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다. 고등학교 때 데미안을 읽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소설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를 내 별명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분의 소설을 일부러 찾아 읽을 정도로 이분을 좋아한다. 헤세는 나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다.
이 책은 헤세가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쓴 글을 모은 에세이집으로 총 5부에 걸쳐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제목은 ‘나를 부르는 환희, 자연’, 2부는 ‘유년 시절의 기억, 향수’, 3부는 ‘나를 움직이는 힘, 인간’, 4부는 ‘존재의 의미, 예술’, 마지막으로 5부는 ‘일상의 기적, 여행’이다. 각 주제별로 자연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인간, 예술, 여행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헤세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기뻤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이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유명 연예인이든 사상가이든 가깝게는 친구이든 자신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헤르만 헤세는 나에게 그러한 존재다. 그래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또 그가 일상을 살며 느끼고 생각한 것을 읽어 가는 경험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글은 오늘날에도 생각할 만한 거리를 던져준다. 요즘 현대인들은 정말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다. 잠시라도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작은 것의 소중함을 놓칠 때가 많다. 또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무분별한 개발은 지구를 아프게 만들었고 그 여파는 우리에게까지 오고 있다. 헤세는 이미 거기에 대한 통찰도 하고 있다. 여러모로 이 책은 현재를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무더운 여름이 드디어 끝나간다. 삶이 무료할 때, 바쁜 삶에 지칠 때, 한 번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싶을 때, 가만히 앉아 이 책을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책 곳곳의 삽화를 함께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을 통해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으시길 바란다.
읽으면서 약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각각의 글에서 완결된 느낌을 못 받았던 탓이다. 헤세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썼던가?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작품 출처에서 찾은 말, '발췌'. 그랬구나, 뽑아서 실었던 것이구나. 이해가 되었다. 옮긴이가 선택한 부분의 글이었던 것이다. 전문을 다 읽었으면 좋겠지만 이건 이것대로 또 괜찮았다. 어차피 헤세의 글에서 얻게 되는 헤세의 생각이니.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 향수, 인간, 예술, 여행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대가는 대가이다. 어느 한 영역 소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정신 안에 이 다섯 가지가 다 고르게 자리잡고 있으려면, 삶의 주체자로서 이 다섯 영역을 고르게 누리려면 얼마만큼의 능력을 타고나야 하는 걸까? 이걸 기른다고 기를 수는 있는 것일까? 구경만 하고 있어도 이렇게나 벅찬 마음인데.
각 계절의 특징을 헤세가 자신의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인식하는 즐거움을 서술한 1부가 특히 좋았다. 바야흐로 봄이 되려고 해서 내가 더 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가오는 봄의 순간순간을 내 감각으로 어루만지면서 맞이했으면 한다. 2부에서는 내가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던가를 떠올려보는 일로 작가와 발걸음을 같이 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과 그 시절의 꿈과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과 때로 아팠던 상처들을 되짚어 보면서. 그리고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지금의 내 처지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정신의 어떤 영역 하나만큼은는 날카롭게 빛나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28 내가 무엇을 역겹게 생각한다 해서,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가치가 덜하거나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것, 내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것, 나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 것, 나에게 아무런 호소를 하지 않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 자신은 더 초라해진다. 233 중요한 것은 그대가 생각한 무엇을 이미 다른 사람이 생각했는가가 아니다. 그 생각이 그대에게 무언가를 일깨워 주는 체험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350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그 충동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결코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나쁜 본능이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우리들 안에 존재하는 최상의 것에 몰두할 수 있다. 즉 우리들이 몰두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정신을 더 신뢰하기 위함이다. |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