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한국 저자가 쓴 등산 에세이는 어지간하면 다 읽어보려 하는 편이다. (아직은 몇 권 없어서 나오는 족족 읽을 수 있음) 산행력 후덕한 형님들의 백두대간 종주기라거나 그런 책은 제외. 동년배 혹은 나보다 젊은 사람이 쓴 등산 에세이 말이다. 읽으면 재밌다. 나도 이랬는데, 저 사람도 이랬군, 하는 공감 가는 대목이 많다.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은 5월에 나왔는데, 존재를 최근에야 알았다. 아마 제목에 '등산'이라거나 '산행'이 없어서 못 찾은 듯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바로 사서 읽었다.
양주연 저자의 이력. 콘텐츠 제작이란다. 어쩐지, 문장이 예사롭지 않더라. 『아무튼, 산』 『오늘도 등산』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 세 등산 에세이 중에서 감히 내가 평가하자면 문장력에서는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이 탑이다. 위트도 있고, 번득이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 많다. 내려올 텐데 왜 인간은 산에 오르는가. 힘든데 왜 올라야 하는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분량. 109쪽으로, 금방 끝나버렸다.
저자 분에게 가장 부러웠던 대목은, 친한 친구들과 함께 등산이라는 취미를 즐기는 장면이었다. 나도 간혹 그때 그때 맞는 사람과 가긴 하지만, 친한 친구 여러 명과 갔던 적은... 언제더라... 20대 CS, SR과 갔던 때가 마지막이었군. 그리고 CS와는 멀어져서 연락도 거의 끊긴 상태지...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일과 관계에 관한 저자의 솔직한 생각이 산행과 병렬적으로 서술된다는 사실이다. 역시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가 들어간 글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양주연 작가님도 안전 산행, 즐거운 산행하시고 다음 편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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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서도 행복하십시오." 관악산 연주대에서 과천향교로 내려오는 길, 이 문구를 마주하고 가슴이 찌르르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문장이었기 때문이었다. (6쪽)
"야, 인왕산 쉽대. 아니면 청계산 어때?" 그러나 막 등산과 사랑에 빠진 S는 칼같이 잘라냈다. "첫 산이 너무 쉬우면 재미를 못 느껴." (16쪽)
발끝에서부터 무언가가 힘껏 밀려왔다. 그 감정들을 단어로 설명하자면 안도감, 후련함, 성취감에 가장 가까울까. 한 단어로 표현할 순 없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굉장히 짜릿했다는 것. 사무실에 앉아서도 그 느낌이 자꾸만 생각이 날 정도로. (19쪽)
산은 겉보기엔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아주 위험하고 흉폭한 곳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도전 정신은 올림픽에서나 쓰고 등산할 땐 두고 오도록 하자. 이런 귀한 교훈을 크게 다치지 않고 깨달을 수 있어서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산을 정복하겠다는 오만 따윈 버리고, 매 순간 산이 우리를 받아들여주는 것에 감사하고 오를 것. 산이시여, 등린이를 오래오래 잘 부탁합니다! (27쪽)
인생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영역이 얼마나 될까? 회사에선 전력을 다해 일을 해도 성과를 내기 어렵고, 인간관게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의 마음은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정직하게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은 운동뿐이었다. (30쪽)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설악 서북공룡', '지리산 화대종주' 등 암묵적인 계급장 같은 것이 있는데, 나 역시 '설악산을 다녀온 사람'으로서 기록이나 경험치로 산의 순위를 매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높은 산, 더 긴 코스를 다니게 되더라도 그런 사람은 되지 않고 싶다. 뒷산을 매일 오르는 마음이나 밤을 꼬박 새고 10시간 넘게 산을 타는 마음 모두 산에 푹 빠졌다는 점에선 똑같이 소중하므로! (39쪽)
채용 담당자 여러분, 취미에 '등산'이 쓰여 있는 신입 사원은 일단 믿고 뽑으시는 겁니다. 뭘 맡겨도 해낼 사람들이니까요! (64쪽)
그래서 걷는 동안 슬픔의 답을 찾았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걷는 동안 들었던 생각이라곤 "언제 끝나지", "점심으로 뭐 먹지", "다리 아프다" 등 아주 원초적인 고민들이었다. 우울해할 시간이 없었다. 나의 밑바닥 감정에 대해 생각할라 치면 저릿저릿한 다리가 궁상 떨지 말라며 뒤통수를 '탁' 쳤다. (91쪽)
씩씩한 '혼자'들의 독립생활 이야기를 소개하는 에세이 '디귿'시리즈. 두번째로 만나본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은 등산을 하며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틈새 행복'을 발견해가고, 나 자신을 진짜 사랑하는 법을 깨우쳐가는 이야기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남들에게 쏟는 다정함과 너그러움의 절반을 나에게 쏟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내가 노력을 덜 해서, 살이 쪄서, 예쁘지 않아서, 능력이 부족해서, 스펙이 딸려서 원하는 걸 이루지 못했다고 너무 손쉽게 스스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쉽게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이 나 자신이므로.<행복의 모양은 삼각형> p.31
우리나라의 75%가 산이라니, 등산의 재미를 모르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4분의 1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건가 싶어 억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등산은 너무 싫었다. 애증의 대상도 아니고 애증의 '증'이라는 감정만 남은 등산. 회사다닐 때 분기별로 돌아오는 야유회때마다 제발, 제발 산에만 가지 않게 되길 바라고 또 바랐는데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에 좋다는 산에 가길 원하는 상사들을 모시고 도장깨기하듯 다녀왔다. 지금은 그 산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 산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하산해 들어간 오리구이집에서 다들 얼큰하게 취했던 기억과 다음날 온 몸에 남았던 어마어마한 근육통뿐. 그리고 하나 더,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산 정상에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광경과 아주 잠깐동안 내게 깃들었던 성취감! 정상에 오르자마자 단체 사진을 찍고, 무겁게 지고 올라갔던 먹을 것들을 내놓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때 아주 잠시 성취감이 깃들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저자가 등산에 빠진 게 이 성취감 때문이라고 하니, 왠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상사에 대한 극심한 반감으로 등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다. 다시 한 번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모든 고비를 넘기고 정상에 올랐을 때, 해냈다는 성취감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가득 차오른다. 결승선을 통과한 마라토너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나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 원하는 곳에 의지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야!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뿌듯함이 차올라 기분이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이 구역 자존감 왕이다. 등산을 하고 나면 스스로가 한층 좋아졌고 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행복의 모양은 삼각형> p.31
저자가 등산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바로 작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의 맛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엄격하다. '내가 노력을 덜 해서, 살이 쪄서, 예쁘지 않아서, 능력이 부족해서, 스펙이 딸려'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책망하고 코너로 몰아간다.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가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아주 작은 것들을 성취해내면서, 그것을 성취해가는 과정을 즐기기도 하고 성취해나가는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등산을 하고 나면 나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필요한 건 현실을 변화시킬 큰 모험보다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틈새 행복'들이라는 것을. 아침에 숲길을 걸으며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엔 건강한 도시락을 준비하는 등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일상에서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알 수 있었다. 이 소소한 루틴들은 여행만큼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줬다. (중략) 행복이란 부단히 노력해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매일을 살아내면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행복의 모양은 삼각형> p.57~58
'틈새 행복'이라는 말 참 좋았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등산을 하며 작은 성취를 이루고 '틈새 행복'이 가득한 평범한 일상은, 우리에게 벅찬 감동이나 일생일대의 감화를 주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우리게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잡아준다. 행복이란 부단히 노력해서 달성하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맛있게 먹은 식사, 푹 빠져 읽은 책 한 권, 포근한 이불 속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