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다 비범한 일을 하고자 한다. 즉 호흡기바이러스 계열 전체를 퇴치할 기회를 찾으려 하고 있다. 이는 이번 팬데믹과 같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종말, 더 나아가 인플루엔자의 종말을 의미한다. 매년 인플루엔자 하나만으로 발생하는 환자가 10억 명에 이르고, 그중 300만~500만 명은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의 중증으로 발전하며, 30만 명이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일반적인 감기 증상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까지 더한다면 호흡기바이러스 퇴치의 혜택은 엄청날 것이다.
---「들어가며」중에서
초과 사망률이 가장 낮은(0에 가깝거나 음수인) 국가들(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 뉴질랜드, 한국) 대부분은 팬데믹 초기에 세 가지 일을 잘 해냈다.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속한 검사를 진행했고, 양성으로 진단받은 사람과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을 격리했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왔을 수 있는 사례를 찾아 추적하고, 관리하는 계획을 실행했다. (중략)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실패는 미국인들이 적절한 검사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충분한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이러스를 보유한 사람이 7일 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이나 주어지는 셈이다. (중략) 제1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세계는 팬데믹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도구나 팬데믹에 대한 적절한 대비에 전혀 투자하고 있지 않다. 그런 대비를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
---「제1장 우리가 코로나에서 배운 것들」중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필요한 모든 분야의 상근 전문가들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고, 공공기관으로서의 신뢰와 권한을 갖고 있으며, 팬데믹 예방이라는 소관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동시에 자금이 넉넉한 세계적 조직이다. 나는 그것을 GERM(Global Epidemic Response and Mobilization, 글로벌전염병대응·동원)팀(이하 GERM)이라고 부른다. (중략) 그들은 넉넉한 급여를 받고, 정기적으로 훈련을 받으며, 다음 팬데믹 위협에 조직적 대응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GERM은 팬데믹을 선언할 권한이 있어야 하며 국가 정부및 세계은행 World Bank 과의 협력으로 대응을 위한 자금을 빠르게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대략 계산한 것에 따르면 GERM에는 3,000명의 정규 직원이 필요하다. 전염병학, 유전학, 약물 및 백신 개발, 데이터 시스템, 외교, 신속 대응, 물류, 컴퓨터 모델링, 커뮤니케이션 등 전 분야를 총망라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제2장 어떻게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할 것인가」중에서
첫 단계는 질병의 감지와 보고는 물론 치료까지 가능케 하는 든든한 보건 시스템의 모든 요소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보건 시스템이 자금 부족을 겪는 경우가 많은 중·저소득 국가에는 특히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의사와 전염병학자들이 필요한 도구를 얻지 못하고, 필요한 교육을 하지 못하고, 국가의 보건기관이 허술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질병의 아웃브레이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모든 국가의 모든 사회가 7일 이내에 아웃브레이크를 감지하고, 보고하며, 하루 안에 조사에 착수하고, 1주 안에 효과적인 통제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보건 시스템 내 모든 사람들의 목표이자 개선 정도 측정의 기준).
---「제3장 팬데믹의 초기 신호를 감지하고 억제하는 법」중에서
현재는 전 세계에서 마스크의 혜택이 증명됐다. 팬데믹 초기 일본은 마스크 착용의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접촉자 역추적과 결합시켰다. 그 결과 2021년 말, 초과 사망률은 인구 100만 명당 70명으로 극히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연구자들이 600개 마을의 35만 명에 가까운 성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해 마스크에 대한 대중 메시지의 영향을 조사했다. 연구 대상자의 절반 정도인 한 집단은 무료로 마스크(일부는 천, 일부는 의료용)를 지급받고, 마스크 사용의 중요성에 대한 정보를 대면으로 직접 전달받았으며,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의 격려를 받았다. 두 번째 집단은 이런 촉진 수단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2개월 후, 첫 번째 집단의 적절한 마스크 사용률은 42퍼센트인데 반해 두 번째 집단은 13퍼센트에 불과했다. 첫 번째 집단은 코로나 감염률도 낮았으며 5개월 후에도 여전히 마스크 사용 가능성이 높았다.
---「제4장 팬데믹의 기본 조치 :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중에서
다행히 코로나는 백신의 표적으로 삼기가 비교적 쉬웠다. 표면 스파이크단백질의 위장이 다른 바이러스의 단백질만큼 심하지 않았다는 것이 부분적인 이유였다. 그 때문에 코로나 백신의 성공률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백신의 기적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점은 백신이 만들어지고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어떤 백신보다 ‘빠르게’ 만들어지고 승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중략) 안타깝게도 코로나에서 본 것처럼 백신을 만들고 승인을 받는 것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나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 즉 중증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은 저소득 국가의 사람들을 비롯해 백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빨리 도달하도록 충분한 양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제6장 6개월 안에 백신을 만들어라」중에서
지금까지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병원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하지만 질병 모의 훈련을 함에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하는, 더 불안한 시나리오가 있다.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병원체를 퍼뜨리는 생물학 테러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무기로 사용한 것은 이미 수세기 전부터다. (중략) 오늘날 가장 무시무시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천연 병원체는 천연두다. 천연두가 특별히 무서운 것은 공기 중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사망률이 극히 높아서 감염된 사람 세 명 중 한 명은 사망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980년, 천연두가 퇴치된 후 대부분의 백신 프로그램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천연두에 면역을 가진 사람이 없다. 미국은 전 국민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천연두 백신을 비축하고 있지만, 백신을 유통시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공격 앞에서 공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를 보호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제7장 전 세계가 함께 대비하라」중에서
2021년 3월 말, 미국인의 18퍼센트가 예방접종을 마친 반면 인도의 경우 예방접종을 마친 인구 비율이 0.67퍼센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0.44퍼센트였다. 7월 말, 미국의 경우 예방접종을 마친 인구 비율은 50퍼센트로 치솟았지만 인도는 단 7퍼센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6퍼센트에 그쳤다. 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낮은 부유한 국가 사람들이 위험이 훨씬 높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보다 먼저 접종을 받고 있었다. (중략) 달리 말해, 보건의 불평등은 흔한 문제라는 뜻이다. 부유한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대응에서 나타난 불평등에 충격을 받은 것은 그것이 보통에서 벗어난 일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보건의 불평등이 다른 때는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질병)를 통해서 자원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는지가 모두의 눈에 띄게 됐다. 당신을 우울하게 만들려는 것도, 세계 보건에 평생을 바치지 않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려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두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제8장 보건 격차 :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갭」중에서
각국 정부는 팬데믹을 예방하기 위해 세계가 필요로 하는 시스템, 도구, 팀에 대한 새로운 자금 조달을 계속 주도해야 한다. 제2장에서 이야기했듯 나는 GERM에 연간 약 10억 달러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금은 부유한 국가와 일부 중소득 국가의 정부에 의해 조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다음 10년 동안 모든 정부가 필요한 백신, 감염 차단제, 치료제,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데 써야 할 돈이 150~200억 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의료 지출을 25퍼센트(약 100억 달러) 늘리고 나머지 국가들이 그 정도 비율로 지출을 늘린다면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절대적으로 보았을 때 100억 달러는 대단히 큰돈이다. 하지만 미국 국방 예산의 1퍼센트가 조금 넘는 금액이며, 코로나 팬데믹을 겪는 동안 피해를 입은 수조 달러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 만한 금액이다.
---「제9장 코로나19를 마지막 팬데믹으로 만드는 액션 플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