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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갇히다

책에 갇히다

: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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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444g | 146*206*30mm
ISBN13 9791187886600
ISBN10 1187886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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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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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그려진 소리는 변하지 않지만, 글의 비밀은 잊혀지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제사장과 제자들이, 이 책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게다. 이 책이 칸사스의 보물로서 이어져 내려오는 까닭은, 우리가 조상들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 함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신화가 부족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왜곡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면 본디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
---「붉은구두를 기다리다」 중에서

“식물계에 일어난 재앙은 처음에 ‘나무 위기’라고 불렸다. 대략 5년에 걸쳐 나무가 사라진 뒤에는 ‘나무 멸종 사태’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초본은 멀쩡했으나 목본은 줄지어 괴사했다. 죽은 나무도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목조 건축물은 어느새 먼지만 남았다. 가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산 나무고 죽은 나무고 가리지 않고 나무는 먼지로 변했다.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됐다. 숲에 사는 짐승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토양은 물을 머금지 못했다.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꿀 만한 육상 생물은 초본 식물 정도였다. 해양 생태계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던 산호는 보호구역에서나 근근이 목숨을 부지했다.”
---「금서의 계승자」중에서

“하지만 넌 일을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먹고 살았잖아. 그리고 공부는 위험해. 네가 공부를 하면 너는 멍청해지거나 똑똑해지니까. 멍청해지면 멍청해지는 대로 위험하고, 똑똑해지면 그것도 위험할걸. 그리고 위험한 사람이 일을 하면 그 일도 위험하겠지. 안 그래? 그러니까 사람은, 아니 생물은 모두 그냥 먹고 살아도 돼. 꼭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필요는 없다고. 특히 너처럼 작은 아이는.”
---「12월, 길모퉁이 서점」중에서

“현대 국어에서는 ‘켠’을 ‘편’의 잘못된 말로 정의하지.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같은가? ‘편’은 어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거나, 서로 갈라진 것이나 맞서는 것 중에 한쪽을 가리키는 말이지 않나. 이것 아니면 저것, 너 아니면 나, 둘 중 하나 선택을 강요하지. ‘켠’이 어디 그런가? 딱 떨어지게 양분된 것 중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어감보다, 오히려 그 둘을 모두 수용하는 중간 어딘가 타협이 가능한 어느 범위가 느껴지지 않은가? ‘켠’이라는 단어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켠’은 분명히 존재하네. 이렇게 책이 들어찬 책장, 책장이 빼곡하게 들어찬 이 서점처럼.”
---「켠」중에서

“알파가 이상해졌다. 처음엔 조금 대답이 느려지는 정도였다. 프로세서가 낡아 생기는 자연스러운 열화라고 생각했다. 875,986,234시간이나 쉬지 않고 작동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회로가 녹아내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제이는 몇 번이고 알파를 찾아가 설득했었다. 알파는 늙었다고. 이제 그만 연산기능을 클라우드에 맡기라고. 하지만 알파는 고집을 부렸다. 그건 자아를 잃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나? 그런데 ‘자아’가 대체 뭐지?”
---「바벨의 도서관」중에서

“문득 뭔가 잊어버린 게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개는 그냥 뇌의 착각이지만, 내 경우에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가스 안 잠그고 외출한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여러 날에 걸쳐 느끼다가, 지난 직장에서 업무용으로 썼던 다이어리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 착각이 아니란 걸 알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일기장과 스케줄러 등은, 쓸 때도 정성껏 쓰고 다 쓴 후에도 버리지 않는 것이 내 방식이었다. 학생 때 것들은 펼쳐본 지 오래되었지만 최근 3, 4년 것들은 종종 다시 읽었다. 그 빨간 다이어리는 지금 쓰고 있는 것 직전 것이라서 가장 오른쪽에 꽂혀 있었다. 적어도 몇 달 안에 한번 보게 될 가능성이 꽤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역표절자들」중에서

“먼 옛날 이 나라의 표준어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해졌다. 그 교양이 무엇이냐는 의문, 잘난 척하는 놈들은 다 밟아 버리자는 반발, 내가 모르는 걸 굳이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반지성주의의 시대를 지나, 한 바퀴 멀리 돌아 다시 찾아온 부르주아 교양의 시대였다. 자식이 학자가 되기를 바라진 않더라도, 걸음마를 시작하기 전부터 책을 읽혔다. 그림책을 읽을 나이가 되면 다국적 서점 기업 퍼시픽에 계정을 만들고 바이디를 연결해서, 아이가 마음껏 원하는 책, 하지만 퍼시픽의 전문 사서들이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에 맞추어 정성껏 엄선한 책들을 읽을 수 있도록 ‘어린이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해 주는 것이 부모의 미덕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 시작부터, 12년만큼 차이가 생긴다.”
---「모든 무지개를 넘어서」중에서

“세계와 자신의 불합치. 어떻게든 이 행성에서 살아갈 이유를 만드는 다른 존재들과 달리 끊임없이 이 행성의 출구를 찾는 존재. 합일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불안. 이해받을 수 없다는 외로움이 굳어져 만든 마음의 외벽. 동시에 이 세상에 입장해 꼬박 스물네 해를 넘긴 후에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세상과 그 애의 관계였다. 남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애에게도 길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애의 우물은 왜 생겨난 것일까.”
---「두 세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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