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 구하지 말 것, 내면의 깨달음을 향할 것
오강남 교수는 『예수는 없다』를 통해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심층 차원에서 새롭게 해석하여 종교학계에 큰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에서는 논의를 세계의 모든 종교로 확장하여 그리스?로마 철학,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동아시아 사상(도교, 유교), 인도 종교(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불교, 그리고 한국의 지혜 등을 모두 조명한다. 세계 종교?철학의 창시자, 지도자, 실천자, 학자 등 세기의 스승들이 삶과 가르침을 통해 보여준 종교의 심층을 빠짐없이 다룬 것이다. 이는 세계의 종교사인 동시에 현대 철학의 근간을 이룬 사상적 뿌리이며 고전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과연 종교의 심층이란 무엇인가? 오강남 교수는 종교의 본질적인 차원을 설명하기 위해 종교의 ‘표층’과 ‘심층’이라는 개념을 취한다. 변화되지 않은 지금의 나를 잘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표층 종교라면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죽여 더 큰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심층 종교이다. 교리와 율법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문자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표층 종교라면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의식의 변화,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는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 심층 종교이다.
표층 종교가 신은 하늘에 있다고 믿는다면 심층 종교는 신이 내 안에도 내재하며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곧 신을 찾는 길이라고 본다. 각 종교 전통에서 내려오는 경전들의 표피적인 뜻에 매달리는 문자주의를 넘어 그 상징와 은유, 속내를 알아차리면 이웃의 종교가, 또한 다른 모든 종교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종교사에서는 이를 신비주의라 하는데 이는 육체이탈, 영매, 마술 같은 초자연적 현상이나 신유체험들을 일컫는 ‘Mystismus’가 아니라 신을 체험적으로 인식하고 절대자와 궁극 실재를 의식의 변화를 통해 내면적으로 깨닫는 ‘Mystik’을 의미한다.
저자는 그리스 로마의 철학 사상가, 유대교의 지도자, 그리스도교의 선각자, 이슬람교의 성인, 동아시아의 사상가, 인도의 영성가, 불교의 선지자, 한국의 스승 등 59인을 선정하여 그들의 삶과 가르침을 추려 소개함으로써 독자는 물론 한국 종교인들이 종교의 심층을 엿보고 이를 열린 마음으로 체현하기를 기원한다.
대답 없는 시대, 어른들을 위한 위인전
오강남이 뽑은 영성의 거인 59인은 모두 종교의 심층을 탐구하고 깨쳐 자기 삶으로 그것을 살아낸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곧 ‘종교란 무엇인가’의 해답을 구하는 어른들을 위한 위인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영적 지도자들의 신념을 읽어나가다 보면 종국엔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사상과 철학의 큰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특히 20세기 현대 영성가들의 삶과 가르침은 더욱 생생하고 큰 울림을 전한다.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 자체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지가 있다”고 한 현대 지성인의 사도 폴 틸리히. 인도 사상, 특히 자이나교의 ‘불살생’에 영향을 받아 종국에는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깨쳐 ‘생명 경외’를 근간으로 자신의 삶을 밀고나간 알베르트 슈바이처. 20세기 최고의 유대 사상가로 도덕경과 장자를 접하며 그의 후기 사상의 핵심이 되는 ‘나와 너’의 ‘관계 철학’을 탄생시킨 마르틴 부버. 이밖에도 범종교적 에큐메니즘 신학자인 한스 큉, 해방신학의 아버지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에 매달리는 행태를 비판하며 기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기독교계에 일침을 날린 존 쉘비 스퐁, 심층 종교의 영성을 문학으로 그린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한국의 참스승 유영모, 함석헌 등 끊임없이 비전을 찾고자 했던 대가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지금 같은 시대에 더더욱 필요한지도 모른다.
평생을 비교종교학에 바친 대가만이 다룰 수 있는 넓디넓은 지식으로 가득하지만 방대한 분량에 비해 쉽고 친절하게 쓰였다. 동서 철학사와 종교사를 관통하면서 지식의 깊은 차원과 그 맥락을 전연 놓치지 않으면서도, 종교 대중의 교양과 관심에 적극 공명하는 ‘깨친 글쓰기’가 값진 독서의 기회를 선사한다. 더 이상 종교에 희망을 두지 못하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독자들의 갈증을 채우는 샘터이자, 모든 종교가 심층에서 하나의 맥을 이룬다는 ‘소통의 장’을 자연스레 마주하게 될 것이다.
* 이 책은 『종교, 심층을 보다』(현암사, 2011)를 개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