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글이 얼마나 근사한지, 글 속 세상이 얼마나 현실과 닮아 있는지를. 너무도 익숙하고 친근한 탓에 자칫 지루한 듯 싶어지다가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난 뒤에 다시 글로 향하면, 그때 맡는 글의 향기, 삶의 향기가 더더욱 짙어지고 있음을.
내가 남의 생에 뭐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왜 자꾸만 뭐라고 하고 싶어진단 말인가. 그게 소설이든 현실이든. 내 것의 삶에 열중하기에도 벅찬 노릇인데, 나와는 다르게 사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사람이 온통 착하기만 하지도 악하기만 하지도 않고, 늘 지혜로운 것도 늘 멍청한 것도 아니며, 순간순간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그 사람 고유의 생이 지어진다는 것을 안다. 알고는 있는데 자꾸만 잊게 된다. 그리고는 남에게 무심코 내 입장을 들이댄다. 나라면 그러지 않았으리라고, 또는 나라면 그랬으리라고, 그러면서 나처럼 하지 않는다고 간섭하고 비난하고 경멸하고 외면한다. 그것도 자주. 다른 사람들이나 공동체 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을 하는 이들에 대한 대응을 말하는 게 아니다.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선택, 다른 모습의 삶을 구할 뿐인데도 내가 가지 않는 길로 향한다고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나는 아직 멀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절실히 느낀다.
모두 12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금씩 허물어진 구석을 제 삶에 품고 살고 있다.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있을 것인가. 그러지 말라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과 내 안의 마음은 서로 같은 농도가 아님을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소설들은 무엇인가. 어쩌자는 것일까. 삶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답이 없어서 답답한 심정이 고스란히 솟는다. 원래 이렇게 암담하고 아득한 것이었던가. 사는 일이라는 게.
50년을 넘겨 살고 있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 전하는 작가의 메시지가 슬프기만 하다. 50년을 살았대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겼어도, 모르는 건 여전히 모르는 것이다. 그저 살고 있어야 할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가 싶다.
가족이 읽고 싶다 하여 구매. 산 김에 나도 잡기는 함.
소설이 상당히 우울하고 어두워서 읽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음.
책 읽고 나서 씨네큐브 같이 독립 영화 주로 개봉하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온 기분이 들었음. 그러나 다 읽고 난 후 곱씹을 만한 여운은 남아서 과연 윌리엄 트레버라는 생각은 함.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윌리엄 트레버 팬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