하! 상천(上天)이 초를 멸하시나이까!”
주란과 환초는 이를 보고 그만 소리를 내어 울었다.
이때 침실 속에서 잠이 깨어 일어나 앉아 있던 우희가 항우의 울음 소리를 듣고 이 장막으로 건너왔다. 그는 항우 앞으로 가까이 들어서면서 공손히 물었다.
“폐하! 폐하는 무슨 일로 이다지 슬퍼하시나이까?”
항우는 우희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주먹으로 눈물을 닦고 한탄했다.
“아하, 슬프고나! 수하의 장졸들이 모두 도망해버리고 말았다. 내 그대를 버리고 적의 포위망을 헤치고 나가려 하니 가슴이 뻐개지누나! 천군만마 가운데, 내 그대와 더불어 잠시도 조석을 떠나지 않았거늘, 아하 지금 와서 이별해야 하겠으니 이 무슨 운명이란 말인고!”
항우는 이내 기운이 막혀 안상으로부터 땅바닥에 거꾸러져버렸다.
우희는 꿇어앉아 항우의 가슴을 안고,
“폐하! 폐하!”
하며 항우의 몸을 흔들었다. 항우는 눈물에 젖은 눈을 그제야 크게 뜨고 우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희는 항우의 머리를 자기 무릎 위에 받들어 눕히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희의 눈에서도 진주알 같은 눈물방울이 아리따운 두 뺨으로 흘러내렸다.
-사면초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