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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

윤보인 | 나무옆의자 | 2020년 5월 11일 리뷰 총점 8.4 (5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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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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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밤의 고아』 윤보인 두 번째 장편소설!
서울에서 뉴욕으로, 재령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
쌍둥이 오빠의 죽음에서 비롯된 어떤 운명을 추적하는 이야기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소설집 『뱀』(2011)과 장편소설 『밤의 고아』(2014)를 펴낸 윤보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재령』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과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욕망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처연하게 그려온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보다 전통적인 문법으로 사람의 운명이라는 헤아리기 어려운 주제를 탐사하는데, 그 바탕에는 사주 명리학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인연의 부딪힘과 헤어짐, 죽음과 삶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며 예측할 수 없음이 곧 삶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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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소한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입춘 눈 속의 봄은 멀지 않았으니
망종 사랑을 갈구하며 찾아다니는
처서 인생이 풀리지 않을 때
우수 밤에 태어난 사람, 그 인연
소설 쓸쓸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대한 굳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일이 없기를
백로 오랜 시간을 뉴욕에서 살다

작가의 말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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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윤보인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뱀』과 장편소설 『밤의 고아』가 있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뱀』과 장편소설 『밤의 고아』가 있다.

출판사 리뷰

명리. 사람의 운명이지.
그 인연, 참 짧다. 그치?

기억할까. 내가 그를 찾아 헤매던 그 순간을.

서울에서 뉴욕으로, 재령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
쌍둥이 오빠의 죽음에서 비롯된 어떤 운명을 추적하는 이야기

2007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소설집 『뱀』(2011)과 장편소설 『밤의 고아』(2014)를 펴낸 윤보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재령』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과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욕망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처연하게 그려온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보다 전통적인 문법으로 사람의 운명이라는 헤아리기 어려운 주제를 탐사하는데, 그 바탕에는 사주 명리학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인연의 부딪힘과 헤어짐, 죽음과 삶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며 예측할 수 없음이 곧 삶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화자는 “이 글은 서울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재령으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사주팔자, 그 어떤 운명에 대해 추적하는 글이 될 것이다.”고 밝힌다. 화자가 처음으로 운명에 관심을 갖는 계기는 쌍둥이 오빠의 죽음이다. 같은 날, 단지 7분 차이로 태어났을 뿐인데 한 사람은 십대 후반에 사고로 죽고 한 사람은 살아남아서 죽은 자를 끝없이 추억해야 하는 삶의 비의에 눈뜨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 연락이 끊어진 상태여서 ‘나’는 오빠의 죽음을 뉴욕에 있는 큰아버지에게 알리는데, 그는 조카의 장례를 치른 후 나에게 뉴욕으로 올 것을 권한다. 의지할 곳 없는 나는 바다를 건너기로 결심하고 뉴욕 큰아버지 집에서 살게 된다. 그로부터 큰아버지는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품 있고 그릇이 큰 어른이었다. 고향인 황해도 재령을 그리워하고 [황성옛터]를 즐겨 듣는 그는 유명한 역술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명리학을 공부했지만 다른 사람의 운명에 대해 섣불리 말하는 법이 없었다.

큰아버지의 품성. 내가 그의 집에 얹혀 있어도 그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무례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에겐 어떤 통찰, 사람을 헤아리는 면이 있었고 너그러움과 꼿꼿함, 자존심 같은 게 배어 있었다. (중략) 나는 그에게서 인생을 배웠고 삶의 깊이를 배운 셈이었다. (204쪽)

큰아버지는 재령으로 가려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나에게 훗날 “이쪽 공부”를 하면 삶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사랑하게 될 것이라 예감하지 못했지만 결국 사랑하게 된 운명

큰아버지 가족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청년 박재령 또한 나의 삶을 뒤흔든 한 사람이다. 큰어머니가 운영하는 푸드 코트에서 일하며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그는 큰아버지에게 역학을 배웠고 재령이라는 이름도 큰아버지가 새로 지어준 것이었다. 처음 만난 날 나에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물어보고는 “그대여 간난사를 말하지 마오. 눈 속의 봄은 멀지 않았으니.”라는 시를 적어준 사람. 뉴욕에 와서 고독하고 쓸쓸하던 나는 박재령과 짧은 대화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면서 큰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고 있음을 느낀다.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고요한 호수 같은 그에게 나는 조금씩 다가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의 옆에 명진애가 있기 때문이다. 명진애는 박재령에게 적극적이다 못해 집착적인 애정을 표현하는데 그 방식이 자못 위협적이어서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런 명진애를 박재령은 늘 아무 반응 없이 피하기만 하는데, 상대가 자기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명진애는 박재령에게 횡포를 부리고 떠나버린다.

명진애가 사라진 후 박재령이 대학에 합격해 보스턴으로 가자 나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낀다. 박재령에 대한 사랑이 소리 없이 깊어질 때 뜻밖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가 명진애와 결혼한다는 것이다.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 어떤 연유로 다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차라리 박재령이 명진애를 사랑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얼마 후 그들이 쌍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명진애는 큰아버지 집을 찾아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니, 돌연 쌍둥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가버린다.

나는 위암 선고를 받은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리고 돌아가신 후 장례식을 치르면서 박재령과 다시 만난다. 무언가 체념한 듯한 그는 “나는 그 애를 사랑하지 않아.”라며 엉켜버린 자신의 삶에 대해 토로하고는 이렇게 당부한다. “너는 자유롭게 살아.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아. 삶을 살아. 죽음 속으로 걸어가지 마.”

그 후 나는 박재령을 만나기 위해 보스턴으로 간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멀리서 그를 한 번 더 바라보고 싶어서다. 나는 사랑이라는 말 같은 것은 언급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를 대한다. 그것이 최선이고 그에 대한 예의이기에. 타인의 삶을 파괴하지 않는 것, 어느 순간 작별한다 할지라도 그를 부서지게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을 행하고 싶었기에.

사랑하게 될 것이라 예감하지 못했지만 결국 사랑하게 된 사람. 누군가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추위에 떠는 사람. 나는 박재령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운명이라 생각한다.

손끝에 인연이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바라보는 눈 속에 인연이 있는가. 당신을 부르는 나의 음성에 인연이 있는가. 후려치듯 불어오는 바람에, 그 속에 인연이 있는가. 아마도 당신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눈물 속에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인연이 깊어지면 눈물이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 속에 비밀이 있는 것 같다. (224쪽)

사주 명리, 겸허하게 삶과 인간을 이해하는 원리
사무치게 다가온 인연들과 헤아릴 수 없는 삶의 비의에 대하여

나는 열아홉 어린 나이에 바다를 건너 뉴욕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인생의 여러 일들을 겪으며 운명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어머니는 어찌하여 그토록 모진 고생을 감내하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을까. 아버지는 어찌하여 자수성가한 형들과 달리 그토록 정처 없이 가난하게 떠돌아야 했을까. 어떤 경우 한평생 부를 취하며 어떤 경우에 가난을 면치 못하는가. 만약 처음부터 그런 게 정해져 있는 거라면, 좀 잔인한 일이 아닌가. 나의 오빠는 어찌하여 다른 젊은이들처럼 이 도시를 멋지게 걸어 다니지 못하는가. 왜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모든 것이 운명이고 팔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명진애는 어찌하여 박재령을 그토록 원했을까. 박재령은 왜 그토록 악연을 피하려 했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했을까. 사촌 언니는 왜 한눈에도 인연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여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더니 몇 달 만에 이혼하는가. 나는 어찌하여 박재령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큰아버지가 당부한 것처럼 나는 명리를 공부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의문에 답할 수는 없다. 소설에는 주요 인물들의 사주 명식과 그 풀이가 나오는데 그것으로 한 사람의 성향과 인생 궤적을 조금 읽을 수 있을 뿐 운명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의 무수한 언덕과 골짜기를 통과하며 삶과 죽음의 엇갈림, 상실과 아픔을 경험하다 보면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있으며, 그런 순간들 속에서도 자신의 선택과 의지가 삶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동기임을 깨닫게 된다.

명리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학문이 아니며 많은 인내와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인생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그것을 안쓰럽게 여기는 넓은 마음가짐과 냉정한 자기 판단, 통찰력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운명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산과 펼쳐진 길과 흙과 물과 빛과 어둠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07쪽)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그 순환 속에서 인간은 살아간다. 그 속에 비의가 있고 눈물이 있고 운명이 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235쪽)

작가는 명리가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해 및 측은지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한 인식이 부재할 때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겸허한 원리는 자칫 혹세무민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소설 곳곳에 박힌 아름다운 문장들은 가슴이 아릴 정도로 생의 비밀과 본질을 꿰뚫어본다. 사무치게 다가온 인연들을 더듬는 작가의 진중하고 사려 깊은 시선은 조금 쓸쓸하면서도 퍽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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