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정의'라는 성격을 띄고 있다.
때로는 상냥한 구석이 있지만, 정의 앞에서는 그 무엇도 거스를 수 없다는 노리코.
그녀의 정의성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그저 그가 정의로운지, 불의적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살다 보면 한 번씩은 들어보는, '사람이 융통성 있게 살아야지. 이런 건 봐줄 만하지.'라는 말들은 글의 주역인 노리코 앞에서는 허용치 않는 말이다. 심지어 상대가 그의 딸이더라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숨막히는 감정을 느꼈다. 사회를 살아가기에 앞서 정의라는 것과 기본적인 사회 규범은 당연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한 사람의 평생 일자리를 빼앗고, 한 사람에게 잊지 못할 수치심을 주면서까지 행해져야 하는 것일까?
노리코는 그저 정의를 휘두를 뿐, 상처받고 도태되는 건 언제나 상대방이다. 또한 작 중 주변 인물들의 반응들을 보면서 놀라웠던 건, 정의로운 만큼 그 사람이 완벽하고 지고한 사람이듯이 대하는 사람들이었다. 분명 삶속에서 정의도 중요하기야 하지만, 그게 다른 감정들과 생각들까지 완전히 배제시켜버릴 정도로 우선적인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결국 정의를 휘두르던 노리코에게 각자 같은 감정을 느끼던 친구들. 무엇이 문제냐는 노리코. 과연 누가 정상적인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단죄하고 나면 뇌의 쾌락을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하여 마약을 했을 때와 비슷한 쾌감을 얻는다고 한다. 노리코의 경우 그런 경향이 일반인들보다 몇 배는 강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얼마나 지적하기 편한 시대인가. 실시간으로 지적하고 훈수 두고 함께 분개하거나 싸우는 동안 실로 마약에 취한 듯 강도가 세지고 광기마저 어리는, 프로 불편러 유전자가 강화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만 해도, 사실 '정의의 몬스터' 노리코를 살해한 네 명의 사연들에는 지적받을 만한 잘못들이 하나씩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노리코가 들이미는 절대정의의 잣대에 질린 나머지 이들의 잘못이 잘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에서 매장당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누그러뜨려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각각의 이야기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다면? 온갖 설왕설래로 뜨겁게 불판이 달궈지지 않을까?
요컨대 개개인의 어지럽고 미묘한 상황 속에서 보자면 무턱대고 비난하긴 힘든, 때로는 동정이 더 갈 법한 상황이라도 익명의 다수 앞에 길어야 스크롤 몇 번이면 끝날 이야기로 요약되어 전달되면, 우리 모두가 단죄의 쾌감에 취한 몬스터 노리코 같은 상태로 무서운 잣대를 들이밀게 되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특히 그것이 동조를 얻는 등 자기 말이 '먹히는' 경험을 하면 할수록 더더욱. 나 역시 예외가 아니며, 실제로 처음 댓글을 달 때(잘 기억은 안 나지만)를 생각해보면 요즘은 더 즉각적으로, 그리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게 된 느낌이 든다. 이것도 그놈의 알고리즘의 영향일지도...
엄청 잘 읽히는 책임에도 오래 걸린 건 화딱지 나는 게 싫어서 한참씩 밀어둬야 했기 때문. 이야미스 장르라는 이름이 전혀 무색하지 않았다. 그냥 참고 한번에 읽으면 금방이긴 한데 나는 드라마 볼 때도 그렇고 이런 데 스트레스 내성이 정말 약한 듯. 이건 그만큼 참을성이나 인내심 등등이 부족하다는 뜻임을 알기에 억지로라도 참아봐야 한다 생각은 하면서도 잘 안된다.
정의를 신봉하고 실천하는 자신에게 취한 노리코와 그녀의 올가미에 걸려 당장이라도 질식할 지경인 네 여자들. 이들의 이야기와 맞먹을 정도로 마지막 리츠코의 이야기 몇 페이지가 강렬했고 정말 잘 짜인 캐릭터라 느꼈다. <암흑여자>는 영화로 봤고, 그 외에 평이 아주아주 좋은 작품이 보이거든 절대 끊어 읽지 않기로 각오하고 한 번 더 도전해볼까 생각할 정도로.
언제나 완벽한 정의의 히어로에게 인간의 나약함 같은 건 통하지 않았다. 노리코는 그렇게 유미코의 삶을 정의의 이름으로 공격해 가차없이 파괴할 것이다.
그러니까 정의로운 싸이코패스라는 설정이고 그게 전부다. 하지만 쉽게쉽게 잘 읽힌다. 따지고보면 몇가지 아귀가 맞지 않는 또는 무리한 설정이나 오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애시당초 그런 식으로 읽을 필요를 못 느끼겠끔 쓰여진 소설이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줄거리를 따라가면 소소한 반전도 느낄 수 있고 뭐 그렇다. 딱 드라마화하기 좋은 방식으로 쓰여진 소설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아키요시 리카코라는 작가님이 쓰신 작품입니다.
그동안 저는 아키요시 리카코님의 책은 <작열>과 <암흑여자> 라는 제목의 책 두권을 이미 읽었던 작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책도 너무 기대를 했었습니다.
역시나 이번 작품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사건에 얽힌 여자들(동창들)의 심리묘사가 너무나 탁월해서 읽는내내 빠져들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고도의 심리스릴러 같은 느낌의 작품이었어요.
이런쪽 장르 좋아하시는 분들한테는 정말 딱일 것 같은 소설입니다. 완전 추천해요~!
정의롭게 살고 싶은 게 사람들의 마음이지만 실생활에서 실천하고 살기는 참 힘들다...
그래서 아무도 나서지 않은 불의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위대해 보인다...
이소설의 주인공인 노리코는 이런 정의를 실천하며 희열을 느끼는 여성...
4명의 고교 친구들은 뜻하지 않게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나서준 노리코를 존경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너무나 큰 잣대를 대고 절대정의를 주장하는 노리코의 모습을 발견할땐 무서움과 불만도 가득이지만 말은 못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뿔뿔히 흩어졌던 친구들은 다시 의기투합해 동창회 모임을 갖고 오랜만에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 한순간에 노리코를 죽이고 만다...
왜 죽일수 밖에 없었는지 4명의 친구들의 심리묘사와 몰입감이 좋고 마지막에 반전도 있어
금방 읽어버린 소설이다...
무조건 정의라는 이름으로 남을 배려하지 않고 휘두르는 건 또 다른 폭력이라는 걸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따뜻한 융통성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매사 올바르게 행동하며 학창 시절 정의의 사도로 불리던 노리코. 그런 그녀가 자신의 동창생 친구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지 딱 5년이 되던 날에 맞추어, 그 네 명의 친구들 앞으로 죽은 노리코의 이름으로 보낸 의문의 초대장이 도착한다. 노리코는 왜 친구들에게 살해당했을까? 그리고 그녀가 보낸 초대장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소감을 가장한 혹평>
1. 절대라는 단어가 가진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작품.
2. 만약 내 주변에 노리코 같은 인물이 있다면 나 같아도 죽이고 싶을 것 같다.
3. 다만 노리코가 워낙 개성적인 캐릭터라 인물 설명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한두 편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그걸 굳이 네 편으로 늘려놨으니 실속은 없고 지루할 수밖에.
→ 화자로 등장하는 친구의 수를 줄이던가, 아니면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구성에 변화를 주었어야 했지 않았을까?
4. 너무 어이없는 결말에 헛웃음만 나왔다. 이런 걸 보기 위해 끝까지 읽은 건 아니었는데.
5. 반전마저도 기대 이하.
한줄평:읽는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데는 최고였을지 몰라도, 미스터리 소설로서는 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