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인슈타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는 아인슈타인은 진짜 아인슈타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가짜 아인슈타인일 뿐입니다. 그런 아인슈타인은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미국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라는 에세이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능력과 자신의 실제 역량 사이, 즉 자기 자신인 것과 자신일 수 있는 것 사이에는 큰 모순이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자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천재와 지진아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딱지가 붙어 다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천재가 맞지만, 가장 위대한 천재였다는 것은 상당히 과장된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이 지진아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것도 상당히 과장된 말입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 p.12~14
음악은 아인슈타인에게 우주의 조화를 들려주는 소리였으며, 언어 이상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음악과 물리학 모두 조화와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이런 조화를 보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이 하숙집에 있는데, 어디선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 뛰쳐나갔습니다. 잠시 후, 피아노 소리와 함께 바이올린 소리도 거리에 울려 퍼졌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서재로 달려가 문제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에게 음악은 깊은 사고의 경지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 어떤 아이디어의 촉매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34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가장 대표적인 명언으로 꼽힙니다. 이것은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확률론적인 사상을 반박하기 위해서 한 말입니다.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사물의 상태를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확률적으로만 기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연의 모든 현상이 확률적으로 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완전함의 상징인 신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는 사상입니다. 신의 존재를 믿었던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양자인 ‘광자’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양자론의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양자론에 내재하고 있는 불확정성 원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대자연은 확고하며,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확고한 질서(원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양자론은 자연의 본질이 불확정적이며 확률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이 자연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양자론의 확률론적 결론은 아직 우리가 자연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나타난 것이지, 자연 자체에 불확정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 p.90~91
상대론은 특수 상대론과 일반 상대론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특수 상대론과 일반 상대론은 근본적인 철학은 같지만, 형식과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특수 상대론은 수학적으로 매우 단순하고, 개념적으로도 매우 간결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사상은 매우 혁명적입니다. 뉴턴이 신봉하던 시공간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수 상대론에서 주장하는 공간의 수축이나 시간의 팽창 개념은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특수 상대론에서 이야기하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푸앵카레도 거의 아인슈타인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는 시공간의 절대성을 부정할 수 있을 만큼 혁명가는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달랐습니다. 푸앵카레가 천재였다면, 아인슈타인은 혁명가였습니다.
빛의 속도가 관측자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에테르의 운동을 측정하려는 시도에서 이미 알려져 있었고,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피츠제럴드가 이미 수학적 표현식을 만들었습니다. 더구나 로런츠는 시공간의 변환 공식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에테르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에테르 자체를 버릴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측정할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던져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일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혁명가에게만 보이는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 p.98~99
앞에서 예로 든 기차처럼 아인슈타인이 상대론을 설명하기 위해 즐겨 사용했던 예가 또 있습니다. 바로 중력장 속에서 자유 낙하하는 엘리베이터에 관한 생각입니다. 이 엘리베이터를 ‘아인슈타인의 엘리베이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은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유 낙하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물체도 엘리베이터와 같이 자유 낙하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슈퍼맨이 엘리베이터를 공중으로 던졌을 때도, 슈퍼맨의 손에서 떨어진 후에는 엘리베이터 안이 무중력 상태가 됩니다. 이렇듯 중력장 속에서 자유롭게 내버려둔 엘리베이터 안은 관성 기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자유 부양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중력이 있어도 중력에 자유 부양하는 계는 관성 기준계가 될 수 있습니다.
--- p.180~181
일반 상대론이 가져다준 혁명은 바로 우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아니었을까요? 우주는 광대무변한 불가지의 영역이었습니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얼마나 큰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런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신비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지요.
이렇듯 우주는 아인슈타인이 나오기 전까지 과학의 영역 밖에 있었습니다. 천문학자가 하는 일이라곤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허블이 매우 섭섭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허블이 은하를 관측해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니까요.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없었다면 허블의 관측 결과가 있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우주론이 탄생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아인슈타인도 우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우주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일반 상대론이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 p.239~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