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 12일
이은정 작가의 첫 소설집 『완벼하게 헤어지는 방법』
<잘못한 사람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그믐밤 세 남자>,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친절한 솔>, <숨어 살기 좋은 집>, <엄 대리>, <개들이 짖는 동안> .. 가족, 친구, 연인, 동료 등... 평범한 사람들의 상처를 담아낸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가족 폭력으로 인해 위태로워지는 가정의 모습을 그렸다. 아버지의 폭력, 부모의 불화의 목격. 엄마의 상처는 미진, 미주 자매가 그대로 흡수하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만들고.. (하아..) 담담한 우발적인 폭력의 상황이 조금은 섬뜩했으나 그랬을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와 자매의 편에 서게 되기도 했던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거나 받아야 했던 평범하지 않은 상처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고 나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매번 내가 피해자이기만 했는지 생각하는 내내 몸이 아팠다. 내가 찾은 어설픈 답을 여덟 편의 소설로 남긴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인상깊었던 작가의 말.. 책 속에 담긴 여덟 편 모두.. 여러모로 쓸쓸하고 어둡고 위태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상처와 고통이.. 절망과 비극이..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상처들.. 여덟 편의 소설 속 작가가 찾은 답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 책 속 문장 Pick
기필코 잊어버리고 말겠노라 다짐했던 기억들은 기필코 어딘가에 짱박혀 있다가 제 맘대로 이제는 괜찮다는 듯 기억의 주인을 껴안고 일상을 흔들고 만다. p.42 _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고함과 비명. 둔탁한 무언가를 집어 던지자 유리 재질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욕하는 소리와 울음소리. 무언가를 벽에 찧는 소리. 다양한 소리. 늘 똑같은 공포. 미진은 어린 미주의 몸을 이불 속 깊이 파묻고 자신의 몸으로 감싸곤 했다. 미주가 아무 소리도 듣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p.49 _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글쎄…… 그건 아주 심오한 얘긴데, 기억 위에 기억을 얹는 거지." p.53 _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그들은 서로에게 살가운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완벽히 떠나진 않았다. 서로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솎아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한집에 머무르며 미진의 말대로 기억에 기억을 덧칠하려고 노력했다. p.59 _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쓸쓸하고 어둡다. 계속 아프다. 계속 암울하다. 계속. 정말 계속.
붙잡기도 어려운 아슬아슬함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무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위태롭게 벼랑끝에 있는 글자들이 책 끝을 잡고 한없이 무너지는 쓸쓸함의 무게가 좋았다. 이상하게 그랬다. 이건 아마도 이은정 작가만이 전할 수 있는 누구에게도 무해하지 않은 온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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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해당 도서를 직접 구입하여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미지근했으므로
좀 더 뜨거워져 한다.
밤새 하염없이 짖어대는 저 개들처럼.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즐거움일 것이다. 앎의 즐거움, 읽는 행위의 즐거움, 상상의 즐거움, 공감의 즐거움 등. 무심코 집어 든 책에서 생각지 못한 보석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이야기로 세상을 향해 위로를 건네는 작가를 만나고 작가의 마음과 태도를 안다는 것은 또 어떤 종류의 즐거움일까.
무려 여덟 편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뒤틀린 세상을 드러내고 위로를 건네는 이은정 님의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저자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너무나도 쉽게 일상의 갑질과 횡포에 가슴이 베이는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딘가에 있을 희망의 빛은 놓지 말자는 따뜻한 진심과 그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했을 저자만의 치열함이 전해져서 좋았다. 적어도 누군가 한 명은 우리 인생의 어둠을 보듬어 주고 있다는 위로가 전해져서.
개인의 분노에서 시작된 광기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잔인한 칼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어이없게 꼬여버린 인생을 다룬 <잘못한 사람들>,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결국엔 가해자가 되고 처절하게 몸과 마음이 소멸해가는 가족들 이야기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삶과 죽음에 관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인 인간에 대해 그믐이라는 달을 소재로 인간이 느끼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믐밤 세 남자>, 짊어져야 할 가족의 멍에 때문에 위태위태한 이혼 위기를 겪는 또 다른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에게 회유와 협박이 가해지는 폭력을 다룬 <친절한 솔>, 고부갈등의 말로를 잘 보여준 <숨어 살기 좋은 집>,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엄 대리>, 개들의 삶을 빗대 젊은이들이 마주한 비루한 삶을 보여주는 <개들이 짖는 동안>까지. 어딘가 상처받고 삶의 언저리에서 비틀대고 머뭇거리는 보통 사람들의 꺼내보기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으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여덟 편의 작품을 담고 있다.
보다시피 상처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딘가 구멍이 나 있고, 뒤틀리고, 비틀대고, 허우적거린다. 가족 안에서, 관계 속에서, 우리가 속한 사회 안에서 절망이 일상인 사람들. 그 안에서 웅크리고 내면의 상처에 곪아가고 있을 때 어딘가 희망이 있다는 말조차 환상처럼 느껴질 때 사실은 무수한 밤, 그 어둠 속에서도 별들은 가장 환한 빛을 비추며 반짝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불확실한 것들이 가진 가능성이 인간을 살게 하는지 모른다.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아 매력적인, 그믐이었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본문 93쪽
책을 읽을 때 책이 주는 여운 때문에 무언가를 끄적이게 하는 책들도 있고 어떤 책은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묵히고 그러고 나서야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책이 있다. 이은정 님의 짧은 이야기들을 담은 이 소설집은 읽으며 무언가를 막 끄적이게 만들었다. 여러 이유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기도 했고, 내가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메모하게 했고, 신선한 문장들이 입가에 맴돌아서였다. 부둣가에 총출동한 개들을 묘사하며 지루한 팔자들의 겨울 한 철 계약직에 비유한 표현이 그랬고, 친절을 가장한 어른들의 목소리를 친절한 솔이라고 한 표현이 그랬고, 작가라는 꿈을 가진 사람들의 원고의 무게를 너무나도 익숙한 꿈의 무게, 47그램이 그랬다. 그믐달과 초승달을 비교하며 존재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할 땐 깊은 한숨이 배어 나왔다. 이런 표현들을 생각하고 다듬으며 많은 시간 외롭게 사투를 벌였을 작가의 모습이 엄 대리처럼 그려져서였다. 그 외에도 독자들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던 책이기도 했다.
소설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에 담긴 여덟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내가 쫓고 있던 건 가식과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이야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거다. 내가 희망하는 세상 안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가식과 위선을 포장할 수 있는 것들로 생각과 마음이 짜여 있었을 뿐 결국 나 또한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그 상처들을 들여다보고 어떻게든 보듬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세상의 아픔을 그냥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같았다. 지금쯤 좀 더 뜨거워져 있을 작가의 체온을 자꾸만 떠올려 보게 된다. 그리고 너무 미지근한 나의 체온도.....
사람이 사람인 상태로 가장 뜨거울 수 있는 온도는 몇 도일까.
체온계 눈금은 42도까지다.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100도에 도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어차피 인생은 미지근한 거다.
탈탈. 짧고 시원하게 커피 가루가 쏟아진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본문 241쪽
현실의 한 부분은 매우 슬프고 우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진실을 말할 필요도 없으며, 위선적으로 거짓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정당하다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 저소득 층이거나, 가족 구성원들이 흔들린다면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맞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력서의 자기 소개서 한 문장을 적더라도 그럴듯하게 거짓과 진실을 교묘하게 적고 마는 것이다.
첫 번째 작품이 반전과 충격을 주어서, 이 소설 모두 죽여버리나 생각하게 되었다. 항상 문제를 저지르는 자와 처벌을 받는 자는 같지 않을 수 있고, 운명이 좌우한다는 그런 슬픈 느낌을 주었다. 한편으로 운이 나쁜 친구와는 가까이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같아서 섬뜩하다는 생각이었다. 두 번째 작품이 표제작이다. 불행한 가족의 아주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폭력 가정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잘 반영하고 있고, 출구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합리적인 이혼을 출구 전략으로 생각해볼 것이다. 아니면 어떤 형태로도 결국은 파멸로 가고, 나머지 가족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엄대리”가 비교적 코믹한 소설이었다. 복권이라는 허상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매우 희화적이었다. 그리고 전처를 만나는 과정도 말도 안되어서 동화 같았다. 그렇게라도 좀 따뜻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여러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