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개인의 문화·예술 소양뿐 아니라 선진 문물에 대한 접근 기회, 재력, 사회적 지위 등과 연결되는 것이었고 피아노를 집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강력하게 교양과 재력을 뽐낼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 p.6, 「5권을 열며」 중에서
이번 강의에서 피아노 음악을 함께 듣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아주 풍부한 소리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까지 수많은 음악가가 피아노란 기계를 사랑해 그 가능성을 끌어내는 다양한 방법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 사랑은 모차르트부터 시작돼, 베토벤을 거쳐 우리의 주인공 쇼팽과 리스트에 이르러서 절정을 맞이했지요. 피아노가 나온 이후 작곡가 대부분이 악기 중에 피아노를 최우선 순위에 뒀어요.
--- p.24, 「새 시대가 열리다」 중에서
세상의 모든 피아니스트에게 제일 좋아하는 피아노 음악가를 두 명 꼽으라고 한다면 이들의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쇼팽과 리스트, 200년 전에 살았던 음악가들인데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지요. 이 둘의 피아노에 대한 열정은 많이 닮았지만 연주 스타일이나 삶은 전혀 달랐죠.
--- p.43,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 중에서
연주자들은 악기를 더 잘 다루기 위해 끝없이 연습해요. 그중에서도 피아노 연주는 운동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특히 신체 조건을 잘 고려해야 하죠. 가장 중요한 건 손가락이에요. 곧 자세히 살펴볼 테지만 다섯 손가락의 성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손가락마다 갖고 있는 강점은 살리되 약점은 보완해야 해요. 생각하는 그대로 건반을 터치하는 건 그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연주자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 p.124, 「도약을 위한 시」 중에서
연습곡은 에튀드라고도 합니다. 에튀드는 ‘공부’라는 뜻의 프랑스어예요. 물론 쇼팽이 작곡하기 이전에도 피아노를 위한 에튀드가 여럿 있었죠. 하지만 ‘쇼팽 에튀드’가 발표된 다음부터는 에튀드의 의미가 달라져요.
그게 대단한 에튀드였기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연주회에서 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연습곡에 담아냈거든요. 갖가지 기교가 손에 익도록 연습하면서 동시에 시적인 표현까지 넣었죠. 연습곡이란 재미없던 장르가 쇼팽 덕에 예술로 승화한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쇼팽에게는 ‘연습’이라는 아이디어가 창작의 영감이 된 거예요. 쇼팽의 영향으로 이후의 여러 음악가들이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연습곡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 p.139~140, 「도약을 위한 시」 중에서
이때가 유럽 전역의 음악가들이 파리에 모여들던 시기라는 게 더 중요해요. 리스트가 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19세기 초반부터 음악의 수도가 빈에서 파리로 옮겨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굳이 예술이 아니라 도시계획과 건축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당시 파리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어요. “19세기는 파리를 아름답게 만들었으며 빈을 손상시켰다”라는 말도 나왔지요.
--- p.188, 「혼란의 대도시에서」 중에서
리스트는 연주자로서 천재적이었습니다. 다른 피아니스트에게 미친 영향도 정말 크고요. 심지어 당시 프로 피아니스트들은 쇼팽이 만든 곡조차 백이면 백 리스트의 해석대로 쳤다고 해요. 피아니스트가 선망한 대상,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지요.
--- p.220, 「혼란의 대도시에서」 중에서
앞에서 각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고 했죠? 보통 피아노를 연주할 땐 두 손이 역할을 나눠 가져요. 한 손으로는 선율을, 다른 한 손으로는 반주를 치죠. 하지만 리스트의 연습곡을 연주하려면 더 나아가 하나하나의 손가락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 p.267,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중에서
최초의 영감 자체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얘기지요. 다시 초고로 돌아오게 될 텐데 끝없이 수정했다는 걸 보면 쇼팽이 완벽주의자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고요. 그건 일찌감치 자신이 다루는 장르의 범위를 한정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 위주로 파고들었죠. 대신 정해진 장르의 규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독창적으로 변형했어요.
--- p.295, 「에덴의 정원에서 써 내려간 음악」 중에서
리스트 역시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이전에는 전혀 없던 형태의 무대를 섬세하게 설계했습니다. 작은 무대가 연주회장 가운데 섬처럼 솟아올라 있었고, 서로 마주 보는 구도로 피아노 두 대를 놓았지요. 연주할 때에는 계속 각각의 곡에 더 잘 어울리는 소리가 나는 피아노로 자리를 옮겼대요.
--- p.317, 「최고의 스타, 무대를 떠나다」 중에서
이 시기 리스트의 음악에 대해 카롤리네는 “리스트는 미래의 땅에 창을 던졌고, 후대의 작곡가 쇤베르크와 버르토크가 그걸 주웠다”란 말을 남겼어요. 쇤베르크나 버르토크는 20세기 초반 음악의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사람들입니다. 리스트도 그렇고 이후에 무조 음악으로 이름을 날리는 쇤베르크도 그렇고 모두 기존에 있던 전통적인 조성에 도전한 겁니다.
--- p.403, 「수도복을 입고 신의 곁으로」 중에서
이렇게 피아니스트의 양대 산맥 쇼팽과 리스트는 어떤 것보다도 빛나는 음악을 남겼어요. 그러니 마지막으로 그 유산을 갈고닦은 후배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이들 덕분에 두 사람이 만든 선율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으니까요.
--- p.413, 「건반 위에서 영원히 기억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