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마약을 뭉뚱그려 마약이라는 한 범주로 묶어버리는 것도 우리가 가진 잘못된 선입견 중 하나다. 같은 교칙 위반이라고 해도, 교복 치마를 줄이는 것과 특정 학생을 왕따시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듯, 마약도 한 범주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법적으로 마약류는 코카인, 아편, 헤로인 같은 ‘마약’과 LSD, 프로포폴, 히로뽕(필로폰)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 그리고 마리화나, 하시시가 포함된 ‘대마류’로 구분할 수 있다. 마약류에 포함되진 않지만, 본드, 부탄가스, 아산화질소도 ‘환각물질’로 지정해 흡입을 금지하고 있다. 법적인 구분뿐 아니라, 작용 방식이나 성분, 농도 등에 따라서도 마약을 수백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마약’이라는 한 단어로 퉁쳐버리면 잘못된 접근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 잘못을 지적하고 시작하는 이 책에서조차, 마약이라고 퉁쳐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편의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은 있다… 는 건 변명이고, 결국 내 어휘가 부족한 탓이니 독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13쪽, 프롤로그」중에서
요점은 마약이라고 해서 어디 지옥에서 자라는 특별한 식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대마를 길렀고, 지금도 안동 지역에서 대마를 키운다. “한국에서 대마를 키운다고?” 놀란 분들도 있을 텐데, 삼베옷을 만드는 삼, 그게 바로 대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담배 대신 대마를 피우는 어르신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에서 대대적으로 대마 금지 정책을 펴면서 대마 밭이 사라지고, 대마초를 피우던 문화도 사라졌다. 대마의 마약 작용은 꽃, 잎, 줄기 순으로 순도가 높고(꽃〉잎〉줄기), 꽃 중에서는 암꽃이 수꽃보다 순도가 높다(암꽃〉수꽃). 그래서 대마 전체가 아니라 꽃과 잎 부분만 마약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마의 줄기, 뿌리, 씨앗은 한국에서도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줄기는 대마 섬유(삼베옷)로, 뿌리나 씨앗은 기름이나 한약재로 이용한다.
---「67쪽, 오늘 오후엔 뭘 하지? 마약의 종류와 구분」중에서
셋째, 노동력 향상,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마약을 금지했다? 이것도 결과적으로 틀렸다. 술이든 마약이든 범죄가 되면, 이를 사용한 이들은 범죄자가 되고, 한 번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 가령 어떤 이가 중독자였다고 하더라도 그게 범죄의 영역이 아니라면, 일의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아예 사회 밖으로 떨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범죄가 돼 버리면, 중독자가 아니라 호기심에 한두 번 접해본 사람도, 평생 범죄자로 낙인이 찍힌다. 그들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삶은 점점 더 수렁으로 몰리고, 불행히도 더 마약에 빠질 확률이 높다.
---「148쪽, 금주법으로 살펴본 마약금지 정책」중에서
네덜란드의 마약정책에 대해, ‘효율을 위해 도덕성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지만, 내가 볼 때 이는 네덜란드에 대한 악의적 비방에 가깝다. 네덜란드의 마약정책은 효율이 아니라 오히려 인권을 중시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마약에 대한 네덜란드의 기본 태도는 ‘전쟁’이 아니라 ‘해악 감소’다.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정책이 있는데, 대표적인 게 마약 사용자들의 주사기를 무상 교체해주는 서비스다. 하드드럭 중독자들의 건강을 가장 위협하는 건 마약 자체가 아니라 주사기다. 병원 가보면 알겠지만, 원래 주사기는 한 번 쓰고 버려야 한다. 그런데 중독자들은 이 주사기를 계속 쓴다. 마약 살 돈도 부족한데 새 주사기를 무슨 돈으로 사겠는가. 그래서 네덜란드 정부는 누구든 사용하던 주사기를 가져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교체해주는 정책을 시행한다. 처음에는 ‘마약쟁이를 정부 예산으로 양산하는 정책’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 정책이 지속되자 주사기 재사용으로 생기는 문제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222쪽, 갑.툭.튀 네덜란드」중에서
당신은 마약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인에게 마약이란 ‘재벌이나 유력 정치인의 자녀들, 혹은 연예인들이 이런저런 유흥을 즐기다 즐기다 지루해져서 손대는 새로운 유흥거리’ 정도로 여겨진다.3 여전히 마약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먼 특별한 무언가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하시시를 한 대 피우거나, 진상 손님이 짜증나게 해서 화장실 가서 코카인을 마시거나, 공부하는 학생이 애더럴을 먹고, 친구 생일파티에 갔더니 엑스터시를 나눠주는 건 전혀 한국적이지 않다. 가끔 국제 마약 조직들이 한국을 제조 기지나 중간 거점으로 이용한다는 뉴스를 볼 수 있는데, 이건 한국 경찰이 허술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이 마약청정국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마약이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아니다보니 관리 당국도 이를 심각하게여기지 않고, 그러니 감시도 철저하지 않고, 그러니 빈틈이 생기고, 성실한 불법 조직들이 그 틈을 놓치지 않는 거지.
그럼 우리는 이대로 안심해도 될까?
---「235쪽, 한국은 마약청정국? 위험한 징후들」중에서
세 번째 파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펜타닐fentanyl 파동이다. 이 세 번째 파도가 너무 커서 그래프에서는 앞의 두 파도가 잔물결로 보일 정도다. 펜타닐은 1959년 얀센Janssen사가 개발한 약물로 효과가 강하고 복용방법도 간편하다. 특허가 풀리고 복제약이 등장하면서 암 환자 등 통증이 극심한 환자에게는 축복과 같은 진통제가 되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 원료를 대량으로 생산해 저렴하게 팔아치우면서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난다. 원료뿐 아니라 완제품 역시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져 멕시코 등을 거쳐 미국으로 유입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펜타닐을 ‘차이나 화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의사들은 다른 오피오이드 대신 값싸고 강력한 이 펜타닐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270쪽, 게임 체인저의 등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