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중서의 미학사상」으로 석사 학위를, 「중당 문학의 사상적 배경과 그 미의식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문정신으로 동양 예술을 탐하다』 등의 역서가 있고, 논문으로 「유가의 예술정신과 중국문화」, 「송대 이학의 예술미학 사상」, 「한대 경학과 시학: 당송 고문운동 연구를 위한 예비적 고찰」 들이 있으며, 옮긴 논문으로 「중국 예술에 있어서의 의경」(엽랑葉朗)이 있다. 태동고전연구소 한학 연수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로 있으며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중서의 미학사상」으로 석사 학위를, 「중당 문학의 사상적 배경과 그 미의식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문정신으로 동양 예술을 탐하다』 등의 역서가 있고, 논문으로 「유가의 예술정신과 중국문화」, 「송대 이학의 예술미학 사상」, 「한대 경학과 시학: 당송 고문운동 연구를 위한 예비적 고찰」 들이 있으며, 옮긴 논문으로 「중국 예술에 있어서의 의경」(엽랑葉朗)이 있다. 태동고전연구소 한학 연수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로 있으며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동아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사계, 봄을 노래하다》, 《한서 본기》 등 번역서가 있고, 《한서》<오행지>와 관련하여 다수의 논문이 있다.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 연수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국립공주대학교 사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고대 중국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동아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사계, 봄을 노래하다》, 《한서 본기》 등 번역서가 있고, 《한서》<오행지>와 관련하여 다수의 논문이 있다.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 연수 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국립공주대학교 사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고대 중국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