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 코발 저/김희진 역
존 번스 저/김선희 역
백상현 저
조헌주,이명희 공저
책의 제목에 끌렸다. 설렐 수 있다는 건, 대상이 무엇이든 고마운 노릇이니까. 나이들수록 설레는 일이 줄어든다고, 심지어는 설렘 없이 마냥 평온하기를 바란다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은 설레는 일이 내게 계속 와 주었으면 좋겠다. 심장이 터질 듯한 설렘이라면 아무래도 사양하겠으나 살짝살짝 일상을 건드리고 감정을 건드리며 내 하루를 반짝 피워줄 정도로는.
여행 이야기를 담은 책, 젊은 작가, 그리고 유투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대표어다.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면, 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믿고 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는 말을 담은 책. 젊으면 젊은 대로 좋을 것이고 나이가 들었다고 못 할 일은 또 아니지 않겠는가 싶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각자의 시선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꾸려 나갈 일이므로.
책은 여행 관련 구성 방식을 잘 따르고 있다. 여행을 하게 된 동기부터 여행을 한 나라 8곳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코로나 19로 달라진 상황들에 대하여. 솔직한 사진들과 건강한 감성이 읽는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었다. 계속 나아가시기를.
여행하면서 돈을 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쉽거나 편하지는 않다. 여행을 하면서도 늘 무거운 카메라와 노트북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영상을 올리기 위해 하루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편집 프로그램만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인터넷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느린 나라에 가면 전전긍긍하며 밤낮을 꼬박 세웠으며 행여나 프로그램 문제 때문에 작업물이 다 날아가면 ‘그냥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이 드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P260
넘치는 여행 책자와 동영상을 접할 때마다 난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의아해했다. 이들은 대체 무얼로 여행 경비를 마련해 삶을 꾸리고 있는 것일까? 하루 종일 사무실에 틀어 박혀 주어진 업무를 겨우겨우 완수하며 사는 걸 정답 마냥 이행해온 나의 상상력은 한계가 분명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떠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라며, 난 역시 안 되는 모양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형태의 유희는 아니라는 걸 막연히 짐작은 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수고를 하고 있었다. 여행을 즐기는 와중에도 콘텐츠를 고민했고, 다음 여행에 대한 압박도 어쩌면 느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나는 현실을 떠올렸다. 코로나19로 국경이 막혔다는 게 나에게는 단지 여행 자제였지만 그들에겐 아니었다. 잠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길어진 휴식이 선사하는 불안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차마 안다고는 말 못하겠다. 여하튼, 일상의 갑갑함을 덜어내고자 나는 타인의 여행에 다시금 귀 기울였다. 그렇게 만난 게 바로 이 책이었다.
우연히 기회는 찾아왔다. 요리에 관심을 가졌으나 텔레비전에서 본 유명 셰프의 모습만큼 삶이 낭만적이기는 힘들다는 게 분명했다. 평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회의감이 들 무렵에 공짜 비행기표를 준다는 다이어트 대회 소식을 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틈에서 1등은 따 놓은 당삼이라 여겼는데, 하필 내 또래의 여성이 나보다 더 열심히 운동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둘은 의외로 죽이 잘 맞았고, 그간 느껴온 삶의 퍽퍽함에 대한 공감대 또한 쉬이 형성됐다. 그래도 멜버른으로 함께 떠난 건 뜬금없었다. 아니, 이후 모든 여정이 계획과는 살짝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간절함은 여느 때보다 컸고,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정도로 그들은 각종 공모전에 매달렸다. 처음부터 유튜버가 되겠다고 다짐하진 않았으나 자신들이 남긴 여행 기록이 관심(논란도 포함)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서서히 배워 나갔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부차적이었다. 진정 여행을 즐겼기에 이번으로 끝내지 않았다. 지도를 펼쳐놓고 자신의 발걸음이 닿은 장소마다 색칠을 해 나가는 재미도 쏠쏠했으리라. 책에 수록된 내용은 그들이 오간 장소의 극히 일부분만을 담았을 게 분명하나, 이를 통해 나는 그들의 여행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현지인들과의 교류에 아무래도 가장 이끌렸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패키지 여행 상품을 주로 이용해온 나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불온(!)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경우도 없지야 않았지만,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러시아 청년들과 기차에서 보낸 시간부터 이후 이어진 대부분의 만남이 좋았다. 반면, 이집트 카이로는 도시 전체가 아찔함으로 남지 싶었다. 카오스와도 같았던 인도가 준 느낌과는 전혀 다른 불쾌함이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런 곳도 있고 저런 곳도 있기 마련이니, 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을 통해 밀어내는 게 상책이리라.
아무래도 종식은 힘들 거 같다. 그래도 확진자 수가 상당히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2021년 출판된 책이니 지금은 다시금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수도 있고, 해외로 나갈 수 없어 시작한 우리나라 도처 방문을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길 위에서 섰을 때 가장 설렌다는 걸 누구보다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자에겐 즐거운 내일이 오지 않는다는 걸 떠올리며, 카르페 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