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저/오세진 역
박홍규,박지원 저
김도환 저
내용보다는 제목이 익숙한 책이다. 어디선가 '열하일기'라는 제목은 자주 들어서 낯설지 않다. 반면에 내용을 생각해보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맞다. 나는 아직 '열하일기'를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생각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익숙하지만 낯설어 읽고 싶었다. 거기에 저자의 이름 세 글자가 눈에 띄었다. 일전에 유튜브 여기저기서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인상적이었는데... 그래서 읽게 됐다.
창피하게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열하일기'라는 책이 단순히 여름날을 담은 일상 에세이쯤으로 알고 있었다. 왠지 제목에서 여름과 일상의 향기가 나지 않는가? 아무튼 예상 밖이었다. 에세이에 포함은 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기행문에 가깝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청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내게 된다. 당시 박지원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왕성했으나, 마땅히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책 읽고 공부하는 벌이 없는 프리랜서? 그래서 사절단 선발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종국엔 혈연 찬스를 통해 사절단으로서 중국에 방문하게 된다. 사절단의 종착지는 중국 연경이었으나 중국 '열하'라는 도시로 피서를 간 황제 탓에 사절단의 최종 목적지 또한 그곳으로 바뀌게 된다. '열하일기'는 저자 박지원이 중국 '열하'까지 다녀오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열하일기'는 기행문이지만 기록 곳곳에 저자 박지원의 사상적 색채가 짙게 묻어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저자의 모습이 기록 곳곳에 등장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라는 구절이다. 지금이야 자주 해외여행을 갈 수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당연히 국내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문물들도 있었을 테고. 그런데도 중국 제일의 장관으로 기와 조각과 똥덩어리를 뽑다니 지금의 나로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만큼 한낱 하찮은 것을 최대한의 효용으로 처리하여 '정덕'을 실현하는 중국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듯하다. 어느 한 극단에 머물지 않고 제3의 대안을 유연하게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 박지원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후생'에 목매고 있다. '쓰임을 이롭게 함으로써 삶을 도탑게'만 하는데 혈안 되어 있다. '이용후생'과 한 세트가 되어야 할 '정덕'의 가치는 사라져버렸다. '정덕'은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능동적 가치쯤으로 규정할 수 있는데, 이는 이용후생과 병렬의 관계가 아니라 공존의 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삶을 이롭게 한다는 명분으로 자연은 응당 파괴되어도 괜찮은 것쯤으로 치부하는 행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외에도 박지원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술과 관련된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술집에서 마주친 몽골, 이슬람인들에게 기죽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그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게끔 술을 퍼마신다. 연거푸 독한 술을 원샷을 한 탓에 휘청휘청 거리면서도 폼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장면만큼 인간적일 수가 있을까. 웬만한 남자들은 공감할 듯하다.
여행기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이 많다. 또한 내가 직접 겪은 것처럼 생생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1년간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그간의 기록을 기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며칠간의 기록으로 이토록 사람을 끌어당길 수도 있다니...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인상적이었지만, 본문 중간마다 등장하는 저자의 해설 또한 좋았다. 본래 청소년을 대상으로 박지원의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집필했다고 하니 전혀 어려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고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고미숙)>를 읽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옛날이야기를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곤거리듯이 고미숙이 풀어놓았다. 읽다가 잠시 눈을 떼기가 힘들다. 오줌이 마려워야 겨우 책을 뒤집어놓고 일어섰다. 쉽게 풀어놓으니 쉽게 스며든다. 아무튼 박지원도 대단하고, 고미숙도 대단하다.
조선의 박지원은 글을 읽고 닦으면서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꼈고, 당시 문명국인 청나라를 다녀온다. 고미숙은 박지원의 흥미로운 호기심, 지식 탐구심, 여행자의 느낌을 풀어놨다.
고미숙은 무던히 열하일기를 좋아하나 보다. 이런 저런 부분을 재밌게 알려주기도 하고, 어쩔 때는 혼자 감동에 젖어 글을 써 내려갔다. 진짜 열하일기를 찾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받으려는 듯. 그런데 재미와 감동이 그대로 스며들고, 나 또한 감동한다. 그리고 열하일기를 찾게 만들었다. 고미숙 성공!
넓은 요동 벌판을 보고서 ‘멋진 울음 터’로 보고, 한 번쯤 울어볼 만하구나, 이 정도 맘보(스케일)가 커야 하지 않을까. 압록강을 건너면서 ‘그대 길을 아시는가’ 물으면 ‘저 강과 언덕 사이에 길이 있지’, 이 정도 답은 해야 하지 않을까.
책을 덮고 앞 메(산)를 오른다. 메라고 하기엔 낮은, 고작 1시간이면 꼭대기에 올라서는, 쬐끔(조금) 더 가까워진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우쭐거리기 딱 좋은. 올라가면서, 지난 10년 나는 이 앞 메를 ‘멋진 울음 터’니 ‘사랑스러운 뒤뜰’이니 이런 맘을 가진 적이 있는가. 내려오면서, 앞으로 10년 나는 저 벌판의 길을 알 수 있을까, 찾을 수 있을까. 연암의 학문 사랑, 미숙의 연암 사랑쯤 되어야 찾을 수 있갔지, 휴. 나를 다그치고 깨우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