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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진 “콘텐츠를 만드는 건, 내 관점을 갖는 일이에요”
2020년 09월 16일
잡지를 보지 않는다면, 결코 만날 수 없다
<아무튼, 잡지>를 읽고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20세기 대표적인 시사 화보 잡지 '라이프(LIFE)'가 경영 악화로 결국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폐간되면서 온라인 미디어로 전환하여 명맥을 유지해나가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그야말로 현실이 되었다. 인터넷과 온라인 미디어 그리고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일정한 이름을 가지고 호를 거듭하며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출판물'이라는 잡지의 사전적 의미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할 만큼 이미 잡지는 극심한 위기의 시대를 지나고 있으니 말이다.
20세기말까지만 해도 다양한 잡지들이 당당하게 서점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가운데 여러 언론사에서 발행한 시사지(時事誌)와 여성지(女性誌)는 각각 이발소와 미용실을 찾은 손님들의 대기시간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았다. 학창시절 「키키」, 「쎄씨」 등 패션 잡지, 「아이큐점프」, 「소년챔프」 등 만화 잡지, 농구 잡지 「루키」는 나와 친구들의 쉬는 시간(은 물론 수업 시간)을 넘어 사춘기까지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동행해준 기특한 녀석들이었던 것이다.
<amtn, MAGAZINE(암튼, 잡지)>의 저자 역시 많은 잡지를 보면서 동시대를 살아왔는데,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화보와 광고, 인터뷰와 칼럼, 뷰티 팁과 전시 정보 같은 것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한 권의 잡지 같은 사람'으로 부른다. (이러한 잡다함과 산만함을 포함하여) 그가 잡지를 통해 떠올린 감각과 생각, 그것들에 관한 여러 경험들과 함께 수년간 잡지를 만드는 최전선에서의 고군분투기가 책속에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잡지의 훌륭한 점이다. 보는 이를 가르치려 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태도로 슬쩍 말을 건넬 뿐이다. '이거 어때?' (13쪽)
왜 잡지를 사거나 읽을까? 대개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여유로운 느낌적인 느낌'을 원해서라는 저자의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날 도서관 연속간행물실에서 「프랭키」, 「월간 디자인」 등 몇 권의 잡지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가는 KTX 안에서 「KTX 매거진」을 비롯한 여행 잡지를, 빵집에서는 빵을 먹으면서 빵 잡지를 보는 식으로 여유로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언제 어떻게 잡지를 보고 있는지 인스타그램을 검색해본다. 잡지를 굳이 '사서' 보지는 않더라도 '보는' 사람은 많은 듯하지만, 잡지는 현재 자신의 여우롭고 편안한 상태를 드러내는 아이템으로서 정말 여유로울 때 뭔가를 먹고 마신 뒤에야 펼쳐보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잡지로 인테리어와 수납의 기술을 배우고, 일본 잡지를 사고 보기 위해 일본어 공부까지 한 저자의 잡지에 대한 진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무엇보다 잡지와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통해 여행과 일상 그리고 일과 삶을 바라보는 그만의 통찰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짧았던 일본 여행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오즈」 매거진의 도쿄 '츄오선 산보' 특집과, 「&프리미엄」의 '여행을 하고 싶어진다' 특집을 사오면서 "여행에 관한 잡지를 본다는 건, 다음의 여행을 다시 한 번 기약한다는 뜻(98쪽)"일거라 생각한다. 일본의 한 서점에서 즐비하게 놓인 시바견 전문 잡지를 포함한 별별 잡지들을 둘러보며 한국 잡지 시장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이밖에 그동안 미처 몰랐던 '인터뷰 페이'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며 잡지 만드는 일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선택의 폭이 넓다는 건 생각보다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이것과 저것만 아는 사람과, 이것과 저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것들도 많다는 걸 아는 사람의 시야는 다를 수밖에 없다.(중략) '가성비'의 세계에서 벗어나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 무언가를 보고, 사고, 해보며, 우리는 조금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104쪽)"
잡지의 미래는 물론, 현재마저도 불확실한 요즘 같은 시대에 <아무튼, 잡지>는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잡지만이 가진 매력과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쓰여진 책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잡지가 나아가야할 길은 '잡지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잡지를 만드는 사람과 잡지를 (되도록 사서) 보는 사람 모두에게 책속에 인용된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시녀 이야기』의 한 구절이 그 실마리를 전해주리라 기대한다.
"(···) 잡지 속에 들어 있던 건 약속이었다. 잡지 기사들은 변화를 다루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제안했다. (···) 그들은 모험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모험을, 패션이 하나 있으면 또 다른 패션을, 하나의 개선이 또 다른 개선을 넌지시 암시했고, 하나가 나아지면 다른 것도 낫게 만들라고 했다. (···) 잡지들이 진짜로 약속하는 바는 불멸이었다."(57쪽)
잡지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었던 게 아닌데도,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잡지들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자와 같은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90년대 키드'이기 때문일 터. 부모님이 사주신 만화 잡지 <나나>로 시작해 <윙크>, 패션 잡지 <쎄씨>, <에꼴>, <유행통신>, 일본 잡지 <POPEYE>, <BRUTUS>등으로 관심 범위를 넓혔다는 저자처럼, 나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나나>, <파티> 같은 읽었고, <유행통신>, <신디 더 퍼키> 같은 패션 잡지를 열독했으며, 20대 이후부터는 일본의 패션 잡지, 만화 잡지, 정보지, 생활지, 문예지 등등을 두루두루 읽었기에 저자의 이력이 무척 반가웠다.
잡지를 좋아해서 각고의 노력 끝에 동경하던 잡지 기자가 되었으나,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다니던 잡지사가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현재는 프리랜서 기획자, 작가로 지내게 된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모 뮤지션의 SNS에서 모 음악 프로그램에서 노래 부를 날을 꿈꾸며 뮤지션이 되었는데, 정작 뮤지션이 되고 나니 그 음악 프로그램이 폐지되어 아쉬웠다는 글을 읽은 게 생각났다.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미래가 어른이 되어서 펼쳐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잡지나 잡지 기자처럼 어떤 매체나 직업이 아예 사라지거나 그 의미나 역할이 달라지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저자의 경우에는 잡지라는 매체의 단발성, 휘발성이 좋아서 잡지 기자가 되었는데, 잡지보다 더 단발성, 휘발성을 가진 SNS가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잡지가 느린 매체, 장기적, 영구적으로 정보를 전달, 보관하는 매체로 역할이 바뀌는 것을 보며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사를 쓰면서 느낀 한계와 환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과 후, 여성 연예인, 특히 걸그룹 아이돌에 대한 관점이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대한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대상에게 페이를 지급하지 않는 관행에 대한 지적도 좋았고, 회사를 나와 저자가 직접 독립출판물로 잡지를 출간하면서 겪은 고충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아무튼, 잡지 - 황효진
<아무튼, 잡지>에 대해 리뷰를 쓰기 전에 아무래도 시리즈인 '아무튼'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무튼'은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에 대해 쓴 에세이 시리즈로,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라는 각기 다른 세 출판사가 한 시리즈를 동시에 내는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했다. 기존 출판업계에서는 드문 형태라 눈길을 끌었고, 거기다 휴대하기 간편한 사이즈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결론은, 업계에서는 꽤 유명했던 시리즈라는 거다.
이렇게 유명했던 시리즈인데도, 내게는 그 많은 주제들 중 어느 것 하나 깊게 관심이 가는 것이 없었다. 주제가 좋으면 저자가 안 끌리거나, 주제 자체가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거나. 그런데 이번에 '잡지'에 대해 앞의 이유로 뒤늦은 관심을 가지게 된 데다, <아무튼, 잡지>를 먼저 읽은 동료가 괜찮았다고 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나서 빌려 읽게 되었다.
손에 들어오는 작은 판형이라 그런지 '이걸 다 언제 읽는단 말이냐' 하고 미리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고, 저자가 온라인매거진 '텐아시아'와 '아이즈'에서 일했던 짬 때문인지 술술 읽혔다. 저자와 내가 3살 차이라 약간의 갭은 있지만, 대체로 책 속에서 언급하는 잡지들을 접해봐서 공감하는 일도 많았다.
특히 '나나와 윙크와 언플러그드 보이', '쎄씨, 에꼴, 유행통신'.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렸을 적 '밍크'라는 만화잡지를 사서 본 적도 있었고(윙크와 나나도), 천계영의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도 열심히 봤었다. 10대 타깃의 잡지들도 종종 부록에 혹해서 읽었고, 아이돌 잡지를 사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겹치지 않는 친구랑 페이지를 찢어 바꿔보는 것도 물론 해봤다.
저자가 풀어놓는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 덕분에 잡지에 얽힌 수많은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잠자기 전 잠깐 읽으려 했는데, 재밌어서 새벽 3시까지 읽어버림). 여기에 화려한 잡지의 이면(인터뷰 비용, 안일한 콘텐츠들)을 들려주고, 내가 모르는 새로운 잡지들도 많이 알 수 있어서 좋았다(일본잡지들). 개인적으로는 얇지만, 글도 깔끔하고, 내용도 알차서 잘 읽은 책이었다.
공감했던 문장 중 하나는, 이것.
"관심사도 다양하고 특기도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각기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결국 그것이 한 권의 잡지로 엮인다는 부분 역시 견딜 수 없이 근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