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최인아 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한국경제신문한경BP/2018.8.8.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는 연암의 청년시기 발자취로부터 요즘 청년들이 배울 수 있는 행복한 백수의 삶을 일깨운다. 1장 ‘노동’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밥벌이를 하고 자존감을 지킬 것인가, 2장 고립과 소외를 벗어나 어떻게 능동적으로 ‘관계’의 주체가 될 것인가, 3장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여행’이 어떻게 청년들의 욕망과 접속하게 되는지, 4장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공부’라는 활동을 어떻게 일상과 결합할 것인가를 탐구한다. ‘일, 관계, 여행, 공부’의 주제어로 연암이 삶을 대하는 당당함과 지혜를 배우라고 하면서 “제발 꿈꾸지 마라! 꿈은 망상이다. 망상은 부서져야 한다. 망상 타파! 청춘은 청춘 그 자체로 충분하다. 아니, 삶이 통째로 그러하다.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살지 않는다. 어떤 가치, 어떤 목적도 삶보다 더 고귀할 수 없다.(p.20)”라고 말한다. 살다보니 사랑도 하고 돈도 벌고 애국도 하는 것이지, 사랑을 위해, 노동을 위해, 국가를 위해 산다는 건 모두 망상이다. 하물며 돈을 위해 설까! 성공한 다음엔 공황장애, 성공하지 못하면 우울증, 이 얼빠진 궤도 자체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러니 제발, 망상을 타파하자.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청춘의 생동하는 인생을 갖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청춘은 절대 아름답지 않다고. 청춘은 그렇게 푸르지 않다고. 봄날은 짧다. 겨우내 깡깡 언 땅을 뚫고 나오기도 힘겹지만 나오자마자 동풍에 꽃샘추위까지 겪어야 한다. 청춘 또한 다르지 않다. 몸에는 성호르몬이 부글거리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험공부밖에 없는 10대를 통과하고 나면 곧바로 성인이 되어 사회라는 ‘정글’에 뛰어들어야 한다. 봄날 미처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과 다를 바 없다.(p.25)” 이 짧은 청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저자는 백수로 살 것을 권한다. 이미 사회가 청년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백수로 살려면 먼저 자립해야 한다. 당연히 알바든 비정규직이든 경제활동도 활기를 띠게 된다. 그때부터 비로소 경제적 주체가 된다. 삼시 세끼를 직접 운용하지 않고서는 자립은 없다. 자립의 최고 걸림돌은 소비와 부채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비로 부채부터 줄여가며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실천해야 한다.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 노자 등 정신적 지도자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귀족과 자유인, 조선 시대의 양반, 인도의 브라만, 이들의 공통점은 백수다. 직업과 노동에서 벗어나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백수야말로 인류가 지향하는 가장 고매한 코스다. 4차 산업혁명이란 인류가 비로소 노동에서 벗어났음을 의미 한다. 그러므로 백수란 더 이상 특별한 상태가 아니다. 자연스럽고 보편적 조건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대세를 부인하면서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하는가?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이유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청년 자살률 세계 1위! 그 이유를 주로 일자리나 격차 사회에서 찾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계의 결핍이다. 다시 말해 인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p.92) 산다는 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말을 주고받고 같이 먹고 함께 걷고, 그러다 의기투합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이렇게 지지고 볶는 것이 일상이고 일생이다. 스마트폰은 이 모든 과정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덕분에 일상이 사라져버렸다. 대화가 실종되어버렸다. 디지털 공간이 확대될수록 사람과 사람이 직접 소통하는 능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p.97)” 학교는 단지 지식을 쌓는 곳이 아니다. 함께 하는 것을 터득하는 곳이다. 앎 자체가 소통이라는 삶을 깨우치는 곳이다. 그런데 경쟁에 매달리다 보니 대화와 소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왕따와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다. 나를 둘러싼 관계를 점검해 보라. 관계 자체가 삶이다. 제일 먼저 가족관계를 살펴보자. 베이스캠프인 가족을 떠날 때 비로소 내 삶은 시작된다. 백수는 노동과 화폐 대신 소통과 순환을 일상의 축으로 삼는다. 노동과 돈이 수직적 위계에 갇힌다면 소통과 순환은 수평적 네트워크로 확산된다. 우정 또한 그렇다. 우정은 단지 친구라는 범주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동심원을 그리면서 머리멀리 퍼져 나간다. 그 동그라미는 성별, 세대별, 인간중심주의 등 장벽들을 하나씩 격파한다. 연암은 이 파동을 가장 멋지게 활용한 청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연암에게 있어 삶과 여행은 분리되지 않았다. 핵심은 역시 질문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에 대하여, 세계에 대하여, 또 일생에 대하여, 정해진 코스에서 벗어나면 누구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어 있다.(p.201)” 나를 비우고 내려놓는 만큼 그만큼 세상이 내게로 온다. 삶이 저 심층에서 솟아오른다. 소유에서 접속으로! 증식에서 생성으로! 노마드가 되는 첫 번째 스텝이다. 길은 한걸음이면 충분하다. 요즘 청년들은 조직이나 노동에 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경제활동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고 싶을 때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정규직을 확대하는 것보다 계약직이나 프리랜서의 위상을 높여주는 게 낫다. 최근 뜨고 있는 ‘미니 잡’도 그런 추세를 반영한다. 미니 잡이란 주당 17시간 미만으로 일을 하는 단기 취업을 뜻하는 데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앎은 파동이다. 그 다이나믹한 리듬을 싹 빼버리고 씹다 뱉은 껌처럼 ‘공부’는 ‘시험’과 동의어고, 시험은 성적으로, 스펙으로, 수치로 환원된다. 결국 청춘은 숫자다! 그 과정에서 신체는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수치가 높으면 세련된 ‘로보캅’, 수치가 낮으면 음울한 ‘좀비.’(p.214)” 운명의 키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욕망과 소비습관의 패턴에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노동과 돈, 쾌락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게 된다. 백수가 되는 순간, 백 권의 고전에 도전하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해 보라. 백수는 백 권의 책을 읽으며 수행하는 자라고 저자는 말한다. 백수는 노동에서 벗어나 활동을 창안하는 존재다. 놀고, 먹고, 걷고, 만나고, 그 모든 활동의 핵심은 ‘배움’이다. 배움보다 더 고매한 일도 없고, 더 즐거운 일도 없다. 왜? 배움만이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움이 없으면 삶은 반복에 빠진다. 반복은 죽음이다. 그럼 뭘 배우는가? 자신과 세계에 대해 배운다.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하여, 욕망과 성의 원리에 대하여, 또 감정의 흐름과 관계의 변화에 대하여, 그런 공부를 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서고금의 자연철학에 접속하게 된다. 명리학, 별자리, 뇌과학, 생물학, 천문학 등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인생의 압축파일이 오늘 하루다. 결국 오늘 하루의 리듬이 인생 전체를 좌우한다. 좋은 삶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에 온전히 집중하여 멋지게 살라! 그 하루들이 모여 일생이 된다.
“20세기의 경우, 산다는 건 더 많은 소유를 향해 나아가는 거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많이 소유할수록 바보가 된다. 디지털은 유동하는데 가진 게 많으면 움직이기가 곤란하다. 집, 땅, 차는 공유 경제에 포획될 테고, 그러면 이제 최소한이면 충분하다. 사적 소유에서 벗어나야 공유 경제를 적극 활용할 수 있고, 그래야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확장하고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소유에서 접속으로! (p.268)” 일하지 않아도 100세를 산다는 건 인류사의 축복이다. 그럼 그 기나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배우면 된다. 인생과 우주에 대하여, 마음의 행로에 대하여, 역사와 종교에 대하여. 그동안 먹고 사느라고, 지지고 볶고 싸우느라고, 또 수명이 짧아서 하지 못했던 일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소한의 활동으로 최대의 행복을 꿈꾸는 21세기 모든 백수들에게 이 책을 읽고 힘내기를 응원한다!
저자 고미숙은 박사학위를 받고도 백수가 되었다. 해서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혼자는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공부공동체를 꾸렸다.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는 ‘감이당(남산강학원)’이 본거지다.
언제나 명쾌하고 통통튀는 인문학 평론가 고미숙의 신간. 무조건 구매해서 읽어봐야 할 책이었다.
일단 그는 '백수'란 단어가 가진 잉여적 의미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금전적인 이윤을 창출하지 못할 뿐 스스로의 가치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스펙을 쌓는 그들 150만 명을 백수라는 이름에 가두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진정한 백수가 읽어야 할 고전들을 추천했다. 조선의 진정한 백수 연암 박지원을 멘토삼아 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꿰뚫어보자는 그의 의지가 이 책 한권에 충분히 담긴 것 같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서 발췌하고 필사한 내용입니다.
연암은 체질상 그런 식의 격식과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격률을 지키기 싫어 사대부의 기본 교양인 한시도 극소수만 남겼고, 중년에는 사대부의 교제에 필수인 경조사도 폐했을 정도다.
이 청년의 말대로, 우리 시대 삶의 척도는 '안정'이다.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도, 취업을 해야 하는 이유도 가 거기에 있다. 정말 그런가는 일단 제쳐두고라도, 대체 언제나 '그놈의' 안정이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위의 청녕이 토로한 대로 그 모든 과정을 순탄하게 통과한 다음에도 '결코 안정은 없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나처럼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만들면 된다. 이 직업은 읽기와 쓰기와 말하기기 핵심이다. 읽고 쓰고 말하는 것처럼 평범한 활동이 어디 있는가. 어차피 일자리는 더더욱 줄어들 것이고, 대부분의 노동을 기계가 대체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 맞는 '경제활동'을 하면 된다. 임금노동이 아닌 경제활동! 예측건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영역에서 많은 직업이 탄생할 것이다. 특별한 재능보다는 평범한 활동이 더 요구되는 이유다. 또 두세 달 정도의 수입만 있어도 절대 불안하지 않다. 어차피 10년, 20년 뒤라는 개념은 추상이다.
그래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자립의 최고 걸림돌은 소비와 부채라는 사실을. 소비는 정기를 소모시키고 부채는 기혈을 탁하게 한다. 빚을 짊어지고 살면 존재가 무거워진다. 몸 안에 담음이 쌓인 거나 마찬가지다. 담음은 당장 나를 병들게 하지는 않지만 무의식 안에 차곡차곡 새겨져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는다. 일종의 중력 장치인 셈이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쇼핑은 충동이고 부채는 의존성이다. 충동에 휘둘리고 의존성이 강화되면 멘탈은 점점 불안하고 나약해진다. 백수에겐 자존감이 생명인데, 이게 어떻게 작고 사소한 문제일 수 있겠는가
백수는 노동의 소외에서 벗어난 존재다. 백수의 경제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활동의 산물이다. 당연히 소비와 부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동시에 투기 자본에도 포획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철학이다. 돈과 삶의 관계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 그게 바로 백수의 생명 주도권이다.
4차산업혁명이란 인류가 비로소 노동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핵심은 화폐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화폐의 증식에 골몰할 게 아니라 화폐를 어떻게 운용할까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비 충동, 나아가 한탕주의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마디로 '자기 삶의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립을 하고 나면 이제 챙겨야 하는 것은 일상과 신체다. 핵심은 중독이냐 아니냐에 있다. 낮에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밤에는 숙면을 취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한 건축학자의 말을 빌리면, 우리나라에는 집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도 조만간 일본처럼 도시가 공동화될 것이다. 집이 애물단지가 되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그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집을 사다니, 바보 아냐?" 집의 기능이 최소화되고 집이 도처에 넘친다면 유목민처럼 6개월 혹은 1년씩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울러 '걷기'야말로 최고의 양생술이다. 양생이란 정기신을 잘 순환시켜 생명력을 보전하는 의학적 비전이다. 아프다는 건 생리든 심리든 어딘가 꽉 막힌 것을 의미한다. 우울증, 암, 치매, 중풍 등 현대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들이 다 거기서 비롯된다. 그래서 걷기는 거의 모든 병의 치유법에 속한다. 두통을 없애려면? 걸어라! 소화가 안 된다고? 걸어라. 현대인의 가장 치명적 질병인 불면증을 없애려면? 역시 걸어야 한다! 만병통치냐고? 거의 그렇다! 약간 촌스럽긴 하지만, 걷기에 관해서는 아직도 이 표현이 가장 확실하다. '걸음아, 나 살려라!' 병법 가운데 삼십육계 줄행랑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현대인한테도 꼭 필요한 생존 전략이다. 속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속도의 기준은 내 신체다. 한 걸음이건 1만 보건 간에.
특히 걷기와 수면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잠은 소중하다. 낮에 생성된 암세포들을 소멸시키는 것도, 온갖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흘러가게 하는 것도, 무의식을 통해 우주적 흐름과 연결하는 것도 다 잠이다. 잠만 잘 자도 대부분의 병은 치유된다. 거꾸로 불면증은 모든 병의 원인이자 출발에 해당한다. 거꾸로 불면증은 모든 병의 원인이자 출발에 해당한다. 숙면이 양생의 포인트가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숙면을 취하려면 햇빛 속에서 하체를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