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뉴스의 의미가 달라졌다. 과거의 뉴스를 접했을 때는 그 내용이 일단은 맞다는 전제 아래서 판단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그 뉴스가 맞는 것인지, 아니면 가짜 뉴스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곁에서 어디선가 들었다면서 전하는 소식도 그렇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명백히 잘못 전파되고 있는 뉴스인데도 그걸 통해서 사안을 판단하려 하는 걸 본다. 그때 그게 잘못된 뉴스라고 하면 종종 말다툼으로 비화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그런 태도가 그런 가짜 뉴스의 전파를 부채질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잠시의 평화를 위해서.
가짜 뉴스는 언제라도 있었다.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서, 혹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가짜 뉴스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 가짜 뉴스가 일상화되고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인터넷이라는 도구 때문이다. 무차별적이고, 즉각적인 전파 도구인 인터넷은 가짜 뉴스를 검증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거기에 엄청난 정보량은 검증의 체를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사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자세일 텐데, 그런 자세를 역사에서도 배울 수 있을까 해서 집어든 게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책이다.
역사 속에서 거짓으로 대중을 현혹시키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현대로 들어서면서 대중을 현혹시킬 필요가 늘어나면서 거짓 뉴스의 필요성이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작은 언제라도 그런 거짓 뉴스가 횡행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에서 대중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서 인기 정치인이 출현했고, 그로 인해 가짜 뉴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생각이다. 이후 중국 왕조의 교체기마다 그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도 대체로는 가짜 뉴스였으며(왕조의 교체는 이전 왕조의 모순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라 모든 것을 가짜 뉴스라고 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하다. 물론 ‘주지육림’과 같은 것은 가짜 뉴스다), 서양에서의 정복 전쟁 역시 가짜 뉴스를 통해 시작되고, 또 명분을 얻었다(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전쟁을 포함하여).
그런 것이야 어쩌면 도덕적으로 비난하기가 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대인 박해라든가 마녀사냥 등을 야기한 가짜 뉴스는 성격이 다르다. 그건 정치적이라고 하기에는 노골적이었으며, 집단적인 박해로 이어졌다. 또한 드레퓌스 사건이라든가, 나치의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유대인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라든가, 베트남 전쟁에 직접 뛰어들 구실을 만든 통킹만 사건 같은 것은 단지 필요에 의해서 저지를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넘어 역사적으로 엄청나게 부도덕한 결과를 낳았다.
위의 것들이 역사 속의 가짜 뉴스로 통상적으로 언급되는 것이라면 좀 색다른 것도 있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이라든가,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2010년 경 SNS로 촉발된 ‘아랍의 봄’ 같은 것들이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이 그의 진심이 아니었고(이에 대해선 반론을 펼칠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지만), 앤드루 잭슨은 엘리트를 공격하는 데 가짜 뉴스를 활용했고, 아랍의 봄도 분신한 청년이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장면들이 있다. 우선 왜구(倭寇)가 실제로는 일본인보다는 중국의 해안 지역에 살던 이들이 다수를 이루었으며, 침략적 일본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왜곡했다고 쓰고 있다. 물론 최근의 연구가 왜구가 순전히 일본인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본인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중국의 장쩌민이 공산당의 입지를 바꾸기 위해서 가짜 뉴스를 활용했다는 부분에도 그 부분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이나 독일의 빌헬름 황제의 황화(黃禍)에 대한 얘기를 통해서 저자는 마치 일본이 그런 가짜 뉴스의 피해자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는 그 시기의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일본의 침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가짜 뉴스를 지어낸다고 비판하고 있다. 우선은 일본인 독자를 대상으로 쓴 책이라는 걸 감안하면서 읽어야 하면서도 씁쓸한 부분이다.
누구나 알고있는 흡혈귀 드라큘라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ㅡ드라큘라는 왈라키아 왕이였다.
ㅡ왈라키아는 루마니아 남부에 있고 1370년 오스만제국과 충돌 후 100년간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ㅡ드라큘라는 1431년에 태어났다
ㅡ실제 모습은 불그스름한 눈에 커다란 송곳니를 갖고있는 기괴한 모습도 전혀 아니였다
ㅡ드라큘라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용(드라클)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ㅡ드라클이라는 말에는 악마라는 뜻도 있어서 드라큘라 전설을 만들어낼때 이용됐다고 한다.
드라큘라는 11세에 오스만제국의 인질이 되어 터키에서 5년간 살았고 터키어를 배우고 그나라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왈라카이로 돌아와서는 이곳을 공격하는 터키군을 야간기습작전으로 맞서 싸운다. 45세 암살당할때까지 침략하는 터키군에 맞서 싸운다.
드라큘라가 무서운점은 포로로 잡아버린 군사들을 어묵꼬치처럼 꼬챙이에 꽂아 잔혹하게 죽였다는 것이다.
그만의 창조적인(?) 살해방법이 아니라 그당시 중세유럽에서 행하던 일반적인 처형방식였다는 사실이 더욱 놀랬다;;
인간의 몸통이 어묵마냥 나무통에 관통당하는 모습이 책속에 그림묘사가 되어있는데 너무 아찔하다ㅠㅠ
적들은 저렇게 무참하게 죽여야만 할까... 그러게 왜 침략해서는;;; 에휴
'기존의 반오스만 십자군 체결을 파기할 구실로 삼기위해 드라큘라의 잔혹성을 루머로 퍼트린다.
강대한 오스만 제국과 싸우고 싶지 않았던 마차시 1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드라큘라를 잔혹한 독재자로 꾸며대고 선전했다.
즉 자신을 더이상 과격학 잔인무도한 드라큘라아는 동맹할수 없음을 정당화하기 위함이였다' -p124
어쨋든 팩트는, 드라큘라는 죽는날까지 침략해오는 터키군을 맞써싸운 위대한 영웅이자 정치가이다. 루마니아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있으며 그의 괴상한 루머에 휘말리지 않고 그를 영웅으로 칭송한다고 한다. 그럼 누가 왜 드라큘라를 끔찍한 존재로 루머를 퍼트린걸까. 범인은 헝가리 왕이였다. 왜?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을 파기할 구실로 삼기위해, **을 꾸며대고 선전했다. **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현재도 수많은 가짜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고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하기 힘들정도로 아찔한 세상이다. 잘 모르지만 정치쪽은 얼핏봐도 살벌한 기운까지 느껴진다. 어떻게 해야 진실과 거짓을 예리하게 분간해낼 수 있을까. 그런 통찰을 키우려면 나는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어디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 어떤 현상에 있어서 일단 한번은 뒤집어 거꾸로 생각해보는 습관을 갖어야 안전할것 같다. 왜? 라는 질문을 항상 던져봐야 안전할꺼 같다.
가짜뉴스도 어찌보면 인간의 나약성을 방증하는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