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를 보면 분개했던 어린 날의 나와는 달리, 현실에 찌든 직장인 1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관한 현실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문제다. 굳이 마음아파지고 싶지 않아서, 애써 흐린눈을 하며 밝고 좋은 것만 보고 살기도 모자란 인생인데~ 하며 자기 위안을 하며 살고있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살 것이다.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되어 읽게 된 이번 책은 그런 나의 고개를 단단히 움켜잡고 '봐, 이게 흐린 눈한다고 해결되는 문제야?' 라고 말하는 듯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내 눈엔 평범해보이지 않았다. 이런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지, 하고 다시금 되새기게 만드는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어느새 세상을 무디게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손바닥 문학상이라는 제목만 보고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동화나 소설을 기대했던 나에겐 너무 무거운 무게로 다가온 책이었다. 그러나 세상엔 내가 외면해선 안되는, 함께 연대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음을, 덕분에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불편하다. 책을 읽던 내게 끊임없이 불편함이 올라왔다. 소외된 이웃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내게 불편함을 주었다.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로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나도 일종의 기득권으로서 그들의 말에 거부감이 드는 것도 있었다. 정규직으로서의 내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게 '살아지고'있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제대로 생각해본 것 같다. 정규직은 상대적 박탈감, 불공정함에 대해 논하겠지만, 그건 사실 굉장히 사소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아직도 이 문장을 쓰면서도 좀 불편하다. 그렇지만 이만해도 꽤나 큰 발전 아닐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 말고도 수많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을 조금은 변화시킨 것 같다. 워낙 그런 사람들이 많아 무뎌진 나에게 경각심을 주는 책이었다. 앞으로 주변 사람들에 대하 좀더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
현실감 넘치는 소설은 내가 외면하고 싶은 삶을 돌아보게된다. 내가 회피했던 순간들, 주변들, 공간과 시간을 환기시키며 몸서리치게 만드는 것이다. 아름답게 포장되거나 환상적인 상황에서 내가 꿈꾸면서 지내는 듯 하지만 사실은 내가 딛고 서있는 땅은 바로 이 손바닥 문학상과 같은 이야기로 견고하게 이루어져있는게 아닐까.
짧지만 가볍게만은 읽을 수 없는 작품들이 넘쳐났다. 어떤 작품은 오래 묵은 서재에서 사진첩을 꺼낼 때의 감각이 들기도 했고, 다른 것은 근현대 소설을 시점을 틀어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데려와 여과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머릿속으로 그리지 않으려고 하면서 숨을 참으면서 읽었다. 현실을 직면하기 어렵고 여전히 모든게 별일인 나를 관찰하는게 더 무섭기도 하였다.
인상깊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 저는 여전히 상인들의 딸입니다. 이제는 건물 주인을 꿈꾸지 않습니다. 뒷짐을 지는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이왕이면 팔을 흔들며 씩씩하게 걷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 이슬아 작가의 작품에서 나온 문장이다. 이왕이면 팔을 흔들며 씩씩하게 걷는 어른.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글귀를 먼저 알고 독서모임 덕에 읽게 된 이 책에서 이슬아의 문장을 만나서 반가웠다. 축쳐져서 힘없이 늘어뜨린 팔을 겨우 달고 이동하는 나에게 힘을 주는 문장이다.
*옷을 벗는 장소는 매번 바뀝니다. 일을 하러 갈 때마다 처음 보는 장소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매번 적응해야 합니다. 그때의 긴장과 피로감을 견디는 게 이 일의 큰 부분입니다.
- 이 또한 마찬가지로 이슬아 작가의 문장이다. 처음과 장소, 사람, 적응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피로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겠지만 나도 4년이라는 시간동안 이리저리 떠돌았던 기억이 일으켜졌다. 그 일을 만들고, 시키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그 감정은 나 혼자 곱씹고 삼켜야 하는 고독에 불과했는데 명확한 문장으로 만나니 속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양한 혐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 어째서 암에 걸렸는지, 그 질병에 걸릴 때 숱한 말로 납득을 시키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대화에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왜? 그래서 결국은 암에 걸린 것은 지나치게 스트레스받고 예민한 당사자의 잘못이 아닐까 하는 그런 말로 귀결짓고 싶어서 물어보는 질문들 말이다. 굳이 위중한 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런 답이 정해져있는 질문을 많이 하고, 많이 듣고 살지 않나.
*이 병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받고 싶은 욕망 뒤에 숨겨진 죽음에의 욕망을 부추겼던 것일까. 스스로를 포함해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기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아닌 죽음에의 욕망이 더 긴밀해진 것은 아니었는지.
- 사랑과 죽음이라는 욕망은 매번 대치되는 것으로 나온다. 사랑하지 못하고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이럴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소망한다.
꽤 오랜기간의 수상작품을 모아서 출판을 한 것이라 근 10년간의 사람들의 삶을 모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출품되었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지금의 나와는 또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생각해보게 하였다. 마냥 외면하고 싶다가도 내가 살아온 삶의 결에 따라 밑줄이 들어가는 문장이 있고, 가져갈 수 있는 말들이 있어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넘쳐났다. 너무 외면하지 말고 살아야지.