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로페즈 저/이승민 역
니나 버튼 저/김희정 역
보 헌터 저/캐스린 헌터 그림/김가원 역
소설가와 고생물학자는 《루시의 발자국》에서 진화, 주로 인간의 진화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면, 이번에는 생물학과 진화학에서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 문학 등등 모든 분야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 죽음(과 노화)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죽음은 성(性), 이타성과 함께 신다원주의의 난제로 꼽힌다. 왜 포유류는 성을 갖는지, 왜 죽음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이타성은 어떤 이유로 진화했는지에 관한 질문은 20세기 중반 이후로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만 아직도 속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100% 설명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신(神) 등에 그 설명을 맡기지 않는다. 현재까지의 증거와 논리를 가지고 최대한 설명하고, 그래도 모자란 것이 있으면 다음의 과제로 넘기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고생물학자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의 태도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주로 죽음과 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주제는 특히 70대 중반을 넘어서는 소설가 후안 호세 미야스에게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고생물학자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학적으로 소설가가 이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어서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기는 이유를 죽지 않아서라는 설명은, 사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인데 고생물학자는 소설가에게 여러 차례 반복해서 주입한다. 인간은 평균 수명이 50을 넘기는, 매우 특이한 종(種)이다. 그런 특이함은 최근 의학 등의 발달로 더욱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당연한 것,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매우 불행한 ‘사태'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고생물학자 아르수아가가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진화학적 설명은 생물학계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기도 하다. 번식 시기가 지난 이후에 발현하는 형질에 대한 자연선택의 무관심,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돌연변이, 텔로미어와 같은 구조적 문제 등이다.
이와 같은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몇 개의 챕터만으로 설명할 수 있고, 또 여기서보다 훨씬 자세하게 쓸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형식의 책이 필요할까? 그건 아마도 눈높이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소설가 미야스는 자꾸만 목적론적 관점을 버리지 못하고 반복하고, 고생물학자 아루수아가는 그것을 비판하고 자연선택에는 목적이 없으므로, 개체 수준에서 자연선택이 작동한다는 것을 계속 해서 강조한다. 소설가 미야스의 관점은 많은 일반인들의 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일반인의 보편적인 (잘못된) 관점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한 비판, 내지는 지적을 일반인의 수준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수준 낮은 얘기가 아니라, 매우 수준이 높다. 전문가를 설득하는 것보다 보편적인 일반인을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며, 더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이 책은 전문성 있는 과학 설명보다도 더 수준 높은 과학 담론인 셈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좀 있다. 소설가의 입장과 생물학자의 입장이 좀 더 선명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 양쪽에서 서로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생물학자의 입장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만, 소설가는 계속 궁시렁 거린다. 소설가도 죽음과 노화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식견을 가지고 죽음과 노화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인식을 보여주었다면 더욱 알찬 대화가 되지 않았을까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어느 글을 인용하면, 동물들에게는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죽음은 기록하고 기억하는 인간이 만들어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종과 달리 인간만이 죽음에 대한 존재를 두고 종교와 문화를 만들어내왔던 것이라 한다.

이 책은 죽음을 알고 있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동물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페인의 유명한 소설가와 고생물학자가 서로 만나서 나누는 죽음에 대한 썰은 마치 유명 교양 프로그램인 알쓸신잡과 비슷한 유형을 다루고 있다. 식사를 하다가 아니면 호텔 안에서 두 사람이 만나서 하는 가벼운 대화가 어느새 '불멸의 존재'로 암세포에 항원을 가진 벌거숭이두더지쥐에 대한 이야기에서 단회번식으로 생과 사를 함께하는 연어 이야기, 개체 별로 가지고 있는 죽음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 등 어디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이야기가 생물학은 물론 신화, 문화, 사회, 경제, 역사 등에 걸쳐 근거로서 등장한다.
죽음 전 단계 '노화'에 대한 신선한 관점
죽음에 이르기 전 단계인 '노화' 에 대한 언급도 꾀나 재미있다. 동물들은 늙음을 겪기 전에 자연 상태에서 기대수명에 맞춰 살아간다. 자연에서는 늙음이 있을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의 죽음을 최대한 방어, 즉 의료 기술의 발달로 죽음의 외적 요인들을 줄여왔다. 그로 인해 이전에는 없었던 노화로 인한 질병을 갖게 된다. 물론 동물들도 스스로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동면을 해서 신진대사를 최소로 줄이는 행위를 한다고 한다.

죽음에 대해서
미야스에 말하길 신은 '죽음'을 심어 놓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신의 창조물인 인간인 만들어낸 것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신의 입장에서는 죽음은 '생명 내부로의 이동'이라고 한다. 얼마나 신의 관점의 표현이 아닌가. 그에게는 생명과 죽음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인간은 '죽음'을 인지하면서 스스로 '불멸'을 꿈꾸는 유일한 개체인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달리 생각하면 인간을 제외한 유기체는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적어도 죽음이 주는 공포나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점은 부럽기 그지 없다.
학습만화로도 훌륭한 과학 서적
우리가 과학 시간에 동물의 특정 행위나 습관에 대한 지식들은 번식을 위해서 어떤 행위를 한다를 배웠지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왜 그런 행태를 하는지를 두 저자를 통해 설명해준다. 이 책은 학습만화로 만들어져도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두 작가는 캐릭터로서 너무나 확고한 특징이 있는 훌륭한 주인공이다.
인문사회 영역의 경우에는 주로 스페인 문화권에 대한 예시가 많아서 낯선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과학 서적이라기에는 어렵지 않고 알기 쉬었다. 거기다 누가 바도 MBTI가 F인 작가와 극T인 고생물학자와의 대담은 서로 평행선에 있을 것 같지만 묘하게 대화가 이어지는데 이 갭이 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