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 김현길 저
카콜 저
리모 김현길 글그림
김소영 저
이종욱 저
산업사회가 되면서 개인소득수준이 높아짐으로써 우물안 개구리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계를 인지해서 더 넣은 세상과 마주하고자 밖으로 밖으로 나갔던 시대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시기가 90년대라 생각되는데요.
그 시기를 지나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 수많은 여행자분들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남겨온 발자취. 즉, 여행기 중에서 이 책과 같이 그림으로 남겨서 기록을 한 사례는 저는 처음 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사진을 통한 기록들의 홍수 속에서 직접 그린 스케치 그림을 통한 생생한 유럽의 모습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아날로그적인 풍취가 느껴져서 저 개인적으로 감성적으로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여행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의 중요한 일부이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의 묘미를 즐기는 것이 가능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낯선 경험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인생에 한 번은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유럽을 스케치 삽화로 먼저 만나본 풍경이 생생합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하루, 한순간을 소중히 살아야 한다고 늘 말하지만 우리는 무한한 시간을 사는 것처럼 일상의 시간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여행의 시간만큼은 1초도 그냥 보내지 않으려 애쓴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라도 여행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유럽을 그리다, 배종훈, p42>
자기 성찰의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여행이 있다고 합니다. You가 아닌 My를 위한 여행, We가 아닌 Me를 위한 여행이 필요합니다.
여행은 언제나 내게 후유증 없는, 완벽하고 강력한 진통제이자 판타지를 경험하게 하는 마법의 약이다.
<유럽을 그리다, 배종훈, p196>
그 마법의 약을 원 없이 먹어보고 싶습니다. 현실은 여기에 있지만...
끝은 끝이 아니라 언제나 또 다른 시작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여행할 이유도, 사랑할 이유도, 끝과 시작이 맞물린 곳에서 피어나기 마련이니까. 그러므로 내 생의 가장 눈부신 날은 아직 오지 않았고, 여행도 사랑도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유럽을 그리다, 배종훈, p244>
인생에서 나를 찾는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아직도 우리들은 물리적인 여행을 통해서 정신을 혹사 시키거나 육체를 혹사 시켜서 찾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인생은 주관식이라 합니다.
4지 선다형 5지 선다형의 객관식에 젖어들어있는 우리들에게 백지의 주관식 답지는 본인들이 써 내려가야 하는 내용들이기에 그 내용들을 채워가는 것이 여행이라 생각됩니다.
여행, 생각만 해도 설렌다. 사랑, 그것도 설렌다. 이 두 설렘의 만남을 보여주는 책이 있다. 서양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여행작가, 중학교 국어교사까지, 1인 5역을 맡은 배종훈 작가의 《유럽을 그리다》가 바로 그 책이다. 책은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한 여자와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처음에 제목만 봤을 때는 단순히 작가의 여행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첫 부분에서 낯설지만 싫지 않은 만남을 보고난 후에는 달달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핑크빛 에세이의 느낌이 물씬 났다.
별다를 것 없는 이 길에서 난 참 행복하다. 여행이 주는 설렘은 모두 네 번 찾아온다. 떠날 곳을 정하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동안 한 번, 마침내 갈망하던 그 곳에 도착했을 때 한 번, 계획했던 장소와 일정을 벗어나는 순간 한 번,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어느 날 우연히 여행에서 마주친 장면과 비슷한 순간을 만나는 때에 한 번.
배종훈 ∥ 유럽을 그리다 ∥ 여행의 설렘은 中 (p135)
그냥 여행 만으로도 설렘이 느껴지는데, 여행지 또한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 유럽,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예상하지 못한 낯선 이와의 만남. 혼자 여행을 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설렘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두 남녀의 만남은 프랑스에 도착을 하고나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저자는 자신이 빌린 렌터카를 같이 타고 이동할 것을 제안해 둘은 함께 아비뇽으로 떠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따로 또 같이 여행을 한다.
목적지만 생각하다 보면 지나가는 과정들이 모두 가뭇없이 연기가 되고 만다. 무사히 도착하는 데만 관심 갖지는 말아야 한다. 어디든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 자체가 여행이기에.
배종훈 ∥ 유럽을 그리다 ∥ 여행의 과정 中 (p154)
여행을 하면서 '그녀'를 향한 저자의 감정은 점점 핑크빛으로 물들어 간다. 글로 표현된 저자의 마음을 읽으면서 나 또한 두근두근했다. 저자의 그림과 함께 보아서 여행의 설렘이 더 잘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좋아하는 이성이 생기면 감정이 숨겨지지 않고 표정으로 다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밀당 이런 거 모르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다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후회라도 덜 하려면 이 방법이 낫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저자도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끝은 끝이 아니라 언제나 또 다른 시작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여행할 이유도, 사랑할 이유도, 끝과 시작이 맞물린 곳에서 피어나기 마련이니까.
배종훈 ∥ 유럽을 그리다 ∥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中 (p244)
《유럽을 그리다》는 유럽을 배경으로 한, 한 편의 단막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직 유럽 여행을 가본 적이 없지만, 항상 꿈꾸며 상상했던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 미리, 대신해서 볼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았다. 언젠가 갈 나의 유럽 여행도 이처럼 설렘 가득하고 그리움도 있기를...
배종훈은 국어교사이면서 화가이며 여행가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가 유럽을 여행하며 쓰고 그린 이 책은 그의 이력만큼이나 독특하다.
무엇보다도 그의 감각적인 그림이 매력적이다. 해질녘 아비뇽의 YMCA호스텔에 도착했을 때의 분위기를 그림 한 장(p. 35)으로 충분히 표현했다.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는 어느새 프랑스 아비뇽의 구교황청에, 광장에, 생베네제 다리 위에, 로세돔 공원에 가 있다. 작가의 여행은 계속된다. ‘아를’에서는 고흐 풍의 그림, <그리움이 흐르는 강>(p. 59)을 그렸다. 그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그린 작품, <가슴이 붉게 물들어>(p. 99)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독일 베를린과 뮌헨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과 잘츠부르크,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그라나다, 그리고 톨레도와 세고비아 등. 책 제목에 걸맞게 유럽을 인상 깊게 그렸다. 그의 그림을 예쁜 그림엽서로 사용하고 싶어진다. 이 책은 배종훈의 유럽 여행 화집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국어교사답게 그의 글 또한 감칠맛난다.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와 우연히 유럽 여행의 일부를 동행하고 일부는 따로 따로 여행하면서 아련하게 피어난 사랑의 감정을 담백한 언어로 그림처럼 표현했다. 그는 그녀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질투를 느끼면서 어느새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헤어지자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지 여인! 일상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이별 장면이 나온다. 작가는 실제 경험을 기록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작가는 여행, 만남, 사랑, 이별이라는 소재로 멋진 소설과 그림을 창작해 낸 것이다. 그가 프롤로그에서 말했듯, 여행은 일상의 일들을 멈추고 비현실적인 삶을 사는 작은 판타지 같은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여행은 마치 소설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이별하는 것과 같다. 2015년 끝자락에서 나는 배종훈의 유럽 여행과 그림과 이야기에 푹 빠졌었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팍팍한 삶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배종훈의 <유럽을 그리다>를 보라. 잠시나마 작은 판타지의 세계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