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늘 우리가 예측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것이 신의 섭리라면 차라리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말리라 싶을 정도로, 우린 때때로 끔찍한 일을 겪기도 한다. 살아서 견디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 과연. 근거 없는 희망으로 인해 도리어 더 지치기도 한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속는 셈치고 살다 보면 진짜로 나아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면모를 살피다 보면 동정심이라는 게 절로 든다. 제목의 가장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킬러 안데르스로부터 범죄자의 면모부터 발견하려 드는 건 옳지 않다. 그는 사람을 숱하게 때리기는 했지만 맨정신으로 폭력을 행사할 만큼 매서운 인물이 못 됐다. 비록 그가 행한 건 나쁜 일이 분명했지만, 너무도 쉽게 신에게 감화 받을 정도로 그의 영혼은 여렸다. 성도 이름도 이상한 페르 페르손 또한 제 운명인 불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기울기 시작한 가세는 아버지 대에 이르렀을 때 ‘무일푼’이라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야 말았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유일하게 남은 한 마리의 말이 행할 발길질에 사망하고야 말았다. 한 때 떵떵거리며 부를 과시했던 집안의 지난날을 기억하는 페르로서는 호텔 리셉션리스트라는 지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받아들인 일이었으나 매순간 그는 다른 삶을 꿈꿨다.
기괴한 일은 역시 동시에 발생하기 마련이다. 요한 안데르손이라는 킬러에게서 숙박비를 기대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돈은커녕 혹 목숨을 잃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기 바빴다. 거기에 사이비에 가까운 목사까지 등장했으니, 페르로서는 두 인물 모두 한 시라도 빨리 내쫓고픈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대의 킬러를 상대하는 목사의 태도는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온갖 짜증이 밀려오는 가운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페르는 그들과 동업자가 되어 있었다.
돈을 버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의 사고가 정말이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이들의 수법을 접하면서 들었다. 킬러를 전면에 내세운 일명 ‘흥신소’를 차린 것인데, 씁쓸하게도 의뢰가 줄지었다. 원하는 대로 상대에게 해를 가하고 나면 지갑이 두둑해졌다. 문제가 한 가지 있긴 했다. 왼팔과 오른팔을 구분 못하는 어리숙한 킬러의 태도가 그것이었다. 뭐, 여기까진 괜찮았다. 고객들은 그가 부러뜨린 게 자신이 의뢰한 팔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으니까. 더 큰 문제는 킬러가 보인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였다. 사이비 목사의 말 한 마디에 글쎄 은혜를 입고야 말았다? 더는 피를 보지 않겠다며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하는 킬러로 인해 사업이 위기에 처하고야 말았다. 이미 사람들은 그들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것마냥 맹신하고 있다. 다시 킬러가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도로 알거지가 될 터였다.
다시 한 번 그들은 머리를 굴렸다. 킬러가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은혜에 기대기로 한 것이다. 언론이 스웨덴에서 가장 악독한 인물로 지목한 킬러가 돈을 흩뿌리기 시작하자 세상은 출렁였다. 혹 폭탄이 설치됐을지도 모른다며 벌벌 떨었고, 뒷걸음질 쳤다. 분명 부정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일 거란 세상의 수근거림이 이어졌지만 심증일뿐이었다. 이 대목에서 킬러의 의도와 나머지 두 인물의 의도 사이에 존재하는 삐그덕거림이 독자들에게 유머를 제공한다. 무식해도 너무나 무식한 킬러는 성경에 적힌 문장 하나하나를 고스란히 실천에 옮기려 든다. 오래된 교회에서 사람들은 회개를 위해 연거푸 포도주를 마셔야만 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끊임없이 지갑을 열어 신의 영광에 부응하려 드는 모습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위기도 분명 따랐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신의 가호가 이어졌다. 그들은 무사했으며, 그들을 해하려 들었던 세력에겐 심판이 행해졌다.
처음에는 겉과 속이 달랐다. 겉으로는 도도한 척 굴면서 속으로는 세속적인 셈을 했던 그들이었다. 킬러의 변심 아닌 변심을 나머지 두 인물은 혀끝을 차며 외면했지만 그들 또한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후였다. 그리하여 제목대로, 그들은 킬러 안데르스의 친구 둘로 자리 잡았다. 아동수당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 하였지만, 살다 보니 아이를 한둘 더 낳았을 수도 있다. 언론사를 다루는 것은 물론 각종 SNS 매체에도 익숙한 그들이므로 지금은 또 다른 사업 아이템을 구사해 떼돈을 벌어들였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들이 어떠한 일에 종사하고 있건 상관없다. 그들은 킬러를 필요로 하고, 킬러 또한 그들과 함께 일 때 빛난다는 점에 모두가 눈 떴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착하디착한 그들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요나스 요나손.
종교는 없다. 하지만 창조주는 믿는다. 분명 어딘가에 이 우주를 만든 이가 있을 터다. 우리와 똑같이 불완전한,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위대한 누군가.
열 손가락 깨물어 더 아프고 덜 아픈 손가락은 있어도, 안 아픈 손가락은 없을 터. 그럼에도 신은, 우리를 죽여야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기독교는 신이 인간에게 만물에 대한 지배권을 주었다고 설명하는데.
글쎼다. 신의 입장에서는 개든 돼지든 사람이든, 자신과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열등하지 않을까.
뜬금없이 종교 이야기를 하는 건, 이 책이 비트는 건 종교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기독교. 사람을 셋이나 죽인 남자가 목사를 만나 회개하고 설교에 임하게 되는 건 정말 다행한 이야기인데. 문제는 이 목사.
가업이라는 이유로, 심지어 원하지도 않았는데 목사업을 떠맡은 목사는 그나마도 제대로 되지 않은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내쫓겼다.
자 이렇게 된 것 사회에 대한 복수를 하자는 심정으로, 킬러를 미끼로 불량한 사람을 기껏 등처먹고 지냈는데, 갑자기 킬러가 회개를 해버린다. 그것도 그냥 회개가 아니고 기독교에 귀의하는 형식의 회개. 다만 정말 기독교라기보다는, 자기류에 좀 더 가까운 기독교지만. 일명 사이비인가.
하지만 이 목사. 굴하지 않고, 기독교 형식의 새종교를 창설해 버린다. 그것도 술과 안주를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종교. 헌금도 막대하게 번다. 망해버리지만.
사실 이 외에도 어이없는 사건들이 툭툭 잘 터지고, 사실 목사 인생 자체가 어이없음의 절정체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종교에 대한 비틈.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이라는 게, 사실 제대로 된 믿음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낸 허상. 그것도 제대로 된 허상이 아니라 “(주)기독교” 이런 느낌의 사업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아무래도 기독교의 상업적인 타락은, 우리 문제만도 아닌 모양이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만큼 어렵다더니, 소위 목사들은 돈으로 바늘귀를 엄청 크게 키워놓은 건가. 그것 부러운 능력일지도!
그래도 이 목사와 접수자. 어쩌면 악당보다 더 악당인 둘은 결국은 자신의 행동을 소소한 방법으로 뉘우치고, 베푸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에는 산타클로스로. 준 이상으로 돌려받는 건 포기하지 않지만.
그동안은 굵직굵직한 역사에 대해 썼다면, 이번에는 역사에서 조금 벗어나, 현재에 대해 써본 느낌. 특유의 블랙코미디는 여전했지만, 역사가 아니어서 낯설면서도, 이것도 괜찮다 싶기도 하고.
소악당이 진짜 악당을 등처먹는 걸 구경해도 되고, 이 엉망진창 설교자와 두 주동자가 어떻게 종교를 타락시키는지 구경해도 되고. 하여튼 여러 방면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이러니저러니 따져대고 있지만, 이런 건 그냥 웃으며 즐겨도 괜찮지 않나 싶다. 결론은 즐거운 게 최고. 이렇게 넘어가버릴까.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백세 노인>과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에 이은 세번째 소설.
나의 믿고보는 작가이다.
데뷔한 지 오래 되지 않아 한 작가의 책을 첫작품부터 꾸준히 볼 수 있는 것이 참 좋다.
이번 소설 <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제목이 잘 외워지지 않아 안데스산맥을 연상하며 외웠네.
이 작가의 책을 읽으면 이상하게 내 상식의 지평이 늘어난다는 느낌이 드는데, 뭔가 유식해지는 기분도 들고. <창문으로 도망친 100세 노인>이 특히.
근현대사를 한번 훑어서 그런것인지, 이번에도 그랬다
말하자면 좁고 편협한 생각의 틀이 책을 읽는 동안은 좀 깨어지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지난번 <셈을 할줄~> 에서는 주인공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슬럼가출신이다. 그래 그런지 인종에 대한 편견이 책을 읽는 동안 사라진 것 같았는데,
이번에도 종교에 대해서 그리고 빈민가출신 혹은 살인폭력전과범에 대한 굳어버린 편견이 책을 읽는 동안은 사라지거나 엷어졌다.
물론 그후에는 제자리긴 하지만.
하여간 작가가 아주 상식적인 사람인 것 같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요나스 요나손씨가 찍어내는 (이라고 말하기엔 하나 하나의 퀄리티가 압도적이라 참 미안한 표현이지만서도) 이야기들은 죄다 비슷한 구성에 비슷한 결말인데 어째서 이렇게 매번 매력을 뿜뿜하는 것인지 신비로울 따름.. 누차 말하지만 이 책은 보물섬의 오마쥬인 것이 틀림없는데 처음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라든가 물론 보물섬처럼 죽지는 않지만 안데르스씨와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라든가.. 나만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나 아무튼 덕분에 묘한 향수와 함께 독서를 시작할 수 있었고 마칠 때까지 행복했음.
작가의 전작들을 떠올려며, 콧노래 부르며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읽을 것을 예상했던 책이다.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개성적인 주인공들도 매력적이고, 위트 있는 대사들도 재미를 더한다.
전작들에 비해 무대(?) 범위가 조금 좁아진 것은 다소 아쉽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으나, 이야기 주제와 흐름을 생각하면 굳이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뚜렷한 기승전결과 마지막의 소소한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것도 나름 평범(?)해서 좋았다.
다만...
이야기 전개 과정에 있어서 별 것 없는 인간들이 잔머리를 굴려 사기를 치는 내용인데, 어쩐지 2016년 말 시국과 겹치다 보니 마냥 웃어넘겨 버리질 못했다. 그 때문에 재미를 떠나 이런 이야기가 과연 적절한 것인가 라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였으니.
두 편의 전작들의 인기에 힘입은, 작가의 매력이 넘치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출판사에서 일관성 있게 끌어가는 표지 디자인과 삽화도 분명 한 몫을 하고. 다만 독자에 따라 전작의 큰 스케일을 기대했다면 상당히 아쉬워할 수 있고,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펼쳐지는 의도적인 '사기' 행각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시국만 이렇지 않았다면 간단히 '재밌다'라는 평을 했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