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하기에 좋은 분위기는 어떤 걸까. 늦은 밤, 비가 오는 밤, 눈에 갇힌 밤. 밤은 빼놓지 않는구나. 난 무서운 이야기 해 본 적 없다. 아는 게 없으니. 겪은 일도 없다. 아니 한두번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무서운 일은 아니었다. 여기에 담긴 이야기에는 소설가가 야간 경비를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소설가는 종교시설에서 야간 경비를 하면서 소설을 쓰려고 한다. 한차례 그곳을 돌아보고 와서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소설가 자신이 쓰지도 않은 말이 공책에 쓰여 있었다. 이 말 왜 하느냐 하면 나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다. 컴퓨터 쓰면서 뭔가 쓰려고 한 것 같은데 그때 무척 졸렸다. 졸린데 난 뭘 쓰려고 했던 걸까. 잠깐 졸다가 깨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니 글 제목 쓰는 칸에 ‘지옥에나 가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그때는 깜짝 놀라 글쓰기 누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쉽다. 남겨두는 건데. 내가 그걸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때 난 그런 생각 안 해서다. 안 좋은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누가 쓴 걸까. 여전히 수수께끼다. 야간 경비하던 소설가가 쓴 말이 ‘지’여서 그 일이 생각났다.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겼을 때 ‘지’지만.
미쓰다 신조는 호러와 추리를 섞은 이야기를 쓴다. 어떤 이야기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만, 어떤 이야기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기도 한다. 미쓰다 신조는 세상에는 그런 것도 있다고 말한다. 괴담은 그저 괴담으로 받아들이자고. 그건 그렇겠지. 세상엔 인과 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일도 있다. 무서운 이야기는 더 그럴지도.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는 건 부조리하지 않나. 앞에서도 말했듯 난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쓰다 신조 소설은 조금 봤구나. 미쓰다 신조는 다른 사람한테 들었다면서 글을 쓰기도 한다. 그건 정말 다른 사람한테 들은 이야길지 뭔가를 보다가 알게 된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쓴 건지. 이 책 《우중괴담》은 다른 사람이 경험한 일을 미쓰다 신조가 듣고 여러 가지를 바꿔서 썼다는 설정이다.
얼마전에도 미쓰다 신조 소설을 봤는데 또 봤구나. 미쓰다 신조 소설에는 어린 남자아이와 할머니가 나오기도 하는데. 지난번에도 그런 게 나왔고 여기 담긴 <은거의 집>에도 나왔다. 미쓰다 신조는 할아버지가 없어서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 경험을 해서 소설에 자주 썼나 보다. 미쓰다 신조 소설을 몇해 동안 보다보니 어떤 공통점을 알게 됐구나. 소설을 본다고 미쓰다 신조 작가를 알 것 같지는 않다. 어린이는 무서워하면서도 하지 마라 하면 그걸 하기도 한다. <은거의 집>에 나온 아이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집에서 먼 곳에서 이레를 지내야 했는데 자신을 돕는 할머니가 한 말에서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안 되고 다른 사람이 말 시키면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어겼다. 그래도 아이는 큰일을 겪지 않고 끝났다. 큰일은 죽는 거겠지. 아이는 자라고 어른이 되고 어릴 때 일을 작가한테 말했다.
여기 담기 이야기는 모두 다섯 편이다. <은거의 집> <예고화> <모 시설의 야간 경비> <부르러 오는 것> <우중괴담>. 앞에서 어린이가 하지 마라는 거 한다고 했는데, <부르러 오는 것>에서도 그랬는데, 거기 나온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다. 그거 읽으면서 하지 마라는 거 왜 하는 거야 했다.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그 사람이 그걸 어겨서 할머니나 어머니가 죽지 않았을까 싶은데. 자신이나 딸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그 사람은 조심했다. 지금도 조심하고 살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뭔가가 사람을 부르러 오는 건 미쓰다 신조 다른 소설에서도 본 것 같은데. 같은 작가니 비슷한 걸 쓰기도 하겠지. 그리고 비.
비가 오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면 낮인데도 세상이 어둡다. 그럴 때 마물 같은 게 나오기 쉽겠다. 미쓰다 신조 소설에는 비가 올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가 여러 편이다. 비 올 때만은 아닌가. 나가면 안 되는 곳을 나가거나 들어가면 안 되는 곳에 들어가도 그렇구나. 사람 뒤를 따라오고 사람을 무섭게 하는 정체는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건 뭘까. 정체를 모르기에 무서운 거겠다. 무언가 뒤를 따라올 때 돌아보면 거기엔 뭐가 있을까. 자기 자신. 자신이 잘 아는 누군가. 이건 별로 무섭지 않을까.
누군가 그린 그림이 실제 일어난 일 있을까. 앞으로 일어날 일을 꿈에서 보면 그걸 예지몽이다 하는데 그림도 그럴지. <예고화>는 내가 놓쳐서 잘 몰랐던 것도 있었다. 나중에 그걸 알고 아쉽게 여겼다. 그걸 안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여기엔 추리할 것도 있다. 아이는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 힘이 있다는 걸 알고 그렸을지. 아주 모르지 않고 어렴풋이 알았을 것 같다. 그 그림에 담긴 저주 같은 것에서는 달아날 수 없나 보다. 아니 자신이 살려고 그림에 다른 그림을 그려서 안 좋게 끝났을지도.
희선
호러소설 작가인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괴이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단편소설로 쓰게 된다.
<은거의 집> 산 속에 위치한 어느 집에 맡겨진 소년은 일곱 밤이 지나 일곱 살이 되는 날까지 이 집에서 '은거'해야 한다. 울타리 밖으로 절대 나가서는 안 된다, 본명을 말해서는 안 된다 등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지만 어린 아이에게는 지키기 쉽지만은 않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집에 머문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또래의 소년이 찾아오는데...
"이런 계통의 괴이에 이유를 찾으려 해봤자, 분명 의미는 없을 겁니다."
총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중괴담]의 첫 번째 이야기였던 <은거의 집>을 읽었을 때의 소감은 '응? 생각보다 재미있는데?'였다. 호러 미스터리 소설의 절대강자인 미쓰다 신조 답게 특유의 분위기 묘사가 압권이었고, 채 일곱 살이 되지 않는 아이가 주인공이다보니 어디로 튈지 몰라 아슬아슬 조마조마한 것도 은근히 흥미로웠다. 결말 부분이 다소 열린 결말처럼 모호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단편 자체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는, 그야말로 '호러적인' 마무리라서 그래도 괜찮았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단편 <예고화>는 미쓰다 신조표 '[이상한 그림](우케쓰)' 같은 느낌이었다.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이 미래를 예고한다는 몇몇 사례가 흥미로운 동시에 이 단편이 주는 느낌 자체가 굉장히 스산하다고 해야 할까? 한밤중에 누워서 책을 읽다 나도 모르게 등 뒤에 누군가 있는 것만 같은 기묘한 오싹함을 주었다. 확실히 미쓰다 신조가 쓰면 같은 소재라도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구나!! 하고 감탄하며 클라이맥스 즈음에 다다랐는데 단편이 끝났다....?? 진짜 재미있을 뻔 했는데 뭔가 아쉬웠다. 이 소설은 이게 문제였다. 모든 단편이 이야기의 흐름이 가장 높이 다다른 지점, 가장 재미있을 지점에서 마치 쓰다만 것처럼 끝난다.
반면 이 책이 정말 독보적으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포인트가 있다면 역시나 미쓰다 신조 특유의 메타 호러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당연히 픽션이지..' 하고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실도 좀 섞였나..' 하다가 종국에는 '으아아!!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 거야!?' 하게 된다. 특히 이 혼란스러움은 소설 속에 [쾌 : 젓가락 괴담 경연] 이야기가 등장하며 절정에 달했는데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적절히 녹여내며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이 책에서 거의 정점을 찍지 않았나 싶다. 심지어 [우중괴담]의 본문에는 단 한 번도 작가, 즉 '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서 더더욱 혼란스럽고 오싹했다고 한다...
너무 재미있어서 더 아쉬웠던 소설 [우중괴담]. 내가 호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가장 큰 이유로 들었던 '호러니까 다 되지'라는 식의 모호한 결말이 진짜 잘 쓴,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를 아쉬운 이야기로 바꿔놓고 있다. 친구가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며 폼 잡고 잔뜩 뜸을 들인 끝에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이게 진짜 재미있네!? 근데 클라이맥스에서 그대로 끝나버렸다... 친구 붙잡고 뒷이야기도 들려달라고 사정하고 싶은 심정이랄까.(생각해 보면 호러소설 자체가 '으아아아아!!!'하는 클라이맥스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니 호러소설로는 올바른(?) 마무리일지도) 물론 이건 꽉 닫힌 결말을 좋아하는 나의 기호에 의한 감상이고, 이런 류의 마무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한 권이 될 수도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생각보다 오싹했고,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생각보다 아쉬웠다. 그러니 미쓰다 신조겠지.. 하는 생각을 해보며.
♣♣♣
* 발행일 : 2022년 11월 4일
* 페이지 수 : 416쪽
* 분야 : 일본 소설 / 미스터리 소설
* 체감 난이도 : 약간 쉬움
* 특징
1. 허구인지 진짜인지 헷갈리는 이야기
2.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없음
3. 비 오는 날 읽으면 더 무서움
* 추천대상
1. 으스스한 이야기나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
2. 적당히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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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괴담>은 기묘한 경험담을 소재로 한 5편의 이야기가 실린 미스터리 단편 소설집이다. 직접 겪은 것이 아닌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야기들 속에 공통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5개의 단편 모두 잔인하고 끔찍한 이미지가 나오지 않고, 주인공들이 무언가 대단한 일에 휘말리지도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시시한 괴담 모음집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생각할수록 무서웠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그것의 이미지를 자꾸 그려보게 되고 그것의 정체를 추측하기 위해 단서들을 끼워 맞춰보게 되는데,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내용 속에 푹 빠지게 되고 오싹한 한기를 느끼게 된다.
호러 장르에 내공이 상당한 작가다 싶었다. 실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구성이라 현실감이 느껴졌는데 마지막 결말까지 이렇게 끝내버리다니.. 내게는 매우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보통 이런 류의 소설은 쓰다가 만 듯이 각각의 이야기만 들려주고 갑자기 끝내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책은 마지막 작품에서 하나로 꾀어질 수 있도록 스토리를 구성하여 만족스러웠다. 이 글을 읽는 내게도 이 불행이 전해지진 않을까 불안하면서도 상당히 재미있었다고 느끼며 책장을 덮었다.
으스스한 이야기나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 오는 날 이 책 <우중괴담>을 펼쳐 보길 추천하고 싶다. 현실감이 느껴지는 오싹한 재미에 푹 빠져 보길 바란다.
'비오는날 읽지말것' 이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고 호기심에 읽게되었는데, 생각했던것보다 공포는 덜했지만 볼만했어요.
이런 공포 이야기에서 늘 그렇듯이 하지 말란것을 하게됨으로써 문제가 생기는데... 예고화를 제외한 이야기들이 모두 이 스토리를 따라가네요.
그래도 이 이야기에서 특이한점은 하지 말란것을 한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문제가 생기는게 아니라 주변인들이 사건사고를 대신 당하게 된다는게 특이했어요. 예고화는... 주인공이 문제가 생길뻔한걸 빠른 눈치로 피해간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네요.
사실 처음 이야기 빼고는 딱히 '공포'라기보다는 약간 호러가 가미된 추리 미스테리 느낌이긴 했는데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