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조예은 저
최근 책 읽는 흐름을 잃어서 좀 가볍게 시작할까하고 펼쳐 들었는데
글과 만화가 좋아서 원작부터 읽을 걸 싶었다
동사의 올바른 활용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어했는데
동사들이 시처럼 살아있는 느낌이다.
분명 아는 단어들인데도 새롭게 다가오고, 그림 여백마저 운치로 다가왔다
내일부터는 글 [동사의 맛]을 읽는 걸로... 만화에서는 여성 주인공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원작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기대
눌러보다: 잘못을 탓하지 않고 너그럽게 보다. 그대로 계속해서 보다
P.43 사전을 보면 모든 낱말이 분명한 제 뜻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다른 낱말에 기대고 있을 뿐 그 자체로는 이도 저도 아니다. 낱말들이 서로를 눌러보고 눌러들어 주지 않는다면 어떤 낱말도 제 뜻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P. 55 꿈꾸다는 붙여 쓰고 꿈 깨다는 띄어 쓴다
P. 92 이삿짐은 나르고 비행기는 난다
#만화동사의맛 #유유 #김영화 #김정선
만화여서 좀 쉽게 보았다. <동사의 맛>에서 느꼈던 바와 별다른 차이가 없으리라 짐작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속내를 알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만화 동사의 맛>도 그랬다. 책장을 넘기면서 쌓이는 무게감과 감정이 참으로 오묘했다. 매일 사용하는 한글인데 제대로 사용하고 있었는지 부끄러운 마음에 종이를 쥔 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만지작거리기 일쑤였다. 남자와 여자의 상황에 대한 묘사도 덤덤하지만 덤덤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가 먹지를 손에 쥐고 내려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들고 있기는 불편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림이 참으로 많은 걸 표현한다는 생각에 존경심도 들었다.
'빨다/빨다리다' 빨다리다는 말을 아는가? '빨다'와 '다리다'를 합친 말인데 사전에 있는 우리말이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쓴 글 속에서 보았다면 신조어라고 생각했을거다. 수능시험에 나왔어도 아마 이런 걸 시험에 출제했다고 비웃었을 법한 단어다. 가까이에 있는 말조차 이렇게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다른 말은 어떨까?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치다,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하다'라는 뜻의 단어를 혹시 아는가? '해찰하다/해살하다' 중 어느 것일 것 같은가?<동사의 맛>을 읽고도 새롭게 여겼던 단어를 여기서 또 처음 만나는 냥 기억한다. 모국어라도 잘 알아야 하는데 남의 나라말에 우선순위를 빼앗긴 모양새라 심히 불편하고 씁쓸하다.
책을 좀 읽어 본 이라면 <만화 동사의 맛>을 권한다. 책을 존재하게 하는 글자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솔직히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처음엔 동사들의 쓰임과 원래 의미에 집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 안에 들어있는 서사에 집중하게 됐다. 소설을 읽었는데 동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느낌. 고등학교 국어 문법시간에 문제풀며 알게됐던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이렇게 재밌는 만화로 알게되다니, 훨씬 더 기억에 남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편으로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모르고 쓰는 단어들이 얼마나 많았고 잘못된 쓰임인지 모른 채 살았다는게 부끄러웠다. 작은 책 안에 한국어 모든 동사를 넣을 수는 없을테지만 김정선 작가님이 이와 비슷한 책을 더 많이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기다려지는 관심작가가 또 한명 늘었다.
동사의 순우리말은 '움직씨'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의 씨앗이니 '동사'라고 이르는 것보다 쏙쏙 이해가 되는 말이다. 덧붙여서 형용사는 '모양씨', 명사는 '이름씨, 그리고 조사는 '도움씨'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순우리말'을 즐겨쓰는 것이 낫다. 물론 우리말로 나타낼 수 없거나 곤란한 것까지 순우리말로 고집하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똑같이 바깥에서 들온말이지만 외래어가 외국어와 달리 우리말인 것처럼 우리말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 들여온 '한자어'와 '콩글리쉬'도 우리말이 되었고, 또 되어가는 중이다. 이는 세계화에 걸맞는 자연스런 현상이며 우리말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외국어 쓰임'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말은 속된말로 낮잡아보고, 들온말은 품위와 교양 있는 말처럼 드높이는 효과 말이다. 이를 테면, 똥오줌보다는 대소변이라고 표현하고, 단칸방보다는 원룸으로 즐겨 표현한다. 심지어 옥상을 루프탑이라고 바꿔 표현하는 세태는 달갑지 않다. 지붕윗집, 하늘아랫집이라고 하면 더욱 맛깔난다고 느끼는 건 나뿐이련가.
암튼, 우리말의 쓰임새를 잘 살려준 만화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다. 원작은 <동사의 맛>이라고 한다. 내용도 원작의 맛을 충분히 살렸다고 한다. 그래도 '만화'와 '소설'은 분명 다른 맛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에서는 글쓴이 김정선을 주인공으로 하여 '남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갔는데, 만화에서는 화자인 주인공이 '여자'로 바뀌었단다. 그래서 책의 전체적인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만화책의 저자와 소설책의 글쓴이가 똑같이 말한 대목도 눈길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조만간 원작 소설도 읽어볼 참이다. 만화에는 미처 담지 못한 더 많은 줄거리와 '움직씨'가 담겨 있다고 하니 단단히 벼르고 있을 테다.
만화의 줄거리는 화자인 여자와 이야기속 주인공인 남자가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나 심상찮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여자의 직업은 '교정'을 업으로 삼았기에 문장을 더욱 매끄럽게 다듬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는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동사(움직씨)'만 골라서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우연히 만나 일상에서는 흔히 일어날 수 없는 '낱말 뜻풀이'를 하는 의기투합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억지스러움(?)이 이 책의 백미다. 움직씨만 골라서 뜻풀이를 하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우리말 움직씨를 새삼스레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획'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우리말의 뜻과 더불어 다양한 '활용법'을 익히며 우리말 표현에 더욱 능숙해지게 되는 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미난 만화를 읽으며 우리말 지식도 풍부하게 해주니 <교양만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외국어를 배울 때에도 '동사'와 '활용'만 집중적으로 익혀도 기본적인 대화뿐 아니라 일상 회화도 가능해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사전>의 뒷편에 '규칙동사'와 '불규칙동사'의 기본형과 활용법이 나와 있는 걸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비단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말이다. 하물며 우리말도 '움직씨'만 제대로 익혀도 누구나 시인이 되고 수려한 문장을 매끄럽게 구사하는 교양인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물론, 배운다고 모두 써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읽고 들을 때 머릿속으로는 이해를 해도 막상 말로 써먹고 글로 써내려가려고 해도 잘 되지 않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를 언어학자들은 '이해어휘'와 '사용어휘'라고 표현하며, "100개의 어휘 가운데 80개를 이해했어도 실제로 즐겨 쓰는 어휘는 고작해야 10~20개 남짓이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배우고 익힌 다음에 실제로 써보는 걸 즐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나도 논술을 가르치면서 말로, 글로 다양한 어휘를 자주 쓴다고 자부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뜻을 알게된 움직씨가 2~30%는 되었다. 그래서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은 것이다. 만화에 담지 못한 움직씨가 소설에는 더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 한국어는 세계인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말글이 되었다. 드라마나 음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멋'에 흠뻑 빠져서 제대로 '한류의 맛'을 즐기고 싶어하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말의 멋과 맛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우리말책'이 나와서 반갑기 그지 없다. 더불어서 독자인 나도 우리말을 새롭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우리말의 뜻풀이뿐 아니라 다채로운 쓰임새까지 함께 익힐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