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고등학생 사카히라는 같은 반 친구 미즈무라와 몸이 바뀌게 된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을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그들의 성별이다. 고등학생까지 남자와 여자, 서로 다른 성별로 살던 두 사람 앞에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혼란스러운 사카히라와 다르게 미즈무라는 침착하고 차분해 보인다. “내일이면 돌아올 거야.” 그러나 두 사람의 바람과는 다르게 하루가 지나도, 수영장에 다시 빠져보아도, 계단을 굴러도, 두 사람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15년이 지나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며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애석하게도 끝끝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들은 서로 연락하며 먼발치에서 그리운 자신을 지켜본다. 그제야 내가 나였을 땐 결코 알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해 깨닫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나의 것으로 생각했기에 실컷 미워하고 실컷 사랑하지 못했던 나의 뿌리인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있는 그대로 가장 소중했던 나에 대해서.
출판사 서평
진짜 ‘나’와 살아내야 할 ‘나’를 두고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
★★★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 츠지무라 미즈키 추천 ★★★
『네 얼굴로 울 수 없어』는 제12회 소설 야성시대 신인상 수상 작품이다. 작가 기미지마 가나타는 이 작품을 통해 신예로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학생인 사카히라와 미즈무라가 어느 날 갑자기 몸이 바뀌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하지도 않았고, 공통점도 없었던 두 사람은 하루아침에 몸이 바뀌자 계기를 찾는다. 그러나 계기라고 할 만한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영장에서 있었던 간단한 사건밖에 없다. 두 사람은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온갖 일을 도모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래도 그들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간 꼭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기에, 각자의 삶을 잘 살아내자고 서로를 응원한다. 하지만 그 후로 15년 동안, 그들은 바뀐 모습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가족과 함께할 수 없고, 더 이상 원래의 성별대로 살아갈 수 없다. 그중에서도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내가 ‘나’라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나라는 것, 너무나 당연하여 한 번도 의식해본 적 없었던 그 일이 이토록 간절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오로지 서로뿐이다. 사카히라가 겪는 모든 걸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미즈무라 밖에 없는 것이다.
두 사람만의 비밀,
대가처럼 드러나는 갈등
우리는 서로 많은 걸 빼앗으며 살아왔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서로의 것을 빼앗고, 또 서로를 용서하고. 비밀이라는 좁디좁은 껍질 속에서 들키지 않게끔, 어깨를 맞대고 웅크린 채 15년을 숨어 살아왔다. 이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불현듯 비밀의 대가(代價)가 성난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_본문 중에서
그러나 어쩐지 이상하게 서로가 밉다. 내가 가졌던 모든 걸, 심지어는 내 몸까지 그 아이가 가지고 있으니까. 나를 되찾기 위해 서로를 지키는 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미즈무라가 아닌 사카히라라고, 내가 나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커져만 간다.
몸이 바뀌길 원한 적 없다.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원한 적도 없다. 많은 걸 빼앗겨버린 기분에 사로잡힌 채 분노에 휩싸이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다. 빌어먹게도 더 이상 자기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쟤가 죽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고향을 떠나 도쿄로 향한다. 고향에 남아 있어 봤자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기대와 좌절로 번번이 무너지기만 할 뿐이다. 이대로는 그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바뀌어버린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새로운 출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몸이 바뀌며 모든 것이 변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혼란스러워할 새도 없이 시간은 흐른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도 결국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 아마도 그건 성별이 바뀐 두 사람이 아니어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성별 전환’이라는 판타지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소설은 성별 전환을 내세워 모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족과의 이야기, 만남, 이별, 미래, 꿈, 결혼, 출산 등 살아가며 겪을 법한 일들을 전부 보여주고 있다. 성별이 바뀌어버린 입장이 아니어도, 우리는 두 사람의 고뇌와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진정한 미즈무라 마나미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원래의 내 몸과는 결별하고, 되돌아갈 때를 위한 준비를 관두고. 그렇지 않고서야 방법이 없지 않은가. 괴로움이 극에 달한 것이다. 언젠가 되돌아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간절히 바라며 잠자리에 들고, 결국 절망하며 눈을 뜨는 아침을 수도 없이 되풀이해왔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바라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으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선 여지없이 기대를 품고야 만다.
_본문 중에서
그들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그 간절함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다른 형태이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 때문에 갈등하고, 그 갈등으로 인해 누군가와 다투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결국엔 화해하고 일을 바로잡는다. 삶이란 그 과정의 반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살아내고 함께한다. 그 삶 속에서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언젠가 이루어질 거란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어쩌면 막연한 그 언젠가를 고대하는 간절함이 원동력이 되어 삶과 화해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왜’ 함께 살아가는가
모두 이유를 물을 것이다. 사카히라와 미즈무라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음에도 왜 화해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냐고. 『네 얼굴로 울 수 없어』는 그 대답을 잊은 사람들을 위한 소설이다. 작가 기미지마 가나타는 성별 전환이란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이야기를 그려내면서도, 남녀 간의 연애 감정으로 이야기를 풀지 않고 동지로서의 관계로 풀어내어, 이 문제를 비단 남녀 간의 애정 문제가 아닌 모든 사람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치환했다. 이 소설은 성별 전환이란 판타지로 문을 열고 내가 왜 삶과 화해하고 사람들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으로 문을 닫는다. 책을 통해 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서로를 의지하고 지키며 살아내는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추천사
남녀의 몸이 서로 뒤바뀐다는 흔한 소재를 신체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쓰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소설은 그 점을 얼버무리지 않고 치밀하게 그려낸 데다 가독성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설정을 살려 자신의 신체를 받아들여 가는 고충, 가족 간의 소통 문제, 실존적인 불안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문제들을 신선한 형태로 부각시켰다. 단순히 필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작가는 이 소재를 정성스레 마주하고 있다.
_모리미 도미히코(소설가)
성별에 대한 위화감, 몸에 대한 위화감, ‘자신의 집’과 ‘타인의 집’에 대한 위화감, ‘자신의 삶’에 대한 위화감. 현실성 있는, ‘타자와 몸이 서로 뒤바뀐’ 이야기면서도 세세한 부분에 깃든 묘사 하나하나에, 평소 우리가 조금씩 느끼며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위화감과 삶의 고충으로 연결되는 감각이 있어, ‘뒤바뀐 몸’은 그것을 가시화하는 장치에 불과함을 깨닫게 한다. 이 점이 무척이나 현대적인 동시에 보편적이다. 소설 전체에 깔려 있는 것은, 비록 본래는 자신의 인생이었다 한들 ‘타자의 인생을 존중한다’는 두 주인공의, 나아가 작가의 성실한 소망이 아닐까 싶다. 소설 속과 같은 운명은 아닐지언정, 선택할 수 없는 운명 혹은 인생과 씨름하는, 그런 우리를 향한 응원으로도 읽힌다.
_츠지무라 미즈키(소설가)
현대의 젠더 논의를 남김없이 받아들이거나 저촉되는 부분을 능숙히 분리해내는 동시에, 모든 것을 등장인물의 개성, 개인적인 인생의 선택으로 재포착했다는 점에서 수준 높은 필력뿐 아니라 작가의 정신적 성숙과 현대에 적합한 시선이 느껴진다. 읽을 가치가 있다는 점, 독자에게 신뢰를 약속한다는 점에서 추천에 후회가 없다고 단언할 만한 소설이다.
_우부카타 도우(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