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는 일생을 바쳤습니다. 잔혹하고 난폭한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해 아름다운 것들을 그렸고,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귀여운 것들을 그렸습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 저는 지쳤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합니다.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여러분도 그 질문에 답해보시겠습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입니까? 제게 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작품을 만들 때쯤 자신에게 대답하면 됩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고요. 답을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 p.65
사랑할 때 누구나 최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악으로 변하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사랑하지 말고 빨리 피하자. 사랑하다가 때로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인간’이라고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자. 당신은 그 누구보다 당신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 p.196
나 자신에게 가졌던 꿈과 기대가 깨지는 순간, 별것 아닌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걸 아는 순간, 우리는 자기 환멸에 빠진다. 소피는 꿈에서 계속 아빠를 만난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빠를 보면서 소피 역시 고통스럽다.
환멸은 ‘허깨비가 없어진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현실을 깨닫는 것이다. 20년 전에 찍은 영상을 다 보고 난 후 소피는 담담하게 소파에 앉아 있다. 20년 전의 영상을 돌려볼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소피는 내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 p.236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되든 여덟 개의 산을 헤매는 사람이 되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 빙하처럼 계속 녹고 있다는 사실. 삶은 점점 무거워지고, 무거운 것이 가라앉듯 어디론가 계속 흘러간다는 사실. 옆에 함께 흘러가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 p.292
영화를 보고 나면 집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집의 본질이 상자라면, 우리는 왜 그렇게 크기에 집착해야 하는 것일까. 집의 본질이 관계라면, 우리는 왜 그렇게 집이 위치한 곳과 가격에 목을 매는 걸까. 집의 본질이 휴식이라면 우리는 왜 그렇게 집에서 보이는 ‘뷰(view)’에 목말라하는 것일까. 집이란 지붕과 벽과 바닥으로 이뤄진 건축물일까, 아니면 그 안에 있는 공간일까. 집은 출발하는 곳일까, 도착하는 곳일까. 가족이란 우연히 만난 운명일까, 아니면 운명적으로 만난 타인일까. 가족은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일까, 밥을 먹기 위해 집만 공유하는 사람일까. 수많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 pp.310~311
고통과 영광은 어떤 관계일까. 우리는 고통과 영광을 떨어뜨려 놓으려는 습성이 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겪어야 영광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영광을 얻으면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말로는 ‘고통과 영광은 양립할 수 없는 운명 공동체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달콤하기만 하지도 않고, 쓰디쓰기만 하지도 않은 ‘단쓴단쓴’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의미가 없어지는’ 일을 하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 p.457
누군가의 면전에 ‘당신은 진짜가 아니야’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진짜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어떤 글을 읽으면서, 어떤 공연을 보면서 ‘이건 진짜다’라고 느낄 때가 있다.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신나게 하고 있을 때의 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그런 마음을 읽었을 때 얼마나 즐거운가.
수십 년 동안 글을 쓰는 작가로서 ‘글에 마음을 담는 비법’을 소개해보겠다. ‘따뜻한 감성과 차가운 지성을 한 컵에 서로 섞이지 않게 해서 나란히 담고, 풍미가 있는 문장을 젤리 형태가 되도록 잘 다듬고, 그 안에 작은 은유들을 만들어 읽을 때 뇌 속에서 톡톡 터지게 하고, 한 시절을 동결 건조한다.’ 요리나 글쓰기나 마음을 담는 일은 언제나 참 힘들다.
--- pp.481~482
증오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둘러 문으로 직진하는 길을 찾는다. 하지만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많은 가짜 문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어둠 속에서도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건 사랑한다는 뜻이다. 가짜 문에 최대한 진심으로 속아주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텔레비전 앞에서 드라마 주인공을 진심으로 욕하고,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심으로 슬퍼서 울고, 빨리 속편을 만들어 달라고 항의하고, 가짜 이야기를 실제로 있었던 일인 양 헷갈리는 것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 p.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