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끼리 밥값을 n분의 1로 내기로 결정한 다음 음식을 정할 때 혼자 그 음식점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주문한다면 그다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둘이 있는데 누가 1000만 원을 들고 와서 둘이서 1시간 동안 의논해서 금액을 어떻게 나눌 건지를 정하는 대신 1시간 동안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험상궂은 얼굴로 당신은 100만 원만 받고 만족하라고 한다면? 그 금액에 동의 못하면 그냥 빈손으로 가자고 있다면
모두 게임이론에서 나오는 딜레마, 혹은 역설이다. 게임이론은 현실의 다양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전략을 짜야 할 지를 연구하는 이론이다. 심리학이기도 하고, 경제학이기도 하고, 행동과학이기도 한 분야다. <뷰티플 마인드>의 주인공이 네시가 이를 통해서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했고, 죄수의 딜레마 같은 것은 대중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하임 샤피라의 이 책 『n분의 1의 함정』(왜 ‘함정’인지는 모르겠다)은 바로 그 다양한 게임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얇지만 다양한 상황에서의 게임이론을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복잡하지 않아 이해가 쉬운 책이다. 앞에서 다양한 학문 분야에 속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 다양한 분야의 책에 소개하고 있어서 적지 않은 내용을 이미 읽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은 아마도 처음인 듯하다.
현실 상황을 단순화하거나, 혹은 역설 형식으로 만들어 놓은 게임이론은, 그래서 현실에서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례로 케인스의 미인대회와 같은 것은 케인스 평전에서도 읽지 못한 것인데(아마도 이런 내용은 좀 사소하다고 봤나?), 미인 대회에서 미인을 고르는 상황이 주식 시장의 투기 심리와 비슷하다고 봤다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게임이론이 정말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앞에서 두 번째로 소개한) 공갈협박범의 역설은 협상의 기술을,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는 협력의 중요성을, 최후 통첩 게임에서는 신뢰하는 법을, 경매에서 승자의 저주가 어떤 것인지를, 전략적 사고가 어떤 이득을 가져오는지를, 카지노와 같은 승산이 낮은 게임에서 돈을 어떻게 거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게임 횟수를 줄이는 것이 정답이다. 말하자면 운은 여러 차례 오지 않으니 말이다) 등등을 게임이론을 통해서 배울 수가 있다.
그런데 여전히 어떤 것이 최적의 전략인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게임도 있다는 게 의아하면서도 놀랍다. 게임이 그런 지경이니 현실은 얼마나 쉽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게임이론에서 최적의 전략이 현실에서도 반드시 최적의 전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역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문서를 작성할 때 마다 두번 세번 씩 퇴고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숫자"를 기반으로 하는 "통계" 부분이다. 숫자 1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머리속에서 지워지고 아무리 다시봐도 오타가 나온다. 신경 쓰인다. 딴에는 노력하지만, 매번 틀릴뿐 아니라 도무지 머리속에서 이해가 안된다. 평범한 1+1 조차 혼란스럽고 어렵기만하다. 처음 게임이론에 대해 접한 것은 대학생때다. 저자가 남의 말을 빌려 정의한대로 "'상호적 의사결정의 수학적 형식화.' p.20"한 게임이론은 도무지 친해질 수 없는 먼나라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성적표 역시.
그렇기에 큰 맘 먹고 책을 샀다. 사람이 게을러지면 늘 그렇듯 쉽고, 익숙하고, 편한 것을 찾게 마련인지라 스스로를 다잡아 이 기회에 '수학적 형식화'에 도전하고자 했다. 결론은 글쎄올시다다. 역시나 익숙하지 않다보니, 아니면 내가 심히 비 논리적이거나 수학적 사고가 부족한가보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수학'과 '숫자'가 싫은 만큼 '딜레마' 상황 역시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달았다. 싫어하는 것의 연합이라니. 더더더더 게임이론이 어렵게 느껴졌다는 사실만 절실히 깨달았다.
너무 겁주는 이야기만 했는지 모르겠지만, 게임이론에 대해서 가장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나 자신이 큰 한계를 지녔을 따름이다. 사회가 커지고 복잡해지는 만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식화하고 단순화해야 한다. 사실 '숫자'만큼 효율적이고 단순하게 (하지만 절대로 단순하지 않게) 보여주는 것이 '게임이론'이 아닐까. "세상사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다. 그리고 이 문장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정말로 이해한 것도 아니(p.122)"라 하니 알다가도 모를게 게임이론이다. "사람들"은 "비이성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p.229)' 그리고 그런 선택이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p.298)"기도 한다고 하니 '게임이론'은 역시 친해지기 어려운 놈이다. 흥미를 가지기에 따라 다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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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만 교수의 정의에 따라 게임이론을 이렇게 부를 수 있다. '상호적 의사결정의 수학적 형식화.' p.20
수학은(p.35) 인간의 본질을 간파하기보다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데 특화된 학문이다. p.36
내시 균형이란 선수들이 자신의 결정에만 관여할 수 있을때, 선수 중 누구도 현재의 전략을 바꿀 필요가 없는 상황(전략을 바꿔봐야 아무 이득도 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p.113
내시 균형이란 선수들이 자신의 결정에만 관여할 수 있을 때, 설사 상대 선수들의 전략을 미리 안다 해도 어느 누구도(p.113) 바꾸려 하지 않을 전략들의 집합이다. p.114
내시 균형이란 상대의 전략에 대응하는 나의 최적 전략과 나의 전략에 대응하는 상대의 최적 전략이 일치하는 경우를 말한다. p.114
내시 균형이 위대한 이유는 세상의 많은 게임이 시작점은 각기 달라도 결국에는 내시 균형점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이말은 어떤 면에서는 내시 균형의 정의 자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시 균형은 일단 도달되면 선수들 사이에 오랫동안 유지되는 일종의 안정적 상황이다. 물론 외부의 개입이 없고 다른 선수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때만 해당한다. p.119
세상사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다. 그리고 이 문장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정말로 이해한 것도 아니다. p.122
전략을 정하기 전에 목표부터 정확히 아는 것이 관건이다. p.122
사람과 국가는 다른 대안을 모두 소진했을 때 비로소 현명하게 행동한다 -에바 에반(이스라엘 정치인) p.165
법은 인간본성에 대한 희망을 상실했을 때 생긴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스페인 철학자) p.173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비이성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최악의 시나리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p.229
처음에는 단순해 보이는 게임도 따지고 보면 복잡하(p.229)게 꼬여 있다. p.230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벤저민 디즈레일리 (영국 정치가) p.249
사실상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 평균 봉급보다 더 버는 노동자는 전체의 30~40%에 불과하다. p.263
상황을 수치를 이용해 합리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면 평균값, 중앙값, 표준편차, 분포형태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p.264
전략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가끔은 결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윈스턴 처칠 p.296
바수에 따르면 선수들은 오히려 지식이 부족할 때 경제적 접근법을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 p.298
내가 '불리한 선수'일 때는 게임 횟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p.308
사람이든 국가든 일단 가진 패를 모두 소진해야 비로소 현명하게 행동한다. 이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p.317
책 목차가 너무 흥미롭게 느껴졌다.
01. 밥값내기의 딜레마
02. 공갈협박범의 역설
03. 최후통첩 게임
04. 게임하는 사람들
05. 중매쟁이 이론
06. 대부의 경고와 죄수의 딜레마
07. 펭귄 수학
08. 하나, 둘, 낙찰입니다
09. 치킨 게임과 쿠바 미사일 위기
10.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11. 확률과의 싸움
12. 공평한 고통 분담
13. 신뢰게임
14. 굳이 도박을 하겠다면
(나만 흥미로운가?)
아무튼 이 책은 얇기도 하고 내용들이 수학적으로 어려운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읽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이와 비슷해 보이는 다른 책("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을 잃고 멘탈이 나갔던 터였는데 (그 책은 두께도 엄청나고 예로 든 내용이 어려워서 저자가 만든 예시들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나름 앞 부분은 잘 따라갔던 것 같지만 중반 이후부터 안드로메다였다.), 이 책은 일단 예시가 쉽기 때문에 이해가 빠르게 될 수 있다. 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제들의 수학적 접근이 궁금하다면 누구나 쉽게 도전 가능할 것 같다.
특정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해야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오직 수학적으로만 접근한 사례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선입견을 깨는 많은 예제들이 있었다. 가장 실생활에 유용해 보였던 부분은 역시 확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확률이라는 것이 어떤 부분을 보여주냐에 따라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왔던 터라 매우 공감이 갔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다시 한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다만, 책에도 기재되어 있지만 인간의 심리적 요인을 배제한 수학적 접근으로 얻은 결과를 모든 사람들이 실제 상황에서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행일지도!) 질투심, 시기심, 불신 등에 의한 안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또는 나의 최고 이익을 포기하면서도 신뢰와 배려를 바탕으로 협동 체제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게임이론. 게임이론. 게임이론.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게임이론에 대해 굉장히 관심 많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뭐 대단한걸 알고 있던 시기도 아닌지라 전공서를 읽기는 꺼려졌는데 국내에 소개된 도서는 폰 노이만의 일대기를 그린 책과 전공서가 전부였다. 하는 수 없이 관심을 꺼두고 지내는 차에 여러 사례를 제시해 게임이론을 설명하는 이 책이 발간된 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질러버렸다. 굉장히 흥미롭다. 게임이론은 여러가지 현실적 조건을 거세하고 수학적 모델을 이용해 가장 최적이 되는 지점을 찾는 이론이다. 이론을 통해 이끌어낸 결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당사자가 된다면? 이라고 생각해보니 솔직히 그런 결과를 이끌어낼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또한 현실 세계에는 사람의 심리라는 변수를 포함해 많은 것들이 결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수학적 모델을 통해 이끌어낸 결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