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2022년 04월 28일
나의 ‘싸이질’ 의 정점은 대학 입학 무렵이었다.
입학 전 동기들과 싸이월드 일촌이 되어 먼저 만나 친분을 쌓았다.
막상 만나면 일촌보다 먼 사이였지만.. BUT, 즐거웠던 우리42
나를 보여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쳐들어 오는 건 싫었다.
나에게 있어 싸이월드는 그런 예의가 있는 소셜 미디어였다.
그 뒤 내가 아마 페이스북 열풍에 동참하지 못했던 건
나이, 학력, 사는 곳, 심지어 연애 유무까지 거침없이 대문짝만하게 써놓는
서양의 자유분방한 그것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한 흥선대원군의 마음이었으리라
읽는 내내 즐거웠고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고 계속 부활하는 것 보면
나처럼 싸이 안에 추억이 깃든 사람이 여전히 많구나 싶다.
잘가 쵸재깅!! 덕분에 즐거웠어
역시, 이런 일촌명은 절대로 아무나 지을 수 없었다. / p.83
재작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면 아래로 묻혔던 간만에 싸이월드가 들썩이는 일이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대학교 졸업 이후에는 거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이름이었다. 지금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처럼 당시에는 친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싸이월드가 있었다. 물론, 애플리케이션이 아니라 컴퓨터로 하다 보니 다른 점이 더욱 많지만 말이다.
최근에 싸이월드를 복구했다. 차마 내가 했다는 것으로 믿기 힘든 사진과 글들로 손발이 저절로 접혔다. 대체 당시에는 어떤 감성으로 살았길래 이렇게 답이 없는 게시물을 올렸을까. 친한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자신이 올렸다는 사진을 보내 주었는데 그 역시도 와, 대단하다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 돌아가라고 하면 다시는 그런 흑역사를 생성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박선희 작가님의 싸이월드에 대한 에세이이다. 아무튼 시리즈를 나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읽는 책인데 얼마 전 북튜버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싸이월드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큰 공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예상처럼 너무 재미있었다. 진짜 많은 공감이 되었다. 도토리, 스킨, 마이룸 등 당시에 유행했었던 미니홈피 꾸미기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화질 픽셀화 수준의 아바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당시에는 참 재미있게 활용했었기에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도토리 다섯 알 인생>과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라는 챕터가 참 인상 깊으면서도 재미있었다. <도토리 다섯 알 인생>은 싸이월드의 사이버 머니였던 도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겠지만 도토리는 진짜 그야말로 혁신적인 사이버 머니였다. 그것으로 마이룸을 꾸미고, 홈피 스킨을 구매하고, bgm을 달 수 있었다. 저자는 도토리 다섯 알은 가볍게 맥주 한 잔처럼 딱 적당하다고 느껴졌는데 그것으로 상대에게 성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미안함과 고마움은 bgm을 타고 흐른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는 직장 동료와의 일촌명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일촌명 작명으로 머리를 아플 시기에 저자의 직장 동료인 G의 일촌명을 보고 큰 감탄을 했다고 한다. G가 보낸 일촌명은 '20년 동안'이었다. 다정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던 일촌명이었다고 표현한다. 사실 20년동안 근속할 생각이 없었기에 그 일촌명이 더욱 와닿았다고 하는데 저자와 직장 동료는 G는 10년 근속을 하게 되었다. 일촌명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과거의 나와 심플하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G의 작명 센스에 놀랐다.
그 외에도 신문사 후배와의 이야기를 다룬 <도토리묵과 밈, 서태지와 브이앱>을 보면서 조금 씁쓸함을 느꼈다. 후배는 신문 기사 옆에 설명해 주는 괄호를 무엇보다 싫어했다고 한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기사를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처음에는 솔직히 납득이 되었다. 사람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읽기 마련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글을 읽다 보니 뭔가 세대 간 소외 문제가 떠올랐다. 지금 현재 시대가 도토리와 싸이월드를 모르듯이 부모님 세대는 밈이라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책에 나온 것처럼 "서태지가 브이앱을 한다."라는 말에서 부모님 세대의 분들은 서태지는 알아도 브이앱을 모를 것이고, 조카 세대는 브이앱은 알아도 서태지를 모를 것이다. 관심이 없다고 해도 보게 되는 기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괄호는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싸이월드 초기부터 사용을 하셨던 분인듯했다. 그래서 세대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대학교 시절의 싸이월드 이야기는 곧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이고, 직장인 이후에 이야기는 대학교 때 친구와 함께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80년대생의 추억으로 적혀진 책이었지만 세대가 조금 이전되었을 뿐 90년대 초중반의 독자여도 뭔가 추억에 빠질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만에 과거로 떠나는 여행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내용을 읽으면서 남에게 드러내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것 또한 아니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잘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싸이월드를 통해 말이다. 나의 상태명을 대놓고 알리기 싫을 때 Today is @@@으로, 기분을 대놓고 말하기 싫을 때 bgm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싶었다.
얼마 전에 또 다른 메신저인 버디버디의 부활에 대한 기사도 보았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버디버디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표정으로 보이는 나의 상태와 아이디 옆에 적힌 나의 안내 문구도 말이다. 청춘의 일부였던 버디버디와 싸이월드의 부활을 기대하게 만든 책이었다.
응답하라, 2000년대!
<아무튼, 싸이월드>를 읽고
"싸이월드 망했다는 뉴스 보셨어요?" 우리 모두 한숨으로 그 뉴스에 응답했다. 물론 뉴스에 대한 반응은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 망해서는 안 된다는 측의 논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이 거기 있다'는 것이고, 망해서 차라리 다행이란 측은 '우리의 너무 많은 추억(즉, 지우고 싶은 추억)까지도 거기 있다'는 것이었다.(134쪽)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워킹맘 넷이서 2020년대 현재의 일과 육아에 대한 고충을 나눈다. 뒤이어 2000년대 추억 소환이 절정으로 치닫자 절규와 안도의 감정이 교차하는 그곳에 모두의 눈길이 모여든다. 그 공간을 에워싼 그들의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한 권의 책으로 흘러들어 <아무튼, 싸이월드>를 탄생시킨다. 저자는 이십대의 청춘을 모두 바쳐 싸이월드에 써내려간 글들이 지금까지 일간지 기자로 활동하는 데에 원동력이 되어주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싸이질 하던 때가 떠올랐고, 간직하고 싶은 추억과 지워 없애고 싶은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한 기분도 무시로 들었다. 혹시라도 2000년대에 태어난 독자가 '싸이질'을 두고 오해할까봐 설명을 보태자면, 싸이월드와 엇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현재까지도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수 싸이(PSY)에 대한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의 줄임말이 아니라, 싸이월드 하면서 보내는 시간을 뜻하는 용어(이자 당대 사회현상 중 하나)였음을 밝혀둔다.
전 국민에게 낭만적인 도토리 구매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모두가 서로의 일촌이 돼 질척거리게 했던, 끝없이 부딪쳐오는 파도에 자발적으로 몸을 맡기고 새로운 누군가에게 불시착하게끔 했던 추억의 싸이월드.(10쪽)
싸이월드(cyworld)에서 '싸이'는 사이버(cyber)의 앞 두글자를 가져온 것으로 글자 그대로 디지털화된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여기에 두 지점간의 거리를 나타내는 '사이'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더해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공간을 지향했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1촌'에 착안하여 혈연에 버금가는 정서적 친족 관계인 '일촌'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내가 그의 이름(일촌명)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촌(一寸)들이 모여서 싸이월드라는 일촌(一村)을 이루고 각자만의 방을 한 칸씩 갖게 된다.
2000년대 초반에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홈페이지 만들기가 유행하면서 나모 웹에디터를 활용해 홈페이지 만들기에 열을 올리던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보다 더 멋진 홈페이지를 만들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플래시 에니메이션 홈페이지 만들기』라는 책까지 구입했으나 끝내 홈페이지 대문에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션만 구현해놓은 채 내 홈페이지 만들기에 대한 열정도 영영 사라지고 말았던 건 비밀로 해두고 싶다. 이처럼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갖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실제로 만들어내기까지가 녹록하지 않았던 사람들 싸이월드라는 구세주가 나타나 '미니홈피'를 무료로 분양해주었던 것이다.
싸이월드는 평행우주와도 같은 신비의 세계였다. 같지만 같지 않은 사람들, 알지만 몰랐던 이들이 그곳에 가득했다. 그들은 기꺼이 취향을 공개했고 내밀한 삶과 생각을 열어젖혔다.(50쪽)
저자에게 있어 미니홈피는 '하이테크 펜이 든 필통'이다. 사악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필기류의 간판스타로 자리했던 펜. 누군가는 그 펜들로 필통을 가득 채웠고 또 누군가에게는 단 한 자루밖에, 그것마저도 실수로 책상에서 떨어뜨리거나 세게 눌러 써서 볼이 빠져 고장난 채 필통에 고이 모셔둘 수밖에 없었던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고백한다. 전자는 화려한 미니홈피이고, 후자는 자신의 미니홈피라고. 집을 단장하듯이 미니홈피를 꾸미는 일이 곧 싸이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니홈피 주인장의 개성과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BGM(배경음악)', '스킨(배경그림)', '미니미(작은 나)', '폰트(글자체)' 등을 설정하는 데에 집주인의 주머니속 '도토리(미니홈피를 꾸미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사이버머니를 뜻함)' 사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 자신을 '도토리 다섯 알 인생'이라고 회상하는 저자에게서 BGM 한 곡도 결코 허투루 고르지 않고 심혈을 기울였던 내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싸이월드 BGM은 한 시절의 지문이었다. 당시의 처지와 심경을 대표하는 가장 의미심장하고 함축적인 노래가 수많은 경쟁률을 뚫고 배경음악이 됐기 때문이다. 한 곡씩 일일이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무한 스트리밍 시대의 즐겨듣기 목록처럼 즉흥적으로 노래를 선택할 수 없었다. 휴대폰 컬러링이나 삐삐 음성 사서함처럼, 신중하게 고른 한 곡이 그 시기의 자신을 표현하고 상징하는 대표곡이 됐다.(55쪽)
책에 따르면 싸이월드에 보관돼 있는 이용자 데이터는 사진 170억 장, MP3파일 5억 3000만개, 동영상 1억 5000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사진의 압도적인 수량만큼 싸이월드는 사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으로 고화질의 사진을 언제 어디서든 찍을 수 있다면, 당시에는 디카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디지털카메라(디카)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문득 디카 때문에 싸이월드가 흥한 것인지 싸이월드 때문에 디카가 흥한 것인 궁금해지기도 한다.
가장 좋은 사진을 가려내어 최소한으로 올리는 게 미덕인 인스타그램과 달리, 미니홈피 사진첩에 다량(대량)의 사진들을 업로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싸이월드는 절제미가 부족하고,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상해본다. 절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모습들을 디카로 포착하고, 그 사진들을 미니홈피 사진첩에 차곡차곡 담아서 일촌들과 일상의 기쁨과 슬픔, 영광과 굴욕을 함께 나누었을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말이다. <아무튼, 싸이월드>는 어느 개인의 싸이질에 관한 이야기이자 당시 우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흑)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하고 기억했던 공간에 대한 헌정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2021년 4월에 출간된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책속 혹은 마음속에서 "2000년대여, 응답하라!"라는 외침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부름에 응하여 답하기라도 하듯이 2022년 4월에 싸이월드 서비스가 재개되었다. 과연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일촌들이 파도 소리에 깨어나 기지개를 피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출처 : www.cy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