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폴란드의 오시비엥침(독일어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본 나치의 만행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만, 마이애미에서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볼 때와, 예루살렘에서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 바셈(Yad Vashem)을 참관할 때의 느낌이 같지않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각을 이루며 사는 모습이 마음 한 구석에 꺼림칙하게 걸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글들을 읽으면서도 다양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보인 유대인들의 다양한 모습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의 기억을 보라>는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16세의 나이에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엘리에저 “엘리” 위젤(Eliezer “Elie” Wiesel)의 교육철학에 관한 내용입니다.
엘리 위젤은 종전 후에 프랑스의 고아원에 보내졌고, 1948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프랑스 신문 <라르슈>의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195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수아 모리아크로부터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글로 써볼 것을 권유를 받고 <밤>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써서 주목받기에 이르렀습니다. 1955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여 1963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나치의 수용소에서 경험한 바를 토대로 폭력과, 억압, 인종차별 등을 바로 잡기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겪을 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치에 부역한 유대인은 부역한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나치로부터 끔찍한 탄압을 받은 사람들은 기억조차 되살리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 위젤은 폭력적 인종차별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증언해서 공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지 않고 침묵의 심연에 관련된 사실들을 감추어두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기억을 보라>는 엘리 위젤의 제자, 아리엘 버거의 저작입니다. 15살 때 엘리 위젤을 만났던 아리엘 버거는 전통 유대교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와 예술가적 기질이 있어 전통에 매이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입장의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을 빚던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합니다만, 에리 위젤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대 시절에는 위젤의 학생으로, 30대에는 위젤의 조교로, 대학원을 마치고도 위젤과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이어받을 수 있었는데, 25년동안 이어진 만남과 5년 동안의 강의 필기, 같이 강의를 듣던 학생들과의 면담기록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위젤의 교육철학, 방법론, 유대경전의 새로운 해석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위젤교수의 가르침에 따라 저자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해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고백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단원별 제목이 기억-다름-믿음과 불신-광기와 반항-행동주의-말고 글을 넘어서-목격자로 이어지는 것은 유대인들이 살아온 나날들에서 얻는 삶의 의문부호에 대하여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위젤교수는 유대교의 다양한 교리서를 비롯하여 근현대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면을 교재로 하여 수업에 참여하는 다양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모두어 스스로 결론을 맺도록 하는 수업방식을 채택하는데,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젤교수는) 이 세상을 광기로부터 구해내려면 교육이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으로 타락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숨겨진 요소를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이 요소는 결국 지식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될 것이고, 그 지식이 쌓여 증오가 아닌 공감과 동정의 행위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젤교수가 찾아낸 숨겨진 요소는 바로 기억이었다고 합니다(37-38쪽).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50쪽)’라는 말이 유대교 경건파 사이에 전해온다고 합니다. ‘목격자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우리 모두 목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65쪽)’라고 저자는 이릅니다.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계 미국인 작가, 교수,인권활동가,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우슈비츠에서 수감되어 있던 어머니와 여동생 셋은 살해되었다. 그의 아버지도 해방직전 사망하였다.
믿음과 의심, 저항과 광기, 행동주의의 실천 등과 같은 주제들을 가지고 다시는 인간에 의한 대학살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억하기 위해 교육으로 사명을 다한다.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앞으로 내 삶에 가까이 두고 계속 읽고 싶은 책들 중에 가장 우선하지 않을까 싶다.
벅차오르는 느낌과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야할 방향이 명확해졌다.
일주일간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써 볼까 한다.
물론 평할 수 없는 책이다.
그래서 책속의 있는 내용을 기록하고 싶다.
목격자가 되어서 기억될 수 있도록.
플로베르는 말했지요.
'오전 내내 고심하다 마침내 쉼표 하나를 찍었다. 그리고 오후 내내 고심하다 그 쉼표를 지웠다.' 나도 그와 비슷하게 가장 중요한 정수만 남을 때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불필요한 말과 단어를 깎아냅니다만, 그렇게 깎아내고 지워버린 말과 단어는 그 자리에 남게 됩니다."
"말을 지워버렸는데 어떻게 그 자리에 남게 된다는 말씀인가요?" 앨런이 물었다.
" 마치 죽은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고 어떤 의도나 목적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나는 10년이 지나기 전에는 내가 겪은 일들을 글로 옮기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앨런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래야 각각의 단어에 침묵도 함께 내재하게 되니까요"
"그 일이 왜 중요한가요?"
"왜나햐면 단어만으로는 경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으니까요. 학살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냈지만, 희생자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 경험을 제대로 전달하는 올바른 단어를 찾아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과 글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위해서 침묵이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297쪽
위젤에 따르면, 목격자로 사는 것은 증오에 감염돼 또 다른 폭력을 일으키는 일이 아니라 분노를 변환해 삶의 새로운 규칙을 파종하고 양육하는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뉴욕의 한 산부인과 병동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들어 올리면서 유대인 생존자 여성은 말했다. “세상아, 이걸 보렴. 나를 대신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어.” 이것이 생존자의 복수, 즉 “새로운 생명, 새로운 가족, 새로운 공동체 가운데 서로를 도우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복수”다. 분노를 날것 그대로 분출하는 것은 목격이 아니다. 목격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의 복수, 죽음의 복수가 아니라 살림의 복수다. 이 험악한 세상이 아직 우리를 패배시키지 못했다는 놀라운 기적을 선포하는 것이다. “괜찮다, 우리는 애초에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며 우리가 가진 인간성 안에서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