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 글/Peter 사진
[여행 특집] 반가웠어요, 3년 만의 방콕 - 신예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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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작가들도 유튜브 합니다 - 김중혁, 정문정, 곽정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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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까지만 해도 한해 두어 차례는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우한폐렴이 확산되면서 출입국이 까다로워진 것도 있고, 감염으로 인한 개인적인 피해는 물론 국내에 전파하게 될 위험도 있어서 해외여행을 자제해오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구경하고 2021년 1월 1일 입국한 것이 마지막 여행이었으니 생각보다 길어진 셈입니다.
해외여행에 나서지 못하는 답답한 심경을 담은 신예회님의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을 읽으면서 공감을 느껴보려는 취지의 책읽기였습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해 ‘속이 울컥울컥 버글버글 끓다 못해 콧구멍에서 허연 김이 나오는 것’ 같은 심경으로 일기라도 써보려고 시작한 글쓰기가 한권의 책이 되었고,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으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글 내용을 보면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해 앙앙불락하는 심경은 서문에만 담았을 뿐 본문의 내용은 여타의 여행기와 크게 다를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여행과 관련된 책들을 내신 바 있습니다만, 자신의 여행에서 얻은 느낌과 생각을 담은 책은 처음이었던가 봅니다.
‘하늘 위에서 먹는 밥의 맛’이라는 시작 글은 기내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비행기에 탑승하여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맨 순간부터 모든 정신이 기내식에 쏠려 안절부절 못한다’고 하셨는데, 저와는 상당히 다른 면인 듯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먹는 것에 목을 매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만, 저는 어떤 음식이 되었던 한끼를 때우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탑승 후에 기내가 정리되면 영화를 보기 시작하거나, 볼만한 영화가 없을 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들고간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40대 중반이라고 하시는 작가는 젊은 탓인지 자유여행을 즐기는 듯합니다. 그 나이 무렵에는 주로 출장이나 학회 등으로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저 역시 공항에 내려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방법까지도 사전에 챙겨가지만 가끔은 돌발 사태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젊어서는 출장 등 공무로 해외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빠듯한 일정으로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구경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요즈음에는 구경하러 해외여행에 나서게 되었는데, 주로 여행사의 상품을 이용하기 때문에 별 고민을 하지 않고 여행에 나서기 마련입니다.
작가는 교육방송의 여행관련 편성에 참가한 적도 있는 상당한 경력의 여행작가로 여행기를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몇 권의 여행기를 출간한 기성 여행작가가 강의를 맡게 되는데, 수업을 하는 건지 회식을 하려는 건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기성작가와 친분이 있는 출판사의 편집자를 연결시켜주기도 하는 모양이라서 저도 관심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저도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기를 정리하는데, 여행기를 출판해보려고 출판사에 문의를 하면 대부분 거절받기 일쑤였습니다.
다양한 여행관련 수필들을 읽어보았습니다만, 우리나라 작가들의 여행수필들은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독자들을 겨냥한 듯 필체는 물론 내용 역시 가벼운 편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책의 작가는 여러 권의 책을 내셨다고는 합니다만, 문장의 기술이 일관성이 없는 듯합니다. 서술체와 구어체가 뒤섞이고, 높임말과 낮춤말이 뒤섞여 있기도 합니다. 글의 형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독자의 입장을 고려한 것입니다. 제 경우는 책을 읽는 흐름이 부드럽게 넘어가면 집중도 되고 이해도 쉽게 되는 책읽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통하여 얻는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여행기가 일반화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낌을 적은 여행기보다는 여행지에 관한 특별한 정보를 담은 책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엔데믹이라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보면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예전에 비해 턱없이 높아진 여행 물가를 내 텅장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그래서 요 며칠 동안 여행 에세이를 열심히 읽었다. 제일 먼저 완독한 책은 신예희 작가님의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여행 타령 에세이'라는 부제답게, 팬데믹 시기에 여행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마음을 담아서 쓴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크게 두 개의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저자의 여행 이력이다. 대학생 때 한 달 동안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수많은 나라를 수많은 형태로 여행해온 저자.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진짜' 첫 번째 여행은 1999년 11월의 태국 방콕 여행이라고 한다.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서 2주라는 긴 시간을, 그것도 한 도시 안에서 보낸 이후로 여행 스타일이 크게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뀌었다고. 대체 태국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다들 태국에 갔다 온 후로 인생이 달라졌다고 하는 걸까. 나도 가보고 싶다...!
두 번째는 저자의 여행 취향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만큼, 여행 스타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엄격한 관리자'로 불리는 ESTJ 유형인 저자는 출발하기 전에 숙소를 싹 다 예약해두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고,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미리 만들어놔야 직성이 풀린다고. 계획에 없는 일, 즉흥적인 일을 싫어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기억에 남는 일은 대체로 바로 그 계획에 없는 일, 즉흥적인 일인 걸 깨닫고, 요즘은 융통성 있게 일정을 짠다.
여행은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문화와 풍습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 초보 시절, 저자는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배낭을 매고 맥가이버 칼을 가져갔다. 여행 경험이 쌓인 지금은 무겁고 불편한 배낭 대신 캐리어를 애용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현지에서 조달하는 편이다. 한국에선 시도해 본 적 없는 노브라와 레깅스를 시도해 봤고, 이제는 여행지에서 입던 화려한 드레스를 한국에서 평상복으로 입고 다닌다. 이런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는 여행을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떠나고 싶다... ㅠㅠ
“어행 썰을 풀다 보니 눈물이 날 것 같다. 구글 지도를 열고, 이 모든 게 끝나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장소를 표시해본다”
<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를 펼치기 전 표지에 적힌 이 문장을 읽었더라면 다른 방향의 전개를 기대했을 듯하다. 제목만을 읽고 나서 성급하게도 난 지난 여행의 경험이 담긴 책일 거라고 짐작했다. 어느 정도는 맞으나 동시에 이는 틀리기도 했다. 특정 나라에서 방문한 매력적인 장소들, 맛난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적었으며 구체적이지도 않았다. 대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자신이 프리랜서 여행작가가 됐는지, 흐름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쪽에 가까웠다.
내 경우에는 여행 작가에 대한 일종의 동경심 같은 게 있다. 속사정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하는 여행을 즐기고 책까지 출판해 돈을 버는 직업이라 참 좋을 거라 생각했다. 모두의 상황이 동일하진 않겠으나 책을 읽으며 이 부분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어디에 관한 책을 출판해 주었으면 한다며 거금을 여행비로 제공하는 출판사 따위는 세상이 없다. 개인 돈을 들여 여행을 다니고, 자신의 경험 중 출판사가 원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그걸 책으로 출판한다. 현실이 이러므로 여행 작가라면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상대가 무얼 자신에게 요구할지 미리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도 마냥 여유롭거나 우아하진 못했다. 하루의 경로, 에피소드, 자신이 느낀 점 등이 달아나지 않도록 하루하루 치열하게 정리해야만 했다. 수첩을 들고 다니며 일일이 기록하고, 저녁이면 이를 노트북에 옮겨가며 하나의 문장으로 풀어 적고. 태블릿을 간혹 들고 외출할 경우 어깨와 허리가 부서질 듯 눌려 괴로운데, 우리나라도 아닌 해외 여행을 하면서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물론 기록을 꼭 노트북으로 하란 법은 없고, 저자 또한 자신만의 방법을 고안해 내가 언급한 고통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기는 하였지만.
삶이 참 우연으로 뒤덮여 있다는 걸 여행 작가의 길로 접어든 저자의 경로를 읽으며 느꼈다. 예고치 않은 해고의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게 계기였다. 어찌 보면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인데, 그 시점에서는 앞으로 자신의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혼자서 해외에 나간다는 게 주는 두려움도 그 무렵엔 상당했다. 긴 시간동안 바삐 움직이지 못했고,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다는 장소에서 한 치도 벗어나질 못했다. MBTI의 틀에 갇혀 사람을 판단해서는 곤란할 테지만 ESTJ 라는 저자에 대해서도 살짝은 상상해 보게 됐다. J는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세우는데 능한 유형으로, 나 또한 때론 숨이 막힐 정도로 깨알 일정을 작성해 이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라 치면 스스로를 괴롭히는 편이다. 근데 저자의 에피소드에선 즉흥적인 성격이 엿보였다. 레게머리에 브라질리언 왁싱까지, 과연 이를 계획하고 했을까 싶었다. E 부분도 왠지 성향이 강하지는 않을 듯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스타벅스, 익숙한 장소에 들러 듣던 음악을 들으며 비로소 되찾는다는 마음의 안정은 왠지 E 성향에겐 어울리지 않을 듯도 했다. 어쩌면 주어진 환경이 각자의 행동을 낳는 주된 요인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저자가 계속해서 우리나라에서 직장을 다닌다면 여행을 떠나기도 힘들뿐더러, 혹 가능하더라도 한 나라에 오랜 기간 머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과감하게 노브라 상태로 활보하는 일 역시 어찌 보면 아무것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창한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힘들었을 것이고.
아직은 현재 진행형으로, 코로나19 의 종식을 논하기란 이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숨통이 꽉 막힐 것만 같은 통제로부터 차츰 멀어지고 있고, 저자가 즐겨온 여행 또한 조금씩 활기를 뛸 듯하다. 가고픈 곳이 많고, 그 중 몇몇은 역사의 뒤안길로 아예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기다리면 다시 여행할 수 있는 시절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저자의 첫 여행 장소로 선택 받는 곳이 어디가 될지 궁금하다. 이후로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내뱉는 타령이 아닌 생생한 여행기를 쓸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