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등저/안은미 편역
김겨울 저
서귤 저
이수은 저
이라영 저
2022년 07월 15일
<정희진처럼 읽기>. 페미니즘의 도전을 비롯 여러 여성주의 도서 및 칼럼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정희진이라는 이름. 그런 정희진 선생님은 어떤 책을 어떤 시각으로 읽는지 궁금했다. 강의를 듣듯 각 잡고 공부하며 읽을 요량으로 이 책을 선택했고 예상대로 전자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은 형광펜칠 범벅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얼마나 깊게 사유해버릇 해야 이 정도 깊이의 독후감을 다량으로 써낼 수 있는 걸까? 속칭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통섭적 시각으로 경계 밖에서 제도의 중심을 향해 겨누는 글들은 독서는 저항과 불복종의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네가 읽는 것이 너를 말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사유의 도구가 될 법한 수많은 명언들은 한 번에 소화시키기는 힘들 듯하다. 물론 이후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를 읽을 생각이지만. 개인적으로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는 빈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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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책읽기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 제목에 ’~처럼‘이 붙어 있지만, 작가는 이렇게 읽는다는 뜻이지, 그것이 누구에게나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스스로 ’자극적인 책‘, ’이상한‘ 책만 읽는다고 했다. 각자 상황마다 선호하는 책이 있고 관심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독자는 편협하다고도 했다. 이 말은 정희진이 읽은 책을 보며 위축감이 드는 우리에게 묘한 위로를 준다. 그러므로 어떤 작가가 이렇게 읽는다고 해서 그것을 쫓아가려고 하기보다는 남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하는 차원에서 그중 관심이 가는 책을 몇 권을 읽어보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본문 내용은, <한겨레>에 게재한 ’정희진의 어떤 메모‘의 일부이며 서평이자 독후감이자 칼럼이자 비평이라고 한다.
1장 고통 2장 주변과 중심 3장 권력 4장 안다는 것 5장 삶과 죽음, 이렇게 다섯 가지 테마로 나누어져 있고 읽은 책과 그 소회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항상 강조하듯이 책 내용보다는 읽은 사람의 생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프롤로그에서 ’독서는 혼자 강을 건너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책 읽기는 물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강을 건널 때는 온몸이 젖을 수밖에 없지만 작은 개천을 건널 때는 물방울 튀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깊은 강을 건너다가는 몹시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고, 작은 개울이라도 물이 불었을 때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비가 온다면 어느 물가를 건너더라도 온몸이 다 젖을 것이다.‘(p18)
처음 본 순간에는 근사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내용을 읽고 나니 단순한 책 읽기가 아니라 심층의 책 읽기에 관한 것이어서 더욱 공감했다. 여성학자로서 일반적인 독자와는 다른 책 읽기를 하고 있기에 사회적인 약자나 부조리한 제도에 대해 아파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으니 이러한 지론이 나올 만도 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책을 다 읽을 수는 어렵겠지만 관심 목록에 올린 몇 권의 책을 간단히 언급하며 리뷰하려고 한다.
1. 현기영의 『순이 삼촌』
학창시절 교과서에 익숙한 민족문학의 대표 작가다.
제목은 고향의 향수가 떠오르는데 비인간적인 현대사를 담고 있다는 대략의 내용만 알고 있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 지면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직접적으로 다룬 문학은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시 접하게 된 계기로 관심 목록에 올렸다.
2. 다자이 오사무의 『이십세기 기수』
일본의 천재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언급도 있어서 반가웠다. 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타입의 인간형을 좋아하지 않지만 읽는 이를 무장 해제시키는 그의 ’치열한 절망‘에 어깨부터 몸부림이 온다고. 그런데 검색해보니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이십세기 기수』는 나오지 않는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3. 이상문학전집1, 4
이상 시인 하면 <오감도>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 난해한 시로 유명하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낯설지 않은 문장이다. 저자는 에이왁스(AWACS)를 언급하며 이상을 언급하기 시작한다. 수백 킬로미터 거리 밖을 볼 수 있어서 서울에서 평양 거리의 자동차 번호판까지 보인다는. 일제 강점기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던 민중, 그 상황에서 <오감도>가 나오고, 시에 은유, 메타포(metaphor)가 담겨있으니 난해한 건 당연하다. 더구나 일본어처럼 띄어쓰기도 없는 문장들이 반복되고 있다. 당시 시대 상황이나 시인의 시작 배경을 알지 못하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시다. 1934년 이태준이 추천하여 30제 예정으로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를 시작했으나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중단되었다 한다. 그리고 오감도가 ’조감도(鳥瞰圖)‘의 오타라고 생각한 이들도 많았다 한다.
<오감도>에 대해 초현실, 절망, 환상, 난해, 공포, 아방가르드, 심지어 민족 독립을 위한 병법까지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지만 저자는 ’공포‘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역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다행히 시편 한 권이 있었다. 지금 읽어도 역시 온전히 이해하는 건 무리겠지만, 시를 다루고 읽는 1권이라도 읽어봐야겠다.
4. 프리모 레비의 『살아남은 자의 아픔』
평균 생존 기간 3개월인 아우슈비츠에서 1년 10개월 버티고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의 저서다. 수용소 이야기를 담은 책은 많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아닌가 한다. 레비는 어머니 등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수용소 트라우마로 우울증을 앓다가 1987년 4월 11일, 자택의 층계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한다. 겪어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까.
정희진 작가의 책을 기회가 될 때마다 한 권씩 읽어나가고 있다. 평소에 익숙한 분야의 책만 읽기보다는 다양한 저자의 생각을 접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독서 내공과 글쓰기의 신장으로도 이어질 테니 말이다. 에필로그에는 ’다르게 읽기와 독후감 쓰는 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좋은 독후감을 쓰려면 ’다르게 읽기‘가 필수라고 했다. 물론 다르게 읽는다고 저절로 좋은 독후감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알만한 진부한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쓰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책을 읽었다고 해도 같은 독후감이 나올 수 없는 이유다. 나만이 쓸 수 있고, 저자가 쓰지 못했거나 쓰지 않은 부분을 써서 새로운 주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지런히 읽고 써야 그런 경지에 다다르겠다.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사유하는 법도 깊지 않았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교수님께서 강조하는 부분이 '다양한 관점'이다. 새롭게 보기, 눈여겨 보기, 다시 보기, 뒤집어서도 보기, 멀리서 보기, 가까이서 보기, 딴지걸고 보기 등을 위해서는 나의 틀에 박히고 견고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훈련이 필요했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내게 다양한 관점을 갖게 하는데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무사유와 일관성 없는 복수성을 가진 인간이었다. 중국의 양명학자 탁오, 이지의 말처럼 한 마리의 개처럼 살아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가끔은 무작정 '열심히'만 살아온 삶을 반성하고 사유를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내게 충분히 정신이 번쩍 들 새로운 시각을 안내하였다.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떄 조금 놀랍다. 저자가 자기 이름을 내걸어 자기 처럼 읽기라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신감 넘치는 거니까! 뭔가 식당도 자기 이름 걸고 자기 사진 걸고하면 되게 맛집일것 같고 모르긴몰라도 먹은 사람들을 기만하지 않을 것 같고, 재료 깨끗하게 쓰고 그럴거 같으니까?
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하나의 책을 여러번 읽는 경험을 몇번이나 할까. 세상엔 책이 그렇게나 많은데! 이 책은 곱씹으며 여러번 읽게 될 책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