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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병원 밖의 환자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양창모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1일 한줄평 총점 10.0 (24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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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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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어떤 아픔은 병원에 닿지 않는다”
강원도 왕진의사가 기록한 가장 먼 곳의 통증들


‘아프면 병원에 간다’는 것이 상식인 세계에서는 병원에 닿기조차 어려운 아픔을 짐작하기 어렵다. 의사를 만나러 가는 일이 아픔을 참는 일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소외된다. 왕진의사 양창모의 첫 책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는 한 평 반짜리 진료실 안에선 보이지 않는, 가장 먼 곳의 통증에 대한 이야기다. 가파른 산길과 고개 넘어 도착한 마을들에는 돈이 없어서,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차편이 없어서… 수많은 ‘없어서’ 때문에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없어서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이들의 집을 방문하고 그 사연에 귀를 기울이며 저자는 진료실이라는 공간에서 너무 쉽게 제거되는 삶의 ‘맥락’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맥락이야말로 환자를 치료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이며 의사와 환자 사이에 흘러야 할 소통의 원천임을 절감한다. 손가락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할머니의 관절염은 몸 자체가 아니라 한겨울에도 찬물에 손빨래를 할 수밖에 없는 삶에서 오는 것이었다. 하반신 마비로 거동이 어려운 할아버지를 진료실에서만 만났다면 그가 병원으로 가기 위해 엉덩이를 끌면서 큰방에서 현관으로 가는 것, 그걸 위해 집에 있는 문턱이란 문턱은 다 깎아놓은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600회가 넘는 왕진을 통해 한국에서 남의 집을 가장 많이 드나든 의사 중 하나가 된 저자는 치열한 성찰과 따뜻한 시선으로 써 내려간 56편의 글을 통해 말한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질병’이지만 왕진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잠을 깨우는 소리에 찌푸린 얼굴을 하며 ‘누구요?’ 하던 박 할머니는 막상 우리 얼굴을 보고는 정말 반가운 웃음을 지으신다. ‘어이구, 의사 선생님 오셨네!’ 근 두 달 만에 뵈는 건데도 내 얼굴을 알아보셨다. 1, 2초 동안 사람의 표정이 그렇게 달라지는 걸 보면서 나라는 사람이 다른 이에게 그토록 반가운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막연한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_8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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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 찾아가야 보이는 세계
6분의 오디션
추억은 방울방울
멀미
매운 냄새
가까이 오래
가난하지 않다
서로 다른 시계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
대체 불가능한 사람
태장동 할머니(1)-내가 만난 숲
태장동 할머니(2)-거미줄
태장동 할머니(3)-구름의 발자국
숯이 놓인 방
두 가지 마술
말없이 하는 말
따듯한 통증
어둠 속에 있어야 보이는 것들
탁류 속 행복
날개를 감추다
빛나는 여백

2. 어른거리는 얼굴들
민 할아버지의 수난극
쓰잘데기없는 의사
코끼리는 움직일 수 있다
할아버지의 산나물
기적
산소통 없이
주스 한 잔
반성문
후배가 찾아왔다
사라진 구멍가게
메아리
병 주고 약 주는
질문합시다
요양원 풍경
마음의 속도
나를 잡은 항생제
월식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사람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10분
내 몸이 아플 때

3. 우리를 마중하는 세계
무통 사회
운이 좋다면 노인이 된다
간병을 거부할 자유
지역의사가 보는 ‘지역의사제’
싸움 이후의 시간
의사들의 힘이 나오는 곳
두 종류의 전문가
미세먼지 수치가 말하지 않는 것
황소개구리
혈당 54
오솔길에 대한 예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내릴 수 없다면
작은 공간의 행운
뚜껑 열리는 소리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면

저자 소개 (1명)

저 : 양창모
강원도의 왕진의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웃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며 가까이 오래 있고 싶어서 가정의학을 전공했다. 국가보다 한 사람의 이웃이 훨씬 중요하다 믿고 시민이 병원의 주인인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 사람의 이웃으로 지역에서 이런저런 시민사회 활동을 해왔다. 등 떠밀려 앞으로 나간 적이 몇 번 있으나 모임에선 주로 맨 뒷자리에 앉는다. 춘천에서 10년간 일했던 병원을 그만두고 시골 어르신들 댁을 찾아가는 ‘호호방문진료센터’를 시작했다.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600회가 넘는 왕진을 가다보니 한국에서 남의 집 문턱을 가장 많이 넘나... 강원도의 왕진의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웃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며 가까이 오래 있고 싶어서 가정의학을 전공했다. 국가보다 한 사람의 이웃이 훨씬 중요하다 믿고 시민이 병원의 주인인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 사람의 이웃으로 지역에서 이런저런 시민사회 활동을 해왔다. 등 떠밀려 앞으로 나간 적이 몇 번 있으나 모임에선 주로 맨 뒷자리에 앉는다. 춘천에서 10년간 일했던 병원을 그만두고 시골 어르신들 댁을 찾아가는 ‘호호방문진료센터’를 시작했다.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600회가 넘는 왕진을 가다보니 한국에서 남의 집 문턱을 가장 많이 넘나든 의사 중 하나가 되었다. 동네에서 욕먹지 않는 의사로 살아가는 게 꿈이다.

출판사 리뷰

좁은 길과 높은 언덕 넘어
질병 아닌 ‘사람’을 만나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다.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 안에 들어서면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금방 얘기를 끝내고 나가줘야 할 것 같다. 의사는 좀처럼 환자의 얼굴을 보고 말하지 않는다. 환자보다 모니터의 차트와 사진을 보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많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짧은 진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왕진을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환자는 ‘한 사람’으로 자신의 삶 속에 앉아 있다. 벽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 하나만 눈에 들어와도 그는 이미 특정 질환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의사에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과잉 진료나 3분 진료가 불가능하다. 왕진이 환자의 입장에서도 물론 필요하지만 의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왕진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 진료실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절대 같은 의사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90쪽)
이 책의 1부 ‘찾아가야 보이는 세계’는 그 왕진이라는 경험이 알려준 ‘진료실 너머’에 관한 기록이다.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는 여든의 노인이 고작 ‘멀미’ 때문에 몇 년째 병원을 못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말로만 들었을 때는 의아했지만, 높은 고개를 넘어 실타래처럼 꾸불꾸불한 길을 지나다 속이 울렁거려 차를 잠시 세우고 나서야 저자는 노인을 이해하게 된다. 당뇨에 중풍, 치매까지 동반된 남편에게 아침저녁으로 인슐린 주사를 놔줘야 하는 아내는 눈이 침침해 주사기의 단위를 읽을 수 없고, 결국 저자는 이 노부부의 이웃에 사는 다른 당뇨 환자에게 할아버지의 주사를 부탁하고 나온다. 굳어진 무릎 관절 탓에 몇 년간 바깥 구경 한 번을 못한 할머니의 골방엔 지린내를 없앤다고 자식들이 갖다 놓은 숯이 덩그러니 있다. 이러한 삶의 맥락 속에 놓여 있는 환자를 의사가 그저 모니터 안의 차트가 말해주는 ‘질환’으로 치환하기는 어렵다.

“마을 주민들 간의 관계가 어떤지는 통증 주사를 놓아보면 대번에 안다. 통증 주사를 맞고 있던 신 할머니가 그런다. ‘여기 옆집 송 씨도 허리가 아파서 애를 쓰잖아. 허리 아프다면서 일을 할 건 다 해.’ 거기를 가보란 얘기다. 송 할머니 집에 가면 또 그런다. ‘이 위에 윤 씨 있잖아. 그이가 그렇게 무릎이 아픈가벼.’ (…) 서로가 서로를 돌봐준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_42쪽

‘의사 놈들’과 ‘의사 선생님’ 사이
어른거리는 얼굴들


저자가 의사 생활 내내 왕진만 했던 것은 아니다. 2부 ‘어른거리는 얼굴들’에서는 평범한 봉직의로 일하는 동안 마주쳤던 사람들, 고민했던 문제들, ‘의사 놈들’과 ‘의사 선생님’ 사이의 후회와 반성이 때론 격렬하게, 때론 담담하게 그려진다. “2분마다 환자가 들어오는 곳에서 정성 어린 진료를 하려면 인공지능 수준의 판단력과 부처님 수준의 마인드 컨트롤이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118쪽)고 저자는 말한다. 좋은 의사가 되려는 마음과 달리 한국 사회의 의료 현실은 그를 차갑게 시험한다. 진료실 밖에 환자들이 밀려 있을 때면 당장 앞에 있는 환자를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며 그는 괴로워한다. ‘의사로서 정말 이게 바닥일까.’ 하지만 그에겐 ‘어른거리는 얼굴들’이 있었다.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봄 산에 올라가 직접 딴 나물을 건네주는 할아버지의 딱딱한 손, 새벽부터 개천 주차장 구석에서 야채를 팔다 병원 문 열자마자 약을 타러 와서는 얼른 가봐야 한다고 재촉하는 할머니의 빠듯한 하루, 오르막길에서 당신 몸보다 더 큰 리어카를 두고 어찌할지 몰라 하는 노인들이 병원까지 걸어왔을 시간…. 저마다 고단한 삶을 살아내려 애쓰며 아픈 몸을 다독이는 이웃들의 풍경은 ‘좋은 의사가 되려면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마음먹게 만든다.
처음 의사 생활을 시작한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의 이야기도 나온다. 동문 모임에 가서 의료생협에서 일한다고 하면 “그게 뭔데요?”라는 시큰둥한 반응들이지만, 동일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이 받는 것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으로 일한다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는 반전된다. 차로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일부러 찾아와 통증 치료를 받는 노부부가 복숭아를 보내줬다는 이야기에는 무반응이었던 이들이 갑자기 저자를 존경하는 듯 바라보는 것이다. 돈이 지배하는 병원이 싫어서 시작하게 된 일에 대한 가치도 돈으로 저울질되는 아이러니.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뜻’ 이전에 물질로 교환되기 어려운 행복으로 지탱된다는 걸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그리고 3년 후 원주의료생협은 전국에서 동일 질환으로 처방하는 약의 개수가 가장 적은 상위 5퍼센트 병원에 든다. ‘어른거리는 얼굴들’을 보지 못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인 것은 분명하다. 열은 떨어져야 하고 기침은 줄어야 하고 산소 수치는 정상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료실 안에서 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환자로서만 있는 것이 아니듯 진료실 안에서 나 또한 의사로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픈 사람과, 그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또 한 사람이 진료실 안에 함께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질환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때론 그 상호작용이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환자에게 더 큰 의미가 되고 그럼으로써 의사 본인도 큰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_180쪽

세상의 중심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드러나지 않는 고통, 보이지 않는 세계 쪽으로 움직여온 저자의 삶은 ‘공고한 엘리트?기득권 계층’이라는 의사에 대한 세간의 관념을 깨뜨린다. “환자들은 진료실을 나가도 환자로서의 삶이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의사의 역할은 진료실을 나가는 순간 끝나는 걸까.”(284쪽) 지금 여기의 공동체에 던지는 저자의 근본적인 질문은 3부 ‘우리를 마중하는 세계’에서 더 명료해진다. 사회적 고통에 대한 태도는 그 사회 자체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그는 말한다. 아픈 사람이 움직일 때 통증이 일어나는 부위에 온 신경을 집중하듯이 사회가 변화의 방향을 정할 때는 그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논쟁의 중심이 됐던 의사 파업과 의대생들의 고시 거부, 지역의사제 공론화 등을 바라보며 저자는 ‘밥그릇 싸움’ 이후의 시간에 대해 묻는다. 국가와 의료의 본질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힘이 시민들의 건강에 고스란히 연결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던진다.

“공공의료의 결여가 누군가에게는 추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구체적인 고통이다. (…) 지난 수년 동안 할머니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최근의 나를 제외하면 딱 두 사람뿐이었다. 요양보호사와 이상한 사람(병원 브로커로 의심되는 그는 원하지도 않는 한의원 진료를 보게 해서 할머니를 화나게 만들었다). 행정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여기에 와서 현장을 보는 일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골집에 갇혀 누워 있는 분들의 목소리는 결코 복지 공무원의 책상머리까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_219~220쪽

한 사람의 건강을 넘어 한 사회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 나서는 저자의 일상은 시민사회 곳곳으로 넓어지는 동시에 ‘가장 아픈 곳’으로 수렴되기를 반복한다. 생활방사능 문제로 시청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골프장 반대 농성을 위해 도청 앞에서 밤새 천막을 지킨다. 아파트 동대표에 홀로 입후보해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최저임금 문제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의사의 길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그는 막다른 골목에 낙심하다 이웃의 손길 하나에 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한계를 실감하는 순간 슬픔에 잠기다가도 ‘마음이 있으면 길은 보인다’고 믿으며 왕진가방을 챙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린 아픔이 있듯 보이지 않는 마을에 이런 의사가 있다. 사랑이니 휴머니즘이니 하는 것들이 떠나간 듯한 시대,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는 사랑과 인간을 믿는 한 의사가 ‘평범한 이웃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다.

종이책 회원 리뷰 (22건)

세상의 중심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w******s | 2023.04.24

나는 마을에 가방 들고 아픈 사람들 집을 방문하는 왕진의사가 있으면 너무 좋겠어. 그러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놓일까?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닐 것 같고

미국에 사는 언니와 통화하면서 내가 했던 말이다. 17살 차이가 나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언니와 통화를 하다보면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수다를 떨게 된다.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사람들과 삶을 나누다가 떠날 것인가에 대해.

내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엔 발전이라는 막강한 힘에 부서져버린 과거의 것들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청진기가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마을을 돌던 왕진의사라는 존재 역시 그중 하나이다. 그런데 얼마 전 책을 통해 현실의 왕진 의사를 만났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의 저자 양창모 씨이다.

일반적으로 병원은 짧은 진료시간과 과잉처방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는다. 그야말로 의료산업이다. 그에 반해 그는 최소한의 처방과 최대한의 상담을 진료 원칙으로 삼고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처음 만나는 환자들에 대한 반가움이 줄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침 그 때, 수몰된 농촌 지역에 왕진하는 일을 제안 받고 왕진의사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꼬불거리는 산길을 차로 한 시간 걸려서 가고, 할머니가 내주신 식혜를 마시는 쓸데없는 과정을 거치며 그는 깨닫는다. 그동안 자신이 환자들에게서 점점 멀어졌던 것은 너무 손쉽게 만났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속도가 돈이 되는 진료실 안에서는 가급적 빨리 간단하게 만나야 하는데, 바로 그 효율성이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음을.

하반신 마비인 사람과 두 다리 멀쩡한 사람이 만나야 한다면, 누가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 그는 묻는다. 답이 너무나 명확한 질문인 것 같은데, 현실은 그 답과 정반대이다. ‘6시 내고향만 봐도 의사의 한 마디 말과 처방약을 위해 아픈 허리와 다리를 이끌고, 하루에 몇 번 없는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할머니들을 매일 보게 된다.

왕진의사로 살기 이전 그는 의료생협에서도 일을 했다. 의료생협은 지역 주민들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만든 비영리기관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보통의 의사들에 비해 훨씬 적은 월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생협 설립의 목적이 있기에 3분 진료, 과잉처방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들은 최대한 피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제주에서도 앞으로 이와 비슷한 조직이 만들어질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데, 응원을 보내고 싶다.

저자가 일했던 의료생협에서도 보통 병원에선 보기 힘든 이야기와 관계와 마음들이 있었다. 손가락 관절염 증세인 듯한 할머니가 찬물로 계속 손빨래를 하시는 것을 알고, 생협 게시판에 중고 세탁기 구하는 글을 올려서 할머니에게 드리는 의사, 월세 5만원 방에 사시는 70대 할머니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함께 나선 생협 구성원들. 저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해도 이 세상에 대한 그분의 마지막 기억이 쓸쓸하지는 않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한 분은 병원 밖에서 퇴근 시간이 되도록 1시간을 기다리다 신문으로 싼 산나물을 저자에게 쥐어주셨다. 낡은 자전거를 끌고 가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자는 이렇게 어렵게 나물 캐서 번 돈으로 우리 병원에 다니고 계셨구나’, ‘그 돈으로 나는 자동차를 샀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약의 오남용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 복용에 대해서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1년에 한두 번 건강상담을 위해 오시는 할아버지가 지나는 말로 가슴이 여자처럼 나와서 대학병원에 다녀왔고, 약도 처방받았다고 하셨다. 이런 증상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가 약물이어서, 복용약 모두를 갖고 오시게 했다. 원인이 될 만한 약들을 빼고 대체약을 처방했고 여성형 유방 치료제도 복용하지 않게 했는데, 석 달 후 오셔서 다 좋아졌다고 하셨다.

이렇게 복용약 모두를 살펴보고 처방을 내리는 데 20분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분 진료가 불가능한 대학병원은 약 부작용을 약으로 치료하려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실력 없는 의사보다 시간 없는 의사가 더 많은 세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약을 훨씬 덜 쓰는 미국도 전체 입원 환자 중 3.4%가 약 부작용으로 입원을 한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약물의 효과가 서로 엉키는 것인데, 한국 노인 중 열에 아홉은 절대 함께 복용해서는 안 되는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대책은 평소 복용하는 약의 처방전을 찍어두고, 다른 병원에 갔을 경우 이 처방전을 의사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의사가 집까지 찾아오는 황송한 상황을 바라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더라도, 애써 찾아간 병원의 풍경이 이럴 수 있다면 참 따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어졌던 환자들의 삶에 한 발 더 다가가고자 저자가 택한 꼬불꼬불 왕진 길에는 당연히도 더 깊은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슬프지만 웃을 수밖에 없었던 장면을 옮겨본다. 소양호가 내려다보이는 깊은 골짜기의 할머니 댁에서 나눈 대화이다.

할머니, 옆집에 사시는 분 있어요?”

, 애가 하나 살아.”

이야, 이 산골에도 애가 있어요? 몇 살인데요?”

, 아마 일흔 정도 됐을 걸?” 할머니의 연세는 아흔 셋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시골들은 나이 들어가고 있다.

왕진을 가는 시간 대부분은 슬픈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그는 말한다. 축축하게 다 떨어져가는 벽지, 솜덩어리를 대충 싸놓은 베개, 수신 불량 티비,... 표정도 생기도 없던 얼굴이 자신들을 보자 1~2초만에 밝아지는,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의 기적을 종종 만난다. 두 분 다 아픈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챙기는 80대 노부부의 모습에선 따뜻한 통증을 느낀다.

마을의 이웃 관계가 살아있는 곳에서는 통증 주사를 맞으면서 옆집 이웃도 허리가 너무 아파서 큰일이라는 얘기를 왕진 의사에게 전한다. 한 번 돌아봐달라는 이야기다. 어느 마을은 연극인 공동체가 폐교에서 살아가면서 매주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 그곳 할머니들은 무척 생기 있고 빛난다.

마을이 살아있으면,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그만큼 살만해진다. 그러나, 그동안 서로가 서로를 돌보던 마을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어르신 한 분을 건강하게 지키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읽는 동안 따뜻했고 아팠고 슬펐고 부러웠다. 저자는 세상의 중심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왕진의사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겠지 싶다. 지금은 시범사업으로 왕진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전국의 마을 곳곳에서 왕진가방을 든 의사가 고통 받는 사람을 찾아가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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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희생도 담보하지 않는 의료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자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p*****s | 2021.06.29

 

각종 건강염려증, 건강정보, 건강식품, 신비한 완치체험 등등을 믿지 않는 지라 ‘아프면 의료면허가 있는 의사가 진료하고 치료하는 병원에 간다’는 질환에 관한 나의 유일한 상식이고 태도이고 해법이다. 판데믹 시절 백신 개발에 대한 어려움과 과정이 자세히 보도되는 미디어 상황을 보면서 나는 이제야 온갖 의학 미신들이 사멸하고 의학과학적 사고방식이 득세할 것이란 기대를 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이 기대대로 잘 구현된 사례가 드물다는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 상황이 어떤지는 다들 아시니까 구구절절 보고는 넘어간다.

 

그러니 내가 보는 세상은 의학과학을 신뢰하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나 일부러 한 짓은 아니지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염두에 두지 못한 세상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고 배운다. ‘아프면 병원에 간다’는 상식을 따를 수 없는 이들.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는 아픔. 통증보다 더 어렵고 힘든 병원 가는 여정. 열 장도 못 읽고 일단 조금 울었다. 반성과 감동과 안타까움과 속상함과 무심함과 안도와 기타 등등이 섞인 눈물이 났다.

 

“목 디스크로 팔이 저린 김 할머니의 침실에서 너무 낮은 베개를 보았을 때, 허리 디스크로 다리를 들 수조차 없던 박 할아버지가 앉은뱅이 밥상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식사하는 걸 보았을 때, 무릎 관절염으로 오전에 통증주사를 맞고 온 송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방에 걸레질하는 걸 보았을 때.”

 

아주 오래전 진폐증으로 병원을 오는 광부들을 치료해주던 의사가 똑같은 병이 재발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환자들을 돌려보내면서 약을 처방해주기만 하는 자신에 대해, 의료방식의 한계에 대해 무척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일도 떠올랐다. 한 개인이 괴로워하는 것 말고 뭘 더할 수 없게 두는 사회가 함께 원망스러웠다.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방과 방의 경계선이 점점 사라졌다. 여기가 안방인지 부엌인지 거실인지 알 수 없었다. 먹다 남은 찬거리와 음식들이 펼쳐놓은 이부자리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가 집과 집 아닌 것의 경계선도 점점 사라졌다. 멀리서 보면 집인데 가까이서 보니 움막이었던 곳도 있었고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분들도 만났다.”

 

“돈 없는 환자에 돈 없는 병원.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는 내게 물었다. 만약 중환자실 입원 기간이 길어져서 입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감당할 수 있는가.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술을 못할 것 같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릴 용기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600회가 넘는 왕진을 통해 한국에서 남의 집을 가장 많이 드나든 의사 중 하나’가 된 저자가 왕진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찰을 이렇게 56편의 글로 만들어 주었다. 의사가 아픈 사람 만난 이야기일 뿐인데 56번 울컥한다.

 

“진료실에서 나는 환자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질환과 마주한다. (...) 정체를 밝히는 데 성공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간혹 실패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실패에서 ‘사람’을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궁금해할 여력도 없다. 진료실이라는 창백한 멸균 공간에 환자가 들어올 때 그는 자신의 맥락을 모두 버리고 들어온다. (...) 모든 것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오직 한 가지, ‘증상’만 남는다.”

 

“아마도 할아버지를 위한 20분 진료가 허락되지 않았을 대학병원은 약 부작용을 약으로 치료하려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실력 없는 의사보다도 시간 없는 의사가 더 많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시간이 많은 의사도 필요하다.”

 

여력이 없다는 글이 핵심이다. 진료대기표를 볼 때마다 절감하는 문제이다. 보호자로 진료실 문 밖에 앉아 나는 진료실 안의 풍경에 난감한 기분이 들 때도 여러 번이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진료 시간에 대기명수를 보면 일인당 배정된 시간 계산이 되기 때문이다. 꼼짝 못하고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여타의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의사들의 근무환경은 모두의 처지를 안타깝고 불편하게 한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야 장의사처럼 나타나서 사망 선고를 하고 가버렸다는 전공의. 그는 결국 그런 수련 과정을 통해 무엇을 체득하게 될까.”

 

가족 친지 중 의료인이 세 명이다. 심장 외과와 응급 의학 분야이니 소위 상대적으로 편할 수도 있다는 분야도 아니다. 보고 들은 일들로 짐작하건대 20살이 되자마자 의학서적을 독파하는 방식으로 학습하고 전문의가 될 때까지 테스트를 치러야하는, 소위 교양과정조차 허락하지 않는 교육시스템은 옳지 않다. 30살이 훌쩍 넘어 어느 날 ‘직업 이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휴가는 어떻게 보내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상담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생각해보라는 말 이외에 해줄 말이 없어 몹시 난감하고 마음이 아팠다.

 

“아무런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속에 갇혀서 오직 자신의 욕망, 자신의 고민만 들여다보는 사람. 그것이 내가 있었던 의사들의 세계다. 진료실은 의사를 자폐적 세계에 가둔다. 타인의 고통에 누구보다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둔감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에 가능해진다. (...) 진료실이란 공간은 단순히 환자를 증상의 덩어리로 보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 하여금 환자들의 삶에 눈을 감게 만드는 눈가리개 역할도 한다.”

 

현직 의사로서 저자가 제안하는 두 가지 해법을 소개한다. 첫째, ‘의사들의 왕진 제도화.’ 왕진 수가를 현실화하고왕진 주체를 공공의료 영역으로 바꾼다방문진료 전담 센터를 만들고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둘째, ‘고령층의 정치세력화.’ 일상적인 요구를 정치화할 수 있는 어르신 정당이 절실하다.

 

“대학병원에 인턴 수급이 되지 않았을 때 어떤 파국적 상황이 벌어지는지 누구보다도 의대생들이 잘 알고 있다. 의대생들이 승리를 자신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 의료가 공공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 모두가 의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힘이 생기는 것이다. 정부가 의사들에게 군 입대를 공중보건의로 대체할 수 있게 허용한 것도, 의대생들이 의사고시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공공의료에서 일할 단 한 명의 의사가 아쉽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당하게 부과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온갖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가족 간병과 관련된 제안을 소개한다. 가족의 간병을 묵인하고 방치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비겁하고 비열한 사회이다. 부정적 결과로 발생한 사건을 두고 가족애니 효도니 그 따위 수준의 망발은 부디 누구라도 삼가길 바란다.

 

가족들에게 간병하지 않을 자유를 주지 못하는 사회는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사회다.

우리에겐 가족을 간병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그 권리를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가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

내가 그를 간병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그를 간병해줘야 한다.

만약 내가 간병을 선택한다면

사회가 치러야 할 공동체의 비용을 아무런 조건이나 장벽 없이 나에게 지불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택할 수 있다.

간병 받는 사람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인이나 가족의 '간병하지 않을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간병을 거부할 자유는 간병할 자유, 간병 받을 자유와 같은 말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치료받고 병원에서 죽어가는 삶, 이 중요한 공간과 시스템에 대한 치열하고 심도 있고 실용적이고 선한 의도를 가진, 무엇보다 ‘누구의 희생도 담보하지 않는’ 방식의 논의와 대안과 정책을 기대한다.

 

“나는 무관하다 말하는 순간 답은 없어진다. (...) 나는 늘 믿어왔다. 한 사람의 이웃이 국가보다 중요하다고. 그렇다면 나는 왜 그 한 사람의 이웃이 되면 안 되는가. 그런 질문들이 길을 만들어줄 것이라 믿으며 나는 다시 왕진가방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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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괜찮습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정* | 2021.05.25

지인의 추천으로 구매하게 된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입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한다고 알고 간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는 것이 아파서 병원에서 진찰 받는 것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

교통상의 여건이든 경제적이든 소외된 이들이다...

56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낫게하는 비법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600회가 넘는 왕진을 통해

한국에서 남의 집을 가장 많이 드나든 의사 중 하나가 된 저자는

치열한 성찰과 따뜻한 시선으로 써 내려간 56편의 글을 통해 말한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질병’이지만 왕진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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