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근교 펜칭에서 태어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로,개인심리학의 창시자다. 빈 대학교 의대에서 안과와 일반의로 일했으며, 이 시기부터 환자를 개인만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관점을 키워갔다. 1902년 프로이트의 모임에 합류해 빈 정신분석 운동의 초기 핵심인물로 활동했지만, 인간을 성적 충동보다 목적, 열등감, 보상,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를 발전시키며 1911년 결별했다.
아들러는 1907년 기관 열등성과 보상 문제를 다룬 저작을 발표했고, 1912년 『신경증 기질』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본격화했다. 그는 인간...
오스트리아 빈 근교 펜칭에서 태어난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로,개인심리학의 창시자다. 빈 대학교 의대에서 안과와 일반의로 일했으며, 이 시기부터 환자를 개인만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관점을 키워갔다. 1902년 프로이트의 모임에 합류해 빈 정신분석 운동의 초기 핵심인물로 활동했지만, 인간을 성적 충동보다 목적, 열등감, 보상,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를 발전시키며 1911년 결별했다. 아들러는 1907년 기관 열등성과 보상 문제를 다룬 저작을 발표했고, 1912년 『신경증 기질』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본격화했다. 그는 인간을 분절된 충동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존재로 보고, 열등감, 생활양식, 목표지향성, 그리고 공동체 감각 또는 사회적 관심으로 번역되는 ‘게마인샤프츠게퓔’을 개인심리학의 핵심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관점은 심리치료를 넘어 교육, 부모 역할, 학교 현장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아동 지도와 예방적 정신건강에 특히 힘을 쏟았다. 1921년 빈에 첫 아동지도클리닉을 세운 뒤 여러 클리닉을 운영했고, 가족과 교사까지 함께 다루는 공개 상담과 교육 활동을 통해 오늘날의 가족상담 ,학교상담, 공동체 정신건강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에서도 활발히 강의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와 롱아일랜드 의과대학에서 가르쳤다. 1930년대 중반에는 활동의 중심을 미국으로 옮겼고, 1937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강연 여행 중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일외국어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메로스어학원을 수료하고 일본외국어전문대학에서 한·일 동시통역을 전공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다음 대학원에서는 철학과 심리학에 심취했다. 또한 잡지에 미국 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귀국하여 전문 번역과 출판 기획자로 나서게 되었으며, 지금은 글쓰기에도 열정을 다하고 있다. 편저로 『심리학의 더 즐거움: 인간관계의 최종 병기』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조직의 바이블: 조직을 관리하는 2대 원칙』 『부자 엄마 강의록』 『100년의 ...
서울에서 태어나 대일외국어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메로스어학원을 수료하고 일본외국어전문대학에서 한·일 동시통역을 전공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다음 대학원에서는 철학과 심리학에 심취했다. 또한 잡지에 미국 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귀국하여 전문 번역과 출판 기획자로 나서게 되었으며, 지금은 글쓰기에도 열정을 다하고 있다. 편저로 『심리학의 더 즐거움: 인간관계의 최종 병기』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조직의 바이블: 조직을 관리하는 2대 원칙』 『부자 엄마 강의록』 『100년의 교제술』 『내 아들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생각의 논쟁』 『손에 잡히는 심리학』 『철학의 즐거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