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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토레정원에 꽃이 피었습니다

: 대관령 정원사의 전원생활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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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632g | 152*223*20mm
ISBN13 9791188806560
ISBN10 1188806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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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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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정원 안에는 고요와 폭풍이 늘 존재한다. 자연의 얼굴과 인간의 얼굴을 동시에 지닌, 양면성을 가진 몸의 신이 어서 오라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손을 내밀기도 한다. 하지만 남몰래 눈물도 흘린다. 그건 흙을 만지고 식물을 키워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다. 작은 정원에서 수백여 가지 식물의 꽃이 피고 지기까지, 4월부터 10월 중순 된서리가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까지, 나는 이성적 계절과 감성적 기후를 동시에 느끼며, 자연의 잔인함까지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정원사는 고독하다.

정원 일이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면 풍경은 약해지지만 내면은 차분해지고 단단해진다. 몸은 나의 작은 서재로 향한다. 천상의 유배지에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늘 행복하다. 도시에서 살 때는 꿈만 꾸던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세 시간짜리 오페라 전곡을 들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언가 쫓기듯 살았다. 매일매일 과잉 경쟁이었다. 불안과 조급증에 시달리며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을 반복했다. 여기 와서 생긴 시간의 자유가 나에게 독서를 위한 여유 시간을 주었다. 대관령의 시간은 도시에서와는 달리 느리게 간다. 대관령에서 만난 스승을 꼽으라면 단연코 책, 정원, 고전음악, 그리고 대자연의 품에 안겨 걷는 것이다.

정원이 동화 속 그림처럼 풍성해지면 나는 매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나의 정원으로 화려한 휴가를 떠난다. 키케로는 이런 말을 했다. “집에 꽃과 책, 음악이 넘치게 하라.” 나는 이 말을 나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정원사인 나는 내 정원의 식물이 보여 주는 ‘다양성’에 자주 고무된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변화하는 땅이 있으니 이 얼마나 영감 넘치는 커다란 스케치북인가?

바람이 조금 멎자 걷기에 나선다. 대관령에 사는 사람의 특권이다. 강산이 변하도록 수천의 길을 걸었다. 매일 그 길들이 나를 초대했다. 사계절 백두대간 구석구석을 다녔고, 걷다 보니 해발고도에 따른 식생 변화도 눈에 보였다. 마을 구석 오지에 남아 있는 화전민들의 흔적을 종종 느낄 때면 가슴 아프기도 했다. 삶은 가끔 아이러니한 천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책은 잠재적 언어를 끄집어내 수려한 문장을 만들게도 하지만 곳곳에 존재하는 부조리와 잔인한 현실도 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겨울을 뚫고 나온 아름답고 소박한 야생화들이 환희와 고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나의 두 다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늑대가 물러가고 개들이 깨어나는 새벽 5시 30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찍 눈을 뜬다. 정원에 꽃이 많이 피어 있을수록 일은 많아진다. 하지만 나는 산책에 나서야 한다. 자연은 아첨하거나 잘 보이고 싶어 용을 써도 무언가를 한꺼번에 주지 않는다. 줄 듯 말 듯 줄다리기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무서운 바람이 찾아오고, 한 달에 보름 이상 짙은 안개가 끼고, 극심한 일교차가 일상인 어려운 마을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후에 적응이 되면 하루도 산책을 나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마을 농로나 작은 길에 배어 있는 이 지방 특유의 몽환적 차분함에 중독되면 산책 그 이상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새벽 빛이 다르고 아침 빛이 다르다. 빛은 계절에 따라서도 다르다. 시시각각 빛의 그림자와 농도가 다르다. 이 변화무쌍한 빛을 느끼며 걸을 때 행복하다. 고추밭을 지나 새로운 시공간이 있는 그곳으로 갈까, 산벚나무 할머니네 쪽으로 갈까, 오늘은 어디로 걸을까, 늘 고민한다. 걷기는 두 발로 경험하는 매일의 축제다. 걷기는 나에게 달콤한 취미이자 고독한 사유의 확장이다. 고독 안에 있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그 고독은 다른 방향의 환상의 길로 늘 나를 안내해 준다. 산책은 내가 이곳에서 오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힘이다. 나는 두 발로 길 위에 매일 매일 내 삶을 기록하고 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꽃을 오래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이 식물이 ‘월동할 수 있나?’를 생각한다. 매일 커피를 마시듯 반복하는 질문이다. 아무리 근사한 숙근초를 구입해 심었다 해도 대관령의 겨울 최저점 온도를 견디지 못하면 월동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씨를 구해 파종하고 발아를 시킨 후 키우는 과정을 거치기 전에 미리 USDA 식물 내한성 구역 정보를 미리 알아본다. 대관령은 내한성 등급이 5a 정도 되니 월동이 어려운 식물이 너무 많은 참 어려운 동네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정원에서 많은 식물을 기르고 있다. 가끔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다양한 식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대관령에서만 그 존재를 뽐내는 식물들이 분명 있기에 내 정원의 식물에 더욱 애착이 간다. 겨울이 없었다면 봄꽃이 예뻐 보였을까? 꽃이 예쁜 것은 말 없는 침묵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들과 함께 이 춥고 척박한 6개월의 겨울을 동고동락하며 아파했기 때문에 더 예뻐 보이는 것이 아닐까. 겨울 정원은 숨을 쉰다. 눈이 가득 쌓여 있어도 숨을 쉰다. 구근과 숙근초도 땅 아래에서 잠을 자며 숨을 쉬고 있다. 초겨울 심었던 구근들이 저온에서 잠을 자다가 3월부터 믿을 수 없는 모습으로 나올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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